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홍에 흔들리는 금융감독원
정기인사에 폭발한 노조 불만

금융감독원이 내홍에 흔들리고 있다. 노동조합이 채용비리 연루자를 승진시킨 윤석헌 금감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노조는 윤 원장의 과거 행적까지 들춰내며 그를 ‘비리종합세트’로 몰아세우고 있다. 2018년 윤 원장의 취임을 반기고, 힘을 실어주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졌다. 윤 원장과 노조의 관계는 어쩌다가 이렇게 틀어진 것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답을 냉정하게 찾아봤다. 

금융감독원이 2021년 정기인사에서 채용비리 연루자를 승진시킨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사고 있다.[사진=뉴시스] 

2018년 금융감독원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기관의 수장인 금감원장을 둘러싼 잔혹사가 계속됐다. 금융권 채용비리 의혹에 휩싸인 최흥식 전 금감원장은 취임 6개월 만에 사임했다. 금융권 ‘저승사자’로 불렸던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최단기간인 15일 만에 자진해서 사퇴했다.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 예산으로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것과 셀프 후원이 논란을 일으킨 탓이다.

수장의 공백으로 정처 없이 표류하던 금감원의 키를 잡은 건 윤석헌 금감원장이었다. 개혁성향이 강한 진보경제학자라는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학자 출신이지만 한미은행, HK저축은행(현 애큐온저축은행),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생명) 등 금융회사에서 사외이사를 맡아 실무적 감각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었던 적폐 청산과 금융혁신을 이뤄낼 ‘적임자’라는 점도 주목받았다. 정부가 추진한 금융개혁의 밑그림을 그린 금융행정혁신위원장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 “저승사자(김기식)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라는 푸념이 나왔던 이유다.


금감원 노동조합도 윤 원장의 취임을 반겼다. 윤 원장이 노동추천이사제·금감원 독립 등의 현안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금감원 노조는 윤 원장을 위한 지원 사격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제재를 둘러싼 금감원과 금융위원회의 대립각을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금감원 노조는 그해 12월 금융위의 해체 없는 감독기구 개편은 의미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윤 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금감원 노조는 “재벌 편들기와 자기 조직 확대에 눈이 먼 금융위에 위기관리 기능을 더 이상 맡길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최근 윤 원장을 노조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틀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어떻게 된 일일까. 호랑이가 변한 걸까 노조란 거대 기득권이 변한 걸까.

사태의 원인은 인사에 있다. 금감원이 2월 19일 단행한 ‘2021년 정기인사’ 승진자 명단에 채용비리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2명이 포함됐다. 금감원 노조는 발끈했다. 2월 22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채용비리 연루자가 올해도 어김없이 승진했다”며 “비리집단으로 낙인 찍혀 승급을 못 하고, 임금까지 깎인 직원을 생각했다면 이런 인사를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노조의 비판 강도는 더 세졌다. 지난 3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윤 원장이 스스로 연임론을 피우고 있다”며 “이는 노욕을 넘어 노망에 가깝다”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윤 원장의 과거 행적은 물론 사외이사 경력까지 조목조목 비판했다.

금감원은 이번 인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감원은 관계자는 “이번 정기인사에서 문제가 된 채용비리 연루자는 징계 조치와 함께 일정기간 승진에서 제외하는 불이익을 받았다”며 “징계에 따른 승진 제한기간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승진후보자와 같은 기준으로 심사를 진행했고, 인사윤리위원회에서도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며 “징계를 이유로 추가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이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점도 감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채용비리 연루자의 승진을 향한 노조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는 채용비리 사태 이후 금감원의 방만경영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임금삭감, 승급제한 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금감원장 사퇴 요구한 노조

게다가 올해 1월엔 기획재정부로부터 상위직급 감축, 해외사무소 정비 등 조직운영 효율화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기재부 측은 “관련 방안을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면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겠다”면서 으름장을 놨다. 사실상 말을 듣지 않으면 금감원을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해진 채용비리 연루자의 승진 소식은 노조의 불만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인사 문제를 이유로 윤석헌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사진=뉴시스] 

금융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은 임금 삭감, 인원 감축 등을 감수하면서 조직의 혁신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런 상항에서 알게 된 채용비리 연루자의 승진 소식에 그동안 참아왔던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재지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이 채용비리 사태 때문”이라며 “채용비리 연루자의 승진이 숨어있던 ‘뇌관’을 건드린 셈”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도 “이번 인사만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피해자 구제와 책임자의 처벌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채용비리 연루자를 승진시킨 것은 부적절한 조치”라며 “금감원이 채용비리 연루자를 승진시킨 것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채용비리 연루자가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는 불법 행위를 저질러도 성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것은 구시대적인 생각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다른 직원을 제쳐두고 채용비리 연루자를 승진시킨 것은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일부에선 금감원 노조의 비판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나온다. 채용비리 연루자의 승진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지만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금감원장의 사퇴까지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금감원 인사에 관한 불만은 지난해 말부터 계속해서 제기됐다. 금감원이 직원 특별 승진제도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특별승진 대상을 금감원장이 추천하는 제도다. 특별승진 대상에 이름을 올린 직원은 인사윤리위원회를 거친 후 금감원장의 결정으로 승진된다.

당연히 내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승진이 어려운데 특별 승진제도까지 도입되면 승진에서 떨어진 직원의 허탈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사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윤 원장의 금감원 장악력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윤 원장의 연임 가능성이 나오자 이를 의식한 노조가 채용비리 연루자의 승진을 빌미로 금감원장 때리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인사 불만이 내홍 키웠나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채용비리 연루자의 승진 얘기가 나왔지만 노조가 이번처럼 강력하게 대응하지는 않았다”며 “내부에 인사에 관한 불만이 쌓인 상황에서 금감원장의 입김이 커지는 걸 우려해 행동에 나선 게 아니겠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귀띔했다. 그는 “노조는 사회정의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단체로 생각하지만 노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의 권익을 지키는 것”이라며 “그 권익은 승진과 임금, 고용안정 등으로 이번 사태의 원인도 사실 여기에 있다”고 꼬집었다. 금감원 노조의 금감원장 때리기가 명분 있는 비판인 동시에 밥그릇을 지키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