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nuri 특약 | 고병수의 시선

사립 유치원 사태 이후 국공립 유치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민간 영역에 문제가 생겼으니, 공적 영역을 확대해 보완하자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지만 생각해 볼 것도 있다. 공적 영역을 늘린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 예산 등 따져야 할 것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공적 영역이 아니라 공공성公共性의 확대를 주장한다.

공공의 영역과 사적 영역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사진은 한유총을 고발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모습.[사진=뉴시스]
공공의 영역과 사적 영역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사진은 한유총을 고발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모습.[사진=뉴시스]

교육의 역사를 훑어보면, 유치원의 연혁은 그리 길지 않다. 1840년 독일 교육자 프뢰벨이 처음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취학 전 아동에게 적절한 놀이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치원은 금세 전 유럽으로 퍼졌고, 지금에 이르렀다.

모든 일이 그렇듯 뜻있는 개인이나 단체가 설립한 몇몇 유치원은 ‘명문’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아동 격차’가 사회문제로 비화할 조짐이 보이자, 국가는 지역별 유치원을 설립해 ‘국공립 유치원’ 시대를 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공립 유치원 원아 비중은 평균 67%(2015년 기준)다. 우리나라의 국공립 유치원생 비율이 24%(교육통계서비스 자료ㆍ2016년)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사립 유치원에 의존해 왔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우리 정부의 ‘유아 공교육’ 의지가 약했다는 것이다. 

필요성은 높은데 공공 인프라가 부족하니까 정부 자금으로 사립 유치원을 지원하면서 국가의 요구를 채워온 셈이다. 그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국공립 유치원의 수를 더 늘려라.” 과연 타당한 말일까. ‘공공’이라고 붙은 무언가를 만드는 게 해답이 될 수 있을까. 

필자가 일하는 분야인 보건의료에서도 공공의료원ㆍ공공병상 등 공공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의료업계 사람들은 오랫동안 “한국의 공공의료가 너무 취약하니 양적 확대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결과 지방공공의료원, 공공 재활병원 등이 설립됐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인프라는 10% 안팎에 머물러 있다. 선진국의 공공의료 비중이 80~90%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수치에서 보듯, 대부분의 선진국 종합병원은 무상의료 등 공공성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개인이 운영하는 병원이나 동네의원이 ‘사적 이익’만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공공의료기관이 아닌 동네의원들도 주치의 제도, 장애인 진료, 주민건강관리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공공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몇몇 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공공병원이나 공공병상, 공공인력 등 공공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사적 영역에서의 공공성 추구도 중요하다.”

필자는 같은 이치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모두 공공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공립 유치원을 충분한 수준으로 늘리되, 사립 유치원에도 공공성을 주입해야 한다. 사립 유치원을 계속 지원하면서도 공공의 의무를 강제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거다. 교육ㆍ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민간 차원의 역할은 분명히 가치가 있다. 흔히 진취성ㆍ창조성ㆍ경영 효율성 등은 사적 영역이 강하고, 보편적 보장성이나 표준화된 서비스는 공적 영역의 장점이다. 이 둘은 서로 경쟁하고 배우면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립 유치원 사태를 보면서 필자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국공립 유치원을 늘리자는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왜 국공립 유치원을 늘려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과정도 필요해 보인다. 공공 영역의 확장이 아니라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도 좋은 해답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공공과 민간이 잘 어울리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제이누리=고병수 탑동365의원 원장 bj971008@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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