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CEO가 배워야 할 류현진 DNA

▲ 류현진은 건장한 체구에서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뿌린다. 마인드도 단단하다. 그의 타고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MLB가 반했다.
류현진이 MLB 장벽을 뚫었다. 자존심을 팽개치고 헐값으로 장벽을 넘은 게 아니다. 특급대우를 받았다. 이는 세계시장 진출을 노리는 중소기업 CEO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류현진 DNA’를 벤치마킹하면 세계시장을 공략할 전략을 세울 수 있어서다.

# 때는 2005년 6월 7일 화요일 오후. 청룡기고교야구대회 8강전(동산고 vs 성남고)이 열리고 있었다. 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당시)은 이 경기를 TV로 느긋하게 보고 있었다. 영입리스트에 오른 고교생을 보려 했던 게 아니다. 평소처럼 TV를 켰고, 경기를 봤다.

TV를 보던 김 감독은 깜짝 놀랐다. 건장한 체격의 동산고 왼손투수가 성남고 타선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9이닝 2피안타 무실점 17탈삼진. 김 감독은 외쳤다. “물건이다.” 한화 스카우팀에 곧장 연락해 “저 왼손투수를 잡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외면 받던 투수, MLB 진출

류현진의 학교인 동산고는 인천에 있었다. 당연히 인천이 연고인 SK 와이번스에게 우선지명권이 있었다. 그런데 그해 연말 돌발사태가 벌어졌다. SK가 다른 선수를 지명한 것이다. 2차 지명권을 가진 롯데도 그를 영입하지 않았다. 팔꿈치 수술이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자 한화가 그를 덥석 물었다. 황금이 넝쿨째 들어온 셈이었다. 스카우트팀은 반신반의했지만 김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그 왼손투수는 입단 첫해 한화의 기둥투수로 성장했다. 등번호 99번, 류현진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 2006년 4월 13일. 스포츠신문이 난리법석을 피웠다. 거물급 신인투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신인투수는 그해 4월 12일 열린 LG트윈스와의 경기에서 7과 3분의1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신인 데뷔전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10개)도 덤으로 세웠다. 김 감독이 TV로 봤던 그 선수, 류현진이었다.

첫 등판에서 돌풍을 일으킨 류현진은 시즌 막판까지 무시무시한 공을 뿌렸다. 그해 신인 최다승 타이기록인 18승을 올렸고, 평균자책점(2.23), 최다 탈삼진(204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상(MVP)과 신인선수상을 동시에 거머쥐는 영예도 안았다.

류현진의 별명은 괴물이다. 별명답게 그는 한국프로야구에서 괴물 같은 성적을 올렸다. 7시즌을 뛰는 동안 190경기에 출장해 98승52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 탈삼진 1238개를 기록했다. 골든글러브는 두차례(2006• 2010년) 받았다. 2010년 5월 11일 청주 LG전에서는 17개의 탈삼진을 기록해 불세출 스타 선동렬의 아성(16개)까지 단숨에 뛰어넘었다.

2009년 8월 18일 대전 삼성전부터 2010년 8월 17일 잠실 LG전까지 계속된 29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선발투수가 6이닝 이상 던져 3자책점 이하 기록)는 류현진 기록의 백미다. 그런 그가 태극마크를 달고 메이저리그(MLB)에 입성했다. 자존심을 팽개치고 헐값으로 간 것도 아니다. LA다저스는 계약금 500만 달러를 포함해 6년간 3600만 달러를 보장했다. 팀의 3선발급 대우다. 입찰금액까지 포함하면 류현진의 몸값은 7000만 달러에 육박한다. 그동안 MLB가 한국프로야구를 변방으로 여겼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몸값이다.

거액의 돈을 받고 MLB에 입성했지만 그가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모른다. 하지만 LA다저스가 류현진의 가치를 현재가지 높게 평가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세계시장 진출을 노리는 국내 중소기업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 류현진의 DNA를 벤치마킹하면 글로벌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어서다. 그럼 콧대 센 MLB가 무슨 이유에서 류현진에게 반했는지 살펴보자.

