해법 나오지 않는 ISD

투자자-국가소송(ISD)은 꼭 필요할까. 원론적인 질문이 다시 던져지고 있다. 최근 ISD 소송에서 패한 한국 정부가 잇따른 제소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쉽게 답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3인의 전문가에게 ISD 소송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물었다. 전문가 3인의 답은 원론적인 질문에도 엇갈렸다. ISD 소송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해법을 찾기 어려운 ISD의 민낯을 살펴봤다. 
 

ISD를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가 엇갈렸다. 한국 정부가 ISD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ISD를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가 엇갈렸다. 한국 정부가 ISD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우리나라에 불리하게 작용할 독소조항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중 가장 많은 우려가 쏟아진 게 투자자-국가소송(ISD) 조항이었다. ISD는 외국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의 법ㆍ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기구의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반대 측에선 “ISD가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하고, 주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 기업 렌코와 페루 정부, 미국 투자펀드 AIG와 카자흐스탄 정부의 분쟁 사례도 ISD 조항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반대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미 FTA는 ISD 조항이 담긴 채 이듬해인 2012년 발효됐다.

그로부터 6년, 잠잠했던 ISD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 지난 6일 한국 정부가 이란 가전회사 엔텍합(대주주 다야니)이 제기한 ISD 소송에서 패한 게 불을 댕겼다. 한국 정부가 730억원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2011년의 우려가 현실이 될 거란 지적이 쏟아졌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5조원대 ISD 소송이 남아있다는 점도 불안감을 자극했다. “정부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남은 소송에서도 승패 여부를 장담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많은 다국적 기업이 국내 투자를 늘리고 있는 만큼 이번 패소를 기점으로 더 많은 투자자의 제소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예민하게 받아들일 만한 지적이다. 당장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7000억원 규모의 ISD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로선 ISD 소송 탓에 애를 먹을 게 뻔하다는 얘기다. ISD가 철폐해야 할 독소조항이냐는 원론적인 물음이 다시 제기되는 이유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편에선 “글로벌 투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ISD 소송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고 말한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ISD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사진=뉴시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ISD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사진=뉴시스]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해외투자는 대부분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투자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ISD 소송은 선진국의 투자자를 위한 제도였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선진국도 피소자가 되고, 개도국의 투자자도 제소자가 될 수 있어 중립적이다”고 꼬집었다. 
 
ISD 정당성 갑론을박 

그는 “ISD가 우리나라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반론을 폈다. 고 연구위원은 “국내 법원은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 목표에 호의적으로 따를 공산이 크고, 투자자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면서 “반면 국제기구는 투자법 전문가들이 누가 잘못했는지만 따지기 때문에 공정하고 중립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편에선 ISD 소송은 위험한 제도라고 맞받아친다. 민변에서 국제통상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는 “우리나라에 와서 영업을 하고 돈을 벌어가는 입장이라면 국내법을 따르고, 국내 법원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게 당연한 논리”라고 꼬집었다.

그는 “ISD가 우리나라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국내법을 회피할 길을 열어주는 것은 그 나라의 공공정책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외국의 경제기관이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공공정책의 정당성이나 필요성은 그 나라의 기관에서 판단하는 것이 옳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연구위원은 중립적인 의견을 냈다. 누가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그는 “정부 입장에선 리스크일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 입장에선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하소연할 수 있는 창구”라면서 “ISD 자체는 독소조항이 아니지만 협상 과정에서 ISD 소송을 남용하거나 주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게끔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면 그게 독소조항이 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ISD 소송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ISD 소송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주장한 고준성 연구위원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마찰의 빌미를 제공해선 안 된다”면서 말을 이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건 원론적인 것들이다. 먼저 지자체는 중앙정부에 비해 법치행정 수준이 낮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부당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칙을 바로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 중앙정부는 역할이 점점 커지면서 정책의 방향과 투자자의 권익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규제를 세우고 정책을 펴기 전에 최대한 공정성을 확보하고 외국인 차별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ISD 소송제도의 부작용을 꼬집은 송기호 변호사는 정부나 지자체 대책이 문제가 아니라 ISD 조항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투자 모델마다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일부 불리한 ISD 조항은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일례로 페이퍼 컴퍼니도 제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삭제해야 할 독소조항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송 변호사는 “궁극적으로는 ISD 자체를 재검토해서 삭제해야 한다”면서 “실제로 유럽에서는 더 이상 미국식 ISD를 채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유럽에서 시행 중인 투자법원제도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냈다. 이해관계국의 법원이 공동으로 설립하는 투자법원제도는 ISD의 결점으로 꼽히는 항소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다만 투자법원제도에도 리스크가 적지 않다. 유럽 내부에서 ISD와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에게 부당한 특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ISD 대안으로 떠오른 투자법원

중립론을 폈던 제현정 연구위원은 ISD 조항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기관이 ISD 조항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전까지는 몰랐다 해도 이제부턴 규제나 정책을 세우기 전에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ISD 논란이 불거진 지 7년여가 흘렀다. 우려했던 ISD 소송의 위력은 우리나라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ISD 소송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만한 전략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 늦으면 ISD 소송은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회오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 정부를 피고로 삼은 ISD 소송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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