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느슨했던 석유관리원
그사이 관행이 된 불법
눈치 보며 단속하니 문제

여기 관행이 있다. 단속 주체는 지금껏 관행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단속 주체가 관행을 문제 삼고 나섰다. 정치권에서 한마디를 들었던 것 같다. 양쪽 모두 목소리를 높인다. 관행을 일삼던 쪽은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단속하는 쪽에선 법에 따른 조치라고 맞받아친다. 어떤가. 관행을 관행이라 주장하는 쪽도, 지금까지 관행을 핑계로 단속하지 않았던 쪽도 문제이지 않은가. 더스쿠프(The SCOOP)가 석유관리원과 주유소의 황당한 갈등을 취재했다.  

주유소 업계에서 석유관리원이 과도한 단속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주유소 업계에서 석유관리원이 과도한 단속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주유소를 대상으로 석유관리원의 과도한 단속과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2월 25일 김정훈 한국석유유통협회 회장이 협회 정기총회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도 이런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도대체 석유관리원이 뭘 어떻게 했기에 석유유통협회가 끊임없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걸까. [※참고 : 석유관리원은 석유 유통시장을 관리·감독하는 공공기관이다.] 석유유통협회 측의 설명을 풀어보면 대략 이렇다.

예컨대 주유소들이 간혹 영업을 하다 보면 거리가 멀리 떨어진 거래처와 장기계약을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계약 방식은 단점이 있다. 거래처에 기름을 전달하는 게 비효율적이란 점이다. 그래서 A주유소는 거래처와 가까운 B주유소에 대신 기름을 공급해달라 요청하고 계약을 맺는다. 수익금은 두 주유소가 나눠 갖는다. 이렇게 하면 모두 다 이득인데, 석유관리원이 왜 굳이 단속을 하느냐는 거다. 

석유유통협회 관계자는 “석유관리원은 지금껏 이런 행위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면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걸 묵인하다가 최근 들어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데,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주유소들로선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불만이 있다고 단속을 안 할 수는 없다. 법적 근거가 분명해서다. 앞서 사례로 제시한 행위를 석유관리원이 단속하는 근거는 석유사업법(제39조)과 동법 시행령(제43조)이다. 이 법과 시행령에는 석유사업자가 하지 말아야 할 행위들이 기록돼 있다. 시행령 제2조도 근거다. 

여기엔 석유사업자의 정의가 열거돼 있는데, 다음과 같다. “석유정제업자, 석유수출입업자, 일반대리점, 다른 주유소 또는 일반판매소로부터 휘발유·등유 또는 경유를 공급받아 이를 점포에서 고정된 주유설비를 이용해 다른 주유소, 일반판매소 또는 실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소매업자인 석유판매업자”다. 이 규정을 앞선 사례에 적용해보면, ‘직접 판매’가 아닌 ‘간접 판매’를 꾀한 A주유소는 석유사업법이 정한 영업범위와 영업방법을 위반한 셈이다. 

영업방법 규제 놓고 갑론을박

언뜻 단순한 규제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석유사업자를 명확하게 규정해 놓지 않으면 제품에 하자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어서다. 애먼 실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규제를 꼼꼼하게 해놨다는 건데, 처벌 규정도 만만치 않다. 

석유사업법 제39조와 동법 시행령 제43조를 어기면 1개월간의 영업정지 혹은 1500만원 이하의 과징금을 물 수 있다. 처벌이 결코 가볍지 않은 셈이다. 

다른 사례 하나를 더 보면 석유사업법과 시행령이 왜 주유소의 영업범위나 영업방법을 까다롭게 규제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등유나 경유를 적재용량 5kL 이하의 탱크로리에 주유기를 부착한 상태로 실소비자에게 판매(일반적인 가정용 배달)하는 건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탱크로리를 이용해 자동차나 건설기계(덤프트럭이나 콘크리트믹서 트럭)에 직접 주유하는 건 불법이다. 주유소에서만 주유할 수 있다. 의미 없는 규정 같지만 그렇지 않다. 

건설기계를 운용하는 이들은 혼합유(일명 가짜석유)를 주유한 후, 실제 주유량보다 많은 유가보조금을 받아낼 수 있다. 석유판매업자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판매할 때보다 마진을 좀 더 남길 수 있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모두 이득을 본다. 이는 엄연히 불법이다. [※참고 : 유가보조금 제도는 2001년 정부가 유류세를 인상하면서 인상분의 일부를 보전해주기 위해 만든 제도다. 가짜석유를 넣으면 실제보다 기름을 덜 넣고도 높은 유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장에서 이런 행위는 숱하게 벌어진다. 가짜석유 판매나 품질부적합 석유제품 판매 등 불법행위 적발 건수도 2014년 339건에서 2018년 584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주유소의 영업방법을 규제하는 것은 시장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 단속을 해보면 주유소 등록만 해놓고, 이동판매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동판매는 감시를 하기가 어렵다. 이동판매 과정에서 가짜 석유가 많이 유통되는 것도 그래서다.” 유통질서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영업방법을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석유관리원 지금까지 뭐 하다가 

그렇다면 너무도 합법적인 석유관리원의 영업방법 단속에 주유소들이 발끈하고 나선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석유관리원이 지금껏 이런 위반 행위를 엄격하게 단속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짜 석유 판매나 품질부적합 석유제품 판매 등 불법행위 적발 건수는 매년 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가짜 석유 판매나 품질부적합 석유제품 판매 등 불법행위 적발 건수는 매년 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이전에도 단속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최근 들어 단속 건수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공정경쟁 질서 확립의 목소리가 커지고, 정치권에서도 이 부분에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에 단속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석유시장의 유통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에 충실해야 할 석유관리원이 여론과 정치권의 눈치를 본다는 거나 다름없다. 

불법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관행적으로 해오던 걸 왜 이제 와서 따져 묻느냐”는 석유유통협회 측의 주장도 황당하지만, 엄격하게 단속하지 않았던 석유관리원에도 책임이 있다. 

최근 “정부가 세금을 더 걷으려 엄격하게 단속한다”는 엉뚱한 뒷말이 쏟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석유관리원 측은 “그럴 리가 있겠는가”라며 “오해에서 비롯된 추측”이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오해를 만든 게 누구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하던 이들이 늘어놓는 말은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c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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