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녹색기업 창업펀드
청산한 펀드도 자료는 전무
평가도 없고 담당자도 몰라

창업펀드는 대략 7~8년의 기간에 걸쳐 투자와 회수가 이뤄진다. 이런 점에서 펀드의 평가는 모든 자금을 회수한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든 지자체든 펀드 조성액 목표만 달성하면 성과를 홍보하기 바쁘다. 그렇다고 회수가 끝난 시점에 평가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시가 2011부터 2013년까지 조성했던 ‘녹색기업 창업펀드’를 통해 창업펀드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서울시는 각종 창업펀드를 조성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서울시는 각종 창업펀드를 조성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서울시가 낸 보도자료 하나를 보자. “2018년부터 혁신기업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미래혁신성장펀드’가 3년 만에 조성 규모 2조1000억원을 돌파했다. 당초 2022년까지 5년간 1조2000억원을 목표로 잡았는데, 펀드 조성 규모가 3년 만에 목표치의 172%를 달성했다.

이 펀드는 민간 벤처캐피탈(VC)이나 은행으로부터 투자 또는 대출을 받기 어려운 501개 중소ㆍ혁신기업에 투자함으로써 ‘모험자본’이자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한 ‘씨앗자본’의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서울시는 향후 5000억원 규모(서울시 출자금 473억5000만원)의 ‘미래혁신성장펀드’를 추가로 조성해 또다른 투자에 나설 것이다.”

‘미래혁신성장펀드’는 4차 산업혁명, 스마트시티, 문화콘텐츠, 창업지원, 재도전 지원, 서울바이오 등 6개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다. 서울시는 그동안 이 펀드에 770억5000만원을 출자했는데, 펀드 조성이 시작된 2018년부터 순차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보도자료의 요점을 간추리면 대략 이렇다. ▲서울시가 혁신기업들을 키우기 위해 조성한 펀드의 규모가 목표치를 뛰어넘는 ‘성과’를 냈고 ▲이 펀드를 통해 혁신기업들의 생태계가 좋아졌으며 ▲따라서 펀드를 추가 조성해 더 많은 혁신기업들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제 막 펀드를 통해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면서 성과부터 홍보하고 있어서다. 더구나 ▲펀드 운용사가 과연 혁신기업에 투자했는지 ▲해당 펀드에 순수 민간자본(공적자본이 아닌)이 얼마나 투입됐는지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는지 등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다.[※참고: 실제로 지자체가 조성하는 펀드에는 정부의 모태펀드와 공공기관이 운용하는 펀드들이 상당수 포함되기 때문에 민간자본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펀드에 서울시만 투자한 게 아니기 때문에 현황 자료를 공개하기 힘들다”면서 “평가는 펀드 운용이 다 끝나봐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펀드의 운용이 끝난 후엔 평가를 제대로 했을까. 이 질문의 답을 풀어보기 위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460억원을 조성했던 ‘녹색기업 창업펀드’를 살펴봤다. 

펀드 청산해도 평가는 전무

시계추를 2011년 3월로 돌려보자. 당시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녹색기술 중소기업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금을 지원해 서울형 녹색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겠다.” 그러면서 “향후 4년간 400억원의 녹색기업 창업펀드를 조성해 신재생에너지, LED, 그린빌딩, 그린카, 에너지 고효율화, 대기질 개선기술, 소음과 악취 저감기술 등에 관련된 업종에 투자하겠다”고 전했다. 

펀드의 존속기간은 7년이었다. 4년간 투자하고, 3년간 회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2011~2012년에 걸쳐 조성된 펀드는 투자와 회수절차가 마무리돼 청산됐다.[※참고: 물론 직접투자는 아니었다. 정부의 모태펀드 출자 운용사 중에서 한곳을 선택해 간접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서울시는 460억원 중 60억원을 서울산업진흥원(SBA)을 통해 출자했다.] 

“평가는 펀드 운용이 다 끝나봐야 할 수 있다”는 서울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녹색기업 창업펀드’의 상세한 평가가 이뤄졌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담당부서 관계자들과의 취재 내용을 1문1답으로 풀었다. 먼저 당시 펀드 조성을 담당했던 환경정책과에 문의했다. 

취재팀 : “녹색기업 창업펀드의 상세한 평가 자료를 보고 싶다.” 

환경정책과 관계자 : “담당 부서가 녹색에너지과로 바뀌었다. 자료도 다 넘겼다. 지금 환경정책과에는 해당 펀드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녹색에너지과에  물어봐라.”

취재팀은 곧바로 녹색에너지과에 문의했다. 그러자 이들은 ‘핑퐁게임’을 시작했다. 

취재팀 : “녹색기업 창업펀드의 담당부서가 녹색에너지과로 변경됐다는 말을 들었다. 이 펀드 관련 평가 자료를 보고 싶다.”

녹색에너지과 관계자 : “2011년과 2012년 펀드는 청산됐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펀드 운용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나 평가 자료 같은 건 없다. 너무 오래된 사업이기도 하고, 담당자도 바뀌어서 아는 이가 없다. 당초 환경정책과가 담당했으니 거기에 문의해보라. 현재 진행 중인 2013년 펀드에 관한 자료만 있다.”

녹색기업 창업펀드는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기간에 진행한 사업이다.[사진=뉴시스]
녹색기업 창업펀드는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기간에 진행한 사업이다.[사진=뉴시스]

이런 상황을 서울시 공보를 담당하는 대변인실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대변인실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담당하는 창업펀드는 한두개가 아니니 관련 내용은 담당 부서에 직접 문의하라”면서 “해당 부서에서 관련 자료가 없다면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문제가 뭔지 모르고 있다는 거다.

창업펀드 정보는 깜깜이

물론 서울시가 수십억원의 자체 예산을 투입한 사업을 유야무야 처리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담당 부서에 변변한 평가 자료가 없다는 점은 문제다. 펀드 조합명, 운용사명, 해당 펀드를 통해 투자를 받은 기업 등을 모아놓은 자료는 있지만 이는 현황일 뿐이다.

[※참고: 이에 따르면 녹색기업 창업펀드를 통해 총 12개 기업이 105억5000만원을 투자받았는데, 60억원을 출자한 서울시는 ‘출자금 기준 1.75배의 정책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출자금보다 많은 투자금이 기업에 투입됐다는 건데, 이게 서울시가 밝힌 평가의 전부다. 정말 투자가 필요한 기업에 투자했는지, 투자를 했지만 성과가 미미한 기업은 없었는지 등은 알 길이 없다.] 

투자를 했으면 꼼꼼하게 모니터링 과정을 밟아야 한다. 녹색기업 창업펀드처럼 공적 예산이 투입됐다면 더욱 치밀하게 진행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창업펀드가 진짜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녹색기업 창업펀드를 처음 진행한 이는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이를 검증하는 절차도 오 시장의 몫이어야 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