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주택법 실효성 논란
탁상서 만든 법조항이 문제
‘부실공사’ 책임 규정도 없어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을 주고 구입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은 새 아파트에 들어간다는 기대감에 들뜬다. 하지만 몇몇 입주민은 새 아파트에 둥지를 틀기 전부터 화병을 앓는다. 누수ㆍ균열 등 각종 하자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갈수록 늘어나자 국토교통부는 새 주택법을 만들어 ‘입주 전 하자 문제’를 잡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새 주택법에도 문제가 많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개정 주택법의 문제를 냉정하게 취재했다. 

입주민들은 하자를 보수하지 않아도 되는 정상적인 아파트에 입주하길 원한다.[사진=연합뉴스]
입주민들은 하자를 보수하지 않아도 되는 정상적인 아파트에 입주하길 원한다.[사진=연합뉴스]

4290건. 2019년 기준 국토교통부 하자심사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하자분쟁’ 접수 건수다. 지난해 상반기엔 2226건이 접수됐다. 하자분쟁이 매일 10건 이상 나온다는 얘기다. 지난해 1월 주택법이 개정된 건 이 때문이다. 개정 주택법은 지난 1월 24일부터 실시됐다. 국토부는 새 주택법을 통해 “하자 보수로 인한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사업주체와의 갈등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개정 주택법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먼저 3개 조문條文이 추가됐다. 그중 2개는 ‘사전방문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사업주체가 입주지정기간을 개시하기 45일 전까지 입주예정자들에게 사전방문을 최소 2일 이상 실시해야 한다’는 거다. 이 과정에서 입주예정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사업주체(이하 편의상 시공사로 표기)는 조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 문제가 ‘일반 하자’라면 입주 전까지, ‘중대한 하자’일 경우엔 사용검사를 받기 전까지 조치를 완료해야 한다. 계획에 따라 보수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자 보수를 입주 전에 마무리하도록 한 것이니 긍정적이다. 

나머지 1개 조문은 ‘공동주택 품질점검단’에 관한 내용이다. 사용검사를 받기 전에 시ㆍ도지사가 전문가집단을 구성해 품질점검을 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사전방문을 허용하더라도 공용공간은 개인이 점검하기 어렵다는 걸 감안한 조치다. 점검 결과도 입주예정자가 원하면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국토부는 이번 새 주택법을 통해 하자 보수로 인한 국민들의 불편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토부는 이번 새 주택법을 통해 하자 보수로 인한 국민들의 불편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개정 주택법을 통해 ‘입주예정자 사전방문→전문가집단에 의한 품질점검→사용검사’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됐다는 거다. 그런데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 ‘2일 이상 사전방문 실시’는 바꿔 말하면 ‘2일만 사전방문을 실시하면 괜찮다’는 얘기가 된다. 이 때문에 이틀 만에 전문지식도 없는 입주민들이 하자를 잡아낼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시공사와 하자 분쟁을 진행했던 한 아파트 입주민대표는 이렇게 꼬집었다. “맑은 날 사전방문을 실시하면 누수가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지금처럼 똑같이 시공사가 입주민과 줄다리기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게 뻔하다.”

물론 ‘공동주택 품질점검단’을 통한 점검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이 점검시스템은 ‘의무규정’이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공동주택 품질점검단’을 두는 게 시공사의 부실을 눈감아주기 위한 것이란 비판도 있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시공사는 일정 규모(5000㎡ㆍ약 1500평)의 공사현장에 의무적으로 공사감리자를 배치해 공사, 품질, 안전에 관한 지도ㆍ감독을 받아야 한다. 품질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는 거다. ‘공동주택 품질점검단’의 역할에 의문이 쏟아지는 이유다. 

 

익명을 원한 공사감리 전문가는 “공사감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일감을 얻으려면 감리자가 시공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감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리 없지 않은가. 감리자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위를 보장하면 시공사가 공사를 제대로 할 수밖에 없다. 하자 문제도 줄어들 거다. 특히 공사감리자는 현장에 있기 때문에 완공 후에 알 수 없는 문제까지 집어낼 수 있다. 개정 주택법은 원초적 문제를 놔둔 채 변죽만 울렸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전점검 과정에서 중대한 하자가 발견되더라도 입주자들은 시공사에 ‘부실공사’ 관련 책임을 묻지 못한다. 새 주택법에 부실공사에 관한 책임 기준이나 처벌 규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참고 : 중대한 하자에 관한 처벌 규정이 일부 마련돼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시공사가 아니라 감리자의 부실한 역할에 책임을 묻는 규정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법령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국토부는 새 주택법에 맞춰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하자’의 범위를 명시했다. 그러면서 ‘중대한 하자’와 ‘일반 하자’를 나눴다. 중대한 하자란 두가지 사항에 속하면서 ‘사용검사권자(시장ㆍ군수ㆍ구청장)가 중대한 하자라고 인정하는 하자’를 의미한다. 

두가지 중 하나는 ‘내력구조부별 하자’다. 철근콘크리트에 균열이 있거나 주요 구조부(내력벽ㆍ기둥ㆍ바닥ㆍ보 등)에 철근이 노출돼 있어 ‘공동주택의 구조안전상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다. 둘째는 ‘시설공사별 하자’다. 토목 구조물의 균열, 옹벽ㆍ차도ㆍ보도 침하, 누수ㆍ누전ㆍ가스 누출, 배관류의 부식이나 동파 등으로 ‘입주예정자의 생활에 안전상ㆍ기능상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다. 그 외에는 모두 ‘일반 하자’다. 

중요한 건 주택법 시행령에 담긴 중대한 하자들이 건설산업기본법이나 건설기술진흥법에선 ‘부실공사’에 속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르면 주요 구조부에 허용치를 넘어선 균열이 발생하거나 방수불량으로 인한 누수가 생기면 ‘부실한 공사’로 규정해 시공사에 벌점을 매긴다. 누적 벌점에 따라 시공사는 등록취소, 영업정지, 공공공사 참여 제한 등 다양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부실공사’ 책임 규정 없어

그렇다고 새 주택법이 처벌 규정을 강력하게 설정해 놓은 것도 아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하자를 기간 내에 제대로 보수하지 않더라도 시공사는 500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그만이다. 입주 전 하자 문제를 바로잡겠다면서 ‘솜방망이 처벌 규정’만 만들어놓은 셈이다. 새 주택법을 통해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쏟아진 이유다. 

익명을 원한 공사감리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부실공사와 하자를 구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새 주택법이 하자만을 규정해 놓은 건 결함으로 보인다. 게다가 아무리 중대한 하자라도 시공사가 보수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규정한 건 큰 문제다. 자칫 입주자과 시공사의 갈등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부실공사는 철거 후 재시공이 필요한데, 이 법을 근거로 시공사들은 보수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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