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 三國志

▲ 대선정국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왼쪽부터) 3명의 후보를 둘러싼 과거의 틀로 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뽑아야 할 대통령이지만 과거만 표면으로 튀어나오는 모양새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대권주자들이 확정됐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이들 3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 선거일까지 남은 석 달의 시간, 이를 활용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가 승리한다. 과거에 얽매어 해명하기 바쁜 자는 결코 축배를 들 수 없다.

18대 대선 구도가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로 확정됐다. 각 진영은 캠프 인선과 정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정작 ‘시간’이라는 프레임(틀)에 갇혀 있다.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을 둘러싼 ‘과거사’,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 안철수 후보는 ‘정치 경험’이라는 시간이 주는 문제에 갇혀 있다. 이들 세 후보가 넘어야 할 시간의 그림자를 살펴봤다.

박근혜의 시간 = 1961~1979년

정치 전문가들이 꼽는 박근혜 후보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5.16 군사쿠테타(1961년)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사형판결(1975년)에 대한 역사 인식이다. 박 후보는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실시된 검증 청문회에서 “당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었다”며 “5.16은 구국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후 박 후보를 향한 공격의 촉은 5.16에 대한 역사인식으로 집중됐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도 그를 괴롭히는 것이 5.16에 대한 생각이다. 하지만 박 후보의 역사인식은 별반 바뀌지 않았다. ‘구국의 혁명’이라는 인식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단어로 순화된 정도다. 당시 상황에서 ‘5.16은 필요한 정치적 행동’이라는 것 정도로 바뀐 것이다. 박 후보는 지난 7월 16일 언론사 합동토론회에서 “5•16 은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그 후 나라 발전에 5•16이 초석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바른 판단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야권이 집중포화를 할 빌미를 제공했다. 민주통합당은 박 후보의 5•16 발언에 대해 “자신의 역사관이 진리라는 오만함이 느껴진다”고 맹공을 펼쳤다. 또 “5•16 쿠데타가 바른 판단이라면 12•12 쿠데타도 좋은 선택이었고, 일제식민 지배도 근대화 혁명이 되는 거냐”고 비난했다. 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또 하나의 대표적 발언은 인혁당 사건이다.

그는 지난 9월 1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인혁당 사건에는 두 개의 판결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음날에는 국회 본회의 참석 전, 기자들과 만나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에 여러 증언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朴, 역사인식 발목 잡아

인혁당 사건은 1974년 4월 군사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당시 중앙정보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기소한 사건이다. 법원은 이 중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75년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자 20여 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그러나 2007년, 법원은 당시 판결을 뒤집었다. 형이 집행된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다.
인혁당과 관련한 박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해 “법치 주의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박근혜가 피해자를 두 번 죽였다”고 반발했다. 새누리당 일부 인사들이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9월 17일 한 세미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로 헌정사를 중단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을 기도했던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의 시간 = 2003~2008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거론할 때 “노무현의 후계자”를 꼽는다. 새누리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하는데 그 중 절반의 시간이 문 후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문 후보가 노 전 대통령과 함께한 시간은 민주통합당 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경선 과정에서 혹독한 검증대상이 됐다.
문 후보는 2003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시작해 2008년 대통령실 마지막 비서실장까지 역임했다. 사실상 참여 정부 5년 내내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문 후보에게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은 동전의 양면으로 작용한다.

文, 노무현 넘어야 산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 인해 행보가 꼬이고 있듯, 문 후보 또한 노 전 대통령의 틀에 갇혀 그가 걷고자 하는 길을 못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 후보는 지난 4.11총선을 통해 정계에 공식 입문했다.

누리당에서 문 후보에 대해 첫 공격의 촉으로 사용한 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강정마을 문제였다. 문 후보가 민주통합당 공식후보로 확정되자 새누리당은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 박근혜 계 핵심인사인 김재원 의원은 한 방송에 출연해 “문재인 후보가 노무현식 편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문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하지 않은 것은 그동안 보여준 선한 얼굴과는 달리 편을 갈라서 갈등을 일으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치쇄신특위 박효종 위원은 “힐링을 얘기하는 문재인 후보가 박 전 대통령 묘소 참배에 조건을 내건 것은 진정한 힐링이 아니다”라며 “박근혜 후보가 김대중•노무현 두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때 무슨 조건을 달았느냐”고 공세에 가담했다. 민주통합당 내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를 연관 짓는 것에 대해 미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 같은 흐름은 경선과정에서 특히 자주 포착됐다.

