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글에 컴백한 ‘장고들’

“Come back!! Old boy.” 올드보이의 화려한 복귀가 이어지고 있다.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가 이들의 컴백 무기다. 하지만 지금은 사상 유례 없는 불황기. 이들이 예년만큼 능력을 뽐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컴백을 선언한 올드보이. 돌아온 장고처럼 힘을 낼까, 아니면 퇴물취급을 받으며 쓸쓸하게 시장에서 떠날까.
 

▲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올드보이의 가장 큰 장점은 업계를 내다보는 눈이다.
185㎝ 95㎏. ‘코끼리’ 감독 김응룡(71)이 돌아왔다. 2004년을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떠난 지 8년만이다. 팬들은 환호했고 야구인들은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살아있는 전설’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올해로 71세의 나이인 그가 다시 그라운드를 밟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올드보이(Old Boy)’의 화려한 귀환이다.

흥미로운 점은 김 감독이 돌아온 구단이 최근 수년간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는 한화 이글스라는 것이다. 2008년 이후 5위, 8위, 8위, 6위, 8위(2012년 기준 8개 구단)가 한화의 최근 5년간 성적이다. 한화는 최고 투수 류현진과 최고 타자 김태균을 보유하고도 ‘꼴지’를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부족한 팀이다.

김 감독은 현역시절 ‘호랑이 감독’으로 불렸다. 강력한 카리스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지만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한화 이글스를 방문한 그의 첫 마디는 이랬다. “못하면 죽어야지.” 김응룡만이 내뱉을 수 있는 일침이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그 아니던가.

올 드보이가 컴백하고 있다. 이들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카리스마를 원하는 조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건강문제’를 꼬집을 수 있다. 하지만 올드보이에게 나이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숫자에 불과하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나이가 들었음에도 건강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건강이 받쳐주니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는 조직 DNA를 바꾸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올드보이 컴백이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영철 CEO지식나눔 대표는 “과거 한 조직을 이끌었던 노장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선견지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 대표는 “강력한 리더십과 때로는 부드러운 친화력은 올드보이의 또 다른 매력”이라며 “이제 막 상승곡선을 타는 젊은 리더는 부드러움, 포옹력을 지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9월 1일 조양래(75) 한국타이어 회장은 한국타이어 월드와이드(지주회사) 대표이사로 24년 만에 복귀했다.
한국타이어는 1985년 효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됐다. 이후 조 회장은 대표이사직에 올라 기업을 이끌었다. 3년 뒤 조 회장은 홀연히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며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했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2012년 현재 조 회장이 돌아왔다. 왜 일까.

그의 나이는 올해 75세. 백전노장이자 오너의 복귀다. 조 회장은 한국타이어 월드와이드 18.6%를 지닌 최대주주다. 조 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처럼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이 분야에 관심이 간다’는 식으로 가볍게 조언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세계 경기 불황이다. 자동차 판매는 날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고, 타이어 판매 역시 이에 비례한다. 한국타이어는 2007년 매출 4조5855억원, 영업이익 2759억원을 기록했다. 다음해 영업이익은 반 이상 줄었다. 이후 2010년 영업이익 5858억원, 2011년 5663억원을 기록하며 회복세를 띄고 있다. 한국타이어에게 지금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조 회장은 과거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책임경영 강화와 동시에 조양래 회장이 직접 지주회사 초기 기반을 꾸려나갈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스타일을 십분 살릴 공산이 크다. 과거 그랬던 것처럼 조 회장이 직접 경영일선에 나서는 것보다 전문경영인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얘기다. 여기서 전문경영인은 조 회장의 두 아들인 조현식 한국타이어 사장과 조현범 사장(마케팅 본부장)이다.