류현진은 무엇보다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가 있다. 그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좌완 강속구 투수다. 최고시속은 150㎞를 훌쩍 넘는다. 평균구속은 MLB 평균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공의 힘은 월등하다.

투수가 던진 공의 초속•종속•낙차•좌우폭을 입체적으로 측정한 자료 PTS를 보면 류현진의 직구는 MLB 평균 투수보다 12㎝ 이상 더 떠오른다. 공의 힘이 타석까지 유지된다는 이야기로 타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공이 높게 들어오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체인지업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류현진은 직구를 던질 때와 똑같은 폼에서 체인지업을 뿌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MLB 관계자들은 이 능력을 최고로 꼽는다. CBS스포츠는 “타자가 속을 만한 체인지업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스포츠 전문 웹진 블리처 리포트는 “정제된 체인지업”이라고 극찬했다.

직구와 체인지업만이 아니다. 이른바 커브•슬라이더 등 ‘옵션무기’의 성능도 괜찮다. 경기에서 핵심무기가 통하지 않을 때, 이를 대체할 만한 카드가 있다는 얘기다. 기업으로 따지면 포트폴리오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체력 또한 수준급이다. 188㎝•105㎏의 당당한 체구가 말해주듯 류현진은 마당쇠 체력을 갖고 있다. 2006년 입단 후 올해까지 7년 동안 1269이닝을 던졌는데, 까다롭다는 메이저리그 피지컬 테스트에서도 별 이상증상이 나오지 않았다. 류현진의 내구성을 MLB가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제품의 내구성이 해외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해외시장에서 통하려면 하드웨어만 좋아선 안 된다. 소프트웨어의 경쟁력도 기본이다. 류현진 역시 그랬다. 언급한 것처럼 류현진의 하드웨어는 훌륭하다. 웬만한 외국선수보다 뛰어나다. 주목할 점은 하드웨어만으로 MLB에 입성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류현진은 야구선수의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마인드가 단단하다. 그는 한국프로야구의 꼴찌팀 한화의 에이스였다. 그가 던질 때면 실책이 속출해 승리를 번번이 날렸다.

그러나 류현진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선수가 실수하면 되레 “괜찮다”는 미소를 보였다. 팀의 리더 역할을 하는 투수가 마운드에서 흔들리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신뢰를 준다. 기업 CEO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닥쳤을 때 직원을 다그치는 리더를 누가 믿겠는가. 때론 실수를 눈감아주고, 책임을 떠안을 때 조직에 신뢰가 쌓인다. 특히 리더의 강한 마인드는 기업의 내성耐性을 키우는 데 한몫을 한다. 류현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중소기업 CEO가 배워야 할 건 또 있다. 류현진의 뚝심이다. 류현진과 LA 다저스와의 협상은 진통을 겪었다. 계약내용에 마이너리그 옵션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끝까지 버텼다. 이 정도 계약에 사인을 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계약마감 5분 전까지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이번에 계약이 안 되면 한국에 돌아가 더 실력을 키우고 오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류현진의 뚝심을 읽은 LA 다저스는 마이너리그 옵션 조항을 삭제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뚝심으로 역사에 획 긋다

▲ LA다저스 공식입단식에서 류현진이 환하게 웃고 있다.
류현진은 MLB 진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의 더 큰 목표는 MLB에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마이너리그 옵션조항을 두고 끝까지 버틴 이유는 MLB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마이너리그로 추락하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세계시장 진출을 최종목표로 뛰고 있는 일부 중소기업 CEO가 배워야 할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해외시장에 진출한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해외에서 어떻게 마케팅을 하고, 어떻게 실력을 발휘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류현진은 MLB에서도 등번호 99번을 단다. 한국에서 7년 동안 달았던 등번호다. 해외진출 선수 중 자신의 등번호를 해외에서도 사용한 이는 이승엽(롯데 마린스 36번)이 유일하다. 류현진이 ‘자부심’을 등에 단 셈이다. 그렇다. 류현진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계 최고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득실거리는 MLB에서…
이기현 기자 Lkh@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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