손학규 후보의 한 참모는 문 후보에게 패한 지난 9월 16일 “친노 세력이 지닌 ‘모바일 군단’을 이겨내지 못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경선에 참여했던 조경태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탁할 때는 거절하더니 노 대통령 서거 후 주변 여건이 좋아지자 부산 사상 지역구에 출마했다”며 “이는 (문 후보의)기회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후보를 검증할 때마다 나오는 얘기도 노 전 대통령과 연관돼 있다. “노무현을 빼고 나면 아무런 색깔이 없다” “문재인은 무색무취한 신사일 뿐이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여기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싸잡아 “국정을 운영하려면 정치 경험이 10년은 있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5년을 보낸 문재인 후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간 18년 동안 일어난 과거사. 두 개의 다른 시간이 대한민국 대표 정당에서 내세운 후보들을 프레임 속에 가두고 있다.

안철수의 시간 = 2012년 9월~12월

여야가 무소속 안철수 후보 검증에 나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과거 문제가 비교적 자유롭다. 오히려 남은 3개월여의 시간이 문제다. 혹독한 검증 작업에 맞대응해야 하는 미래의 시간,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화두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축적해온 안철수 파일을 하나씩 열 태세다. 본격적인 검증 공세는 추석 민심을 살핀 직후인 10월 5일 쯤으로 예상된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안 후보의 부인이 증인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安, 우유부단한 모습에 피로감

방식이 어찌됐든 새누리당은 그간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들을 하나씩 파헤친다는 전략이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인수 의혹과 관련, 증인으로 나래이동통신 대표와 검찰 수사 관계자 등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정준길 변호사로부터 촉발된 안철수 협박 논란과 관련해서는 산업은행 뇌물공여 의혹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안랩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된 인물들로 산업은행 전 팀장 강모 씨를 비롯, 연관된 이들을 차례대로 불러낼 것으로 알려졌다.

‘딱지 아파트’ 논란을 일으킨 서울 사당동 재개발아파트 입주권 의혹도 관심사다. 여기에 안 후보의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채용도 특혜의혹으로 거론될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증인 채택과 관련해 복잡한 정치역학 구도가 밑바닥에 깔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여야 모두 각 후보의 검증에 날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국정감사 증인채택은 여야 간 합의에 의해 이뤄진다. 후보 진영 간 이해관계에 따라 집중 포화가 안철수 후보에게 쏠릴 수 있다. 3개월 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검증공세에 시달리겠지만 안 후보 측은 ‘새로운 정치인물’이라는 기존의 틀은 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 측이 대선 구도를 ‘낡은 정치 대 새 정치’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후보와 오랜 시간 같이 일을 해왔던 한 인사는 최근 “안철수 후보의 가장 큰 장점은 정치 경험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기존의 정치에 불신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에게 전혀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말이다. 안철수 후보는 9월 19일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를 바꾸고자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치개혁을 내세우는 건 박근혜, 문재인 두 사람과 같은 맥락이지만, 기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인물이 말하는 정치개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 인사는 “기존 정치인과 같은 말을 하지만 기존 정치에 물든 적이 없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 역시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과거와 관련한 검증을 견뎌내야 한다. 대선정국은 3명의 후보를 둘러 싼 과거의 틀로 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뽑아야 할 대통령이지만 과거만 표면으로 튀어나오는 모양새다.

Issue in Issue | 대선 정국, 진보정당은 어디에

분당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통합진보당은 야권 단일화의 한 축이었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새로운 진보정당의 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새 정당이 대선 정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야권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진보정당 계열 인사들이 꾸준히 언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유시민 전 통합진보정당 대표의 언급이다.

그는 9월 21일 전라북도 의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는 꼭 이뤄져야 한다”고 전제한 뒤 “문재인•안철수 후보 중 누가 되어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전 대표는 “두 후보가 진보 성향이라서 도와주겠다고 말할 입장도 아니다”며 “후보 선택은 국민들이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진보정당추진회의 이정미 대변인은 “현재 대선 후보들을 놓고 누가 더 진보인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도 “진보적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정책과 대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지지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은 열어뒀다.
김성민 기자 icarus @ thescoop.co.kr | @ itvfm.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