 
한국타이어는 조 회장의 대표이사 선임과 동시에 지주회사ㆍ사업자회사로 기업 분할했다. 형인 조현식 사장은 지주회사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동생인 조현범 사장은 사업자회사를 맡았다. 그래서 조 회장의 복귀는 경영권 승계 차원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홍사승(65) 쌍용양회 전 회장은 야인에서 시멘트업계로 다시 돌아왔다. 2011년 쌍용양회 회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올 9월 3일 대한시멘트 회장으로 선임됐다. 사무투자펀드(PEF)인 한앤컴퍼니가 6월 대한시멘트를 인수했고, 업계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인물을 물색 중 홍 전 회장이 눈에 띈 것이다.

선견지명과 강력한 리더십 보유
홍사승 대한시멘트 신임 회장은 1967년 쌍용양회에 입사한 뒤 자금부장과 상무이사, 대표이사 사장, 회장(2009~2011년)에 오른 시멘트 전문가로 통한다. 무려 45년간 동종업계에 종사했다. 그는 2005년 쌍용양회 대표이사에 오른 후 6년간 업계 1위 쌍용양회를 이끌었다. 특히 2009년 레미콘ㆍ골재사업을 분사해 사업 포트폴리오의 경쟁력을 높였다. 수출입업무를 전담하는 쌍용인터네셔널을 설립,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의 틀을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홍 회장은 근면성실하고 열정적인 스타일의 경영인으로 알려졌다. 한 시멘트 회사 관계자는 “홍사승 회장이 사원부터 회장까지 올라간 것만 봐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골프 등 별다른 취미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일벌레’로 업계에서 유명하다”고 말했다.

국내만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올드보이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 37년 동안 몸담은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무대에서 ‘구원투수’로 활약하는 이가 있다. 포드의 최고경영자 앨런 멀러리(67)다. 그는 보잉 727ㆍ737ㆍ747 등의 개발에 참여하고 디지털로 작동하는 조종석을 최초로 고안한 항공전문가다.

1969년 보잉사에 입사한 그는 1994년에는 항공기수석 부사장직, 1997년에는 정보, 항공•방어 시스템 부문 사장을 거쳐 2001년 상업용 항공기 부문 CEO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보잉사는 그가 ‘최고 권좌’에 오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2003년 보잉의 CEO였던 필 콘디트가 사임하고, 2005년 해리 스톤사이퍼가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진할 때 유력 CEO로 거론됐지만 두 번 모두 낙마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06년의 일이다. 자동차 업체 ‘포드’는 당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포드 가문이 꺼낸 카드는 ‘새 인물 영입.’ 이때 포드는 앨런 멀러리를 찾았고, 멀러리 역시 흔쾌히 수용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포드에서 한을 풀고 또 풀었다. 멀러리는 탁월한 선견지명으로 고유가와 경제 불황으로 총체적 위기에 놓여있던 포드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포드가의 ‘선택’은 탁월했고 멀러리는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멀러리의 경험은 금융위기 당시에 빛이 났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 업체가 파산위기에 몰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멀러리는 급하게 자금을 수혈했다. 대주주인 포드 일가의 협조를 구해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 230억 달러(약 28조원)를 빌린 것이다.

포드는 이 자금을 기반으로 정부 금융지원을 받지 않은 유일한 자동차 업체로 GM보다 먼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실적 역시 개선되고 있다. 2009년에는 3분기 9억97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빅3 자동차 업체 중 처음으로 부활 신호탄을 쐈다. 4년 만의 흑자였다. 포드는 이후 매년 5조원이 넘는 흑자를 내고 있다.

멀러리는 2009년 포드의 구원투수로 인정받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포드를 살려낸 대가로 최고 대우를 받아 2011년 미국에서 보수가 가장 많은 CEO 10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화려한 경력이 걸림돌 될 수도
올드보이의 귀환이 항상 환영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장으로 돌아온 그들이 넘어야할 산이 많아서다. 우선 일선을 떠나면서 멈춘 시계를 다시 돌려야 한다. 정보화 시대인 요즘은 어떤 업계든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상황이 크게 변한다. 그들이 정상으로 군림하던 시대와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는 실정이다.

