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제로웨이스트 매장 가보니…
제로웨이스트 열풍 속 과제

샴푸 한 통을 다 쓰니 플라스틱통 하나가 쓰레기로 나온다. 그게 싫어 리필 제품을 샀더니 이번엔 비닐용기가 쓰레기로 나온다. “알맹이(샴푸)만 살 수는 없을까?” 이런 소비자의 요구에 발맞춰 포장재 없이 제품만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매장이 확산하고 있다. 그 대열엔 이마트ㆍ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도 있다. 그렇다면 제로웨이스트 매장은 쓰레기 대란 시대에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마트 ‧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들도 ‘제로웨이스트’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마트 ‧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들도 ‘제로웨이스트’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가 화두로 떠올랐다. 글자 그대로 ‘폐기물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거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플라스틱 폐기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증가했다. 그 중심에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고,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MZ(밀레니얼ㆍZ)세대가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상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알맹상점’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것도 MZ세대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알맹상점은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다회용 빨대ㆍ화장솜ㆍ생리대, 친환경 수세미 등 공산품을 포장재 없이 ‘알맹이’만 판매한다. 화장품이나 세제 등은 소비자가 직접 용기를 가져와 리필해갈 수 있도록 소분 판매하고 있다. 용기를 가져오지 않은 경우 매장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재사용 유리병이나 플라스틱병을 이용할 수도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알맹상점을 찾는 소비자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여름 기운이 부쩍 느껴지기 시작한 지난 11일 찾아간 알맹상점엔 평일 낮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곳에서 만난 김은경(34)씨는 알맹상점에 네번째 방문이었다. 그는 “집에서 가져온 용기에 세제를 담아 구입했다”면서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지만 플라스틱 사용을 어떻게든 줄이고 싶어 알맹상점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맹상점이 인기몰이에 성공한 탓인지 대기업이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 매장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이마트와 아모레퍼시픽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9월부터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리필해주는 자판기 ‘에코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 성수점을 시작으로 왕십리점·죽전점·영등포점과 트레이더스 안성점·수원점 등 총 9개 매장에서 에코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참고: 에코 리필스테이션은 환경부의 생활화학제품 소분 리필 판매 시범사업이다. 유통사인 이마트와 세제 제조사인 슈가버블이 참여했다.] 

에코 리필스테이션의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첫 이용 고객이라면 비치된 리필 용기를 구입(500원)한 후 기기에서 원하는 제품을 선택해 담아가면 된다. 리필 가격은 동일한 일반 제품보다 35~39%(세탁세제 6900원→4500원, 섬유유연제 5900원→3600원) 저렴하다. 이마트 관계자는 “에코 리필스테이션 이용 고객이 지난해 11월 기준 1000여명에서 올해 3월 2300여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상반기 이마트 2곳에 에코 리필스테이션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화장품을 리필해갈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아모레스토어 광교’ 매장에 리필스테이션을 선보인 데 이어 4월에는 ‘아모레스토어 헤어&바디(이마트 자양점 입점 매장)’ 매장에도 리필스테이션을 설치했다. 

이용 방법은 이마트와 비슷하다. 고객이 리필 전용 투명 용기를 구매(500원)한 후 원하는 제품(샴푸ㆍ린스ㆍ바디워시)과 용량(300·500g)을 선택하면 직원이 용기에 제품을 담아준다. 다 쓴 용기를 가지고 재방문할 경우엔 리필 제품 가격을 10% 할인해준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직 리필스테이션 운영 초기 단계지만 소비자의 반응이 긍정적이다”면서 “친환경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방침이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포장재 등을 줄인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불필요한 포장재 등을 줄인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렇게 대기업까지 제로웨이스트 대열에 동참하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를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화두로 떠오른 ESG(EnviormentㆍSocialㆍGovernance) 경영의 일환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시월 건국대(소비자정보학) 교수는 “가치 소비를 하는 경향이 강한 MZ세대는 자신들이 당면한 환경 문제를 소비의 과정에서 해결하고자 한다”면서 “아울러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지속가능한 소비ㆍ친환경 소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제로웨이스트’ 활동은 시대에 걸맞은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들 제로웨이스트 매장은 ‘쓰레기 대란 시대’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마트 에코 리필스테이션과 아모레퍼시픽의 리필스테이션에선 해당 매장에서 구입한 전용 리필 용기에만 리필할 수 있다. 소비자가 직접 가져온 별도의 용기에는 리필이 불가능하다. 

업체들은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 친환경 용기”라면서 “살균 등을 해야 하는 만큼 내구성과 안전성을 위해 전용 용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싶은 소비자로선 ‘플라스틱 용기를 한번은 구매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아모레퍼시픽 리필스테이션을 방문한 김하나(28)씨는 “리필 용기를 다양하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친환경 소재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플라스틱이라는 점도 소비자에겐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확대하기 위해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화장품의 경우 매장 안에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가 상주해야만 리필용 소분 판매가 가능하다. 이는 리필스테이션 등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활성화하는 데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참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0년 3월부터 맞춤형화장품 조제관리사에게만 화장품의 소분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아모레퍼시픽의 리필스테이션엔 맞춤형화장품 조제관리사가 상주하고 있다.] 

위생상 우려가 큰 제품은 차치하더라도 샴푸ㆍ린스ㆍ바디워시 등 변질 우려가 적은 품목은 관련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시월 교수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제로웨이스트 매장은 점차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도 보완을 통해 제품군을 순차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 열풍을 이끈 건 소비자다. 이제 기업과 제도(정부)가 움직일 차례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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