▲ 현장으로 돌아온 올드보이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일선을 떠나면서 멈춘 시계를 다시 돌려야 한다.
대부분의 올드보이가 독불장군 스타일이라는 것도 걸림돌이다. 화려한 경력이 오히려 그들의 귀를 막을 수도 있다. 유아독존식 불통은 개혁을 어렵게 만든다. 새로운 바람을 외면하고 고집을 부린다면 조직을 혼란스럽게 만들 공산도 있다. 올드보이가 가장 주의해야할 점이다.

실제로 최근 정계에 복귀한 올드보이는 끊임없이 조직을 흔들고 있다. 10월 5일 새누리당에 입당한 한광옥(70)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그 주인공이다. 1981년 민주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제11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한 전 고문은 13•14•15대 의원을 지낸 4선 국회의원 출신 인사다.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한 인연으로 김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공적이었던 새누리당에 입당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 전 고문은 새누리당 입당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지역감정 해소의 불씨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당내 분란의 불씨만 되고 있다.

한 전 고문의 입당 발표에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들은 10월 6일 긴급회동을 갖고 한 전 고문의 영입이 부적절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틀 뒤에는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한 전 고문이 중책을 맡는다면 사퇴하겠다”고 압박했다.

10월 9일에는 한 전 고문이 “안대희 위원장의 반대를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며 “사퇴는 그분의 자유”라고 말해 당내 갈등을 심화시켰다. 결국 한 전 고문이 당초 예상했던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아닌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직책을 받아들이면서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매끄럽지 않은 올드보이의 복귀였다는 평이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의 살아있는 신화 ‘올드걸’ 맥 휘트먼(56)은 미 컴퓨터 장비업체 HP로 컴백했지만 복귀 성적표도 시원찮다.
맥 휘트먼은 이베이를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넘게 이끌어온 ‘주역’으로 실리콘벨리의 여제로 통한다. 이베이는 그의 지휘 아래 1998년 4월부터 30여명의 직원에서 10년 만에 1만5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고의 인터넷 경매 사이트로 빠르게 성장했다.

매출은 1998년 8600만 달러(약 1020억원)에서 77억 달러(약 9조 2000억원)로 약 90배 이상 커졌다. 하지만 그의 쾌속질주는 ‘정치 입문’과 함께 멈춘다. 201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 고배를 마셨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텃밭이나 마찬가지인 실리콘밸리를 재기 무대로 택하고 2011년 2월 HP 이사로 복귀했고, 9월 CEO에 올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베이의 ‘신화’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휘트먼이 CEO로 취임한 후 HP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기존 PC에서 태블릿PC,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하드웨어, 각종 소프트웨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HP의 텃밭이나 마찬가지인 PC부문은 지난 5~7월, 89억 달러(약 9910억원)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한 296억6900만 달러(약 33조364억원)에 그쳤다. 테블릿PC, 데이터센터 사업 부문도 기존 강자인 애플, IBM에 밀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다.

올드보이 경험, 불황기에 빛날까
올 10월 4일(현지시간) 미국의 컴퓨터 장비업체인 HP 주가는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신은 “아직 바닥을 찍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추가 위험성을 경고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올 3분기 실적에서 중국 PC업체 레노보가 HP를 제치고 글로벌 PC시장 1위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맥 휘트먼의 신화는 그가 HP CEO로 취임한지 1년여만에 무너지고 있다.
올드보이의 복귀에 업계 관계자들은 향수를 느끼며 환호하고, 또 다시 새로운 기록을 써나가길 기대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내린 그들의 결정이 옳은 선택인지 아니면 예전만 못하다는 비아냥을 들을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그들의 새로운 도전은 시작됐다.

☞ 올드보이(Old boy)
노인, 영감이라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다. 산업계에선 오랫동안 일해서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을 뜻한다.



박용선•김미선•심하용 기자 brave11 @ thescoop.co.kr|@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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