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제로 상점 엄마들과의 수다
산기슭에 만든 산 살리는 매장
제로웨이스트로 향하는 여정

포장재 없이 제품만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매장이 하나둘 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제로웨이스트 매장은 정부나 기업이 나서서 만든 게 아니다. 기업들이 환경 문제에 책임을 갖고 만든 매장도 있긴 하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제로웨이스트 매장은 ‘넘쳐나는 폐기물’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던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제로웨이스트 매장 중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지난 6월 경기도 부천시에 문을 연 ‘산제로 상점’은 엄마들이 만든 제로웨이스트 매장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엄마 마음’으로 만든 곳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산제로 상점을 직접 운영 중인 세명의 엄마를 만났다. ‘토끼(이하경ㆍ대표)’ ‘염소똥(이미애)’ ‘소금인형(강은영)’이라는 별칭으로 자신들을 소개한 이들은 어떤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만들었을까.

이하경 · 이미애 · 강은영 엄마는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 산제로 상점을 열었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이하경 · 이미애 · 강은영 엄마는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 산제로 상점을 열었다”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 ‘산제로 상점’ 이름이 독특한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이하경 대표(이하 이하경) : “‘산’에는 여러 의미가 있잖아요. ‘사다’라는 소비의 의미도 있고 ‘산山’이라는 의미도 있죠. 산제로의 산엔 저희가  무심코 해온 소비를 ‘산을 되살릴 수 있는 소비’로 바꿔보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제로는 ‘플라스틱ㆍ포장재가 없는 소비’를 지향하자는 뜻이죠.”

✚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의기투합한 매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이하경 : “맞아요. 산제로 상점의 엄마(부모)들은 초ㆍ중등 대안학교인 ‘산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예요. 산제로 상점도 산학교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만들었죠.”

강은영 : “사실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열 것이란 생각은 전혀 안했어요. 엄마들 모두 환경 문제를 걱정하면서 각자 ‘작은 실천’만 하고 있었죠.”

✚ 원래 환경에 관심이 많았나요?
이미애 : “저는 영양사ㆍ식생활 강사로 일하다 보니 환경에 관심이 많았어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찾다보니 자연스레 ‘환경’으로 연결이 돼더라고요. 그러다 육아를 하면서 더 큰 문제의식을 갖게 됐어요. 미세플라스틱만 보더라도 그래요. 우리가 쓰는 플라스틱이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거니까요.”

강은영 :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기폭제가 됐어요. 택배부터 배달음식까지 일회용 폐기물이 넘쳐났잖아요.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같은 뜻을 품고 있어서였을까. 산제로 상점은 작은 계기를 씨앗 삼아 빠르게 뿌리내렸다. 그 시작은 지난해 12월이었다. 산제로 상점 엄마들은 서울의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방문했다.

‘어떻게 폐기물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구경차 찾아간 매장이었다. 제로웨이스트 매장들은 놀라웠다. 엄마들은 ‘포장재 없이 이렇게 제품을 구입할 수 있구나’ ‘친환경 제로웨이스트 제품도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라면서 감탄했다.


하지만 한가지 맹점이 있었다. ‘환경에 도움을 주겠다’면서 부천에서 서울의 제로웨이스트 매장까지 가는 건 어쩌면 모순이었다. 차로, 버스로,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서였다.

✚ 다른 제로웨이스트 매장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나요?
이하경 : “처음엔 제로웨이스트 매장에 구경하러 간 거였어요. 가보니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더라고요. 다양한 환경 캠페인을 펼치는 ‘거점’ 같은 곳이었죠. 이런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가까이에 있다면 좋을 텐데. 멀리 찾아가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죠. 우리 동네에도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희가 해보자’로 바뀐 거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어요(웃음).”


이미애 : “그 후론 물 흐르듯 진행됐어요. 산학교 학부모 중에 뜻이 있는 여섯명의 엄마와 세명의 아빠가 모였어요. 가장 큰 고민은 ‘공간’을 마련하는 거였는데 마침 학교에서 제안을 해왔어요.”

✚ 어떤 제안이었나요?
이하경 : “학교에 유휴공간이 있었어요. 아이들의 ‘밴드실’ 등으로 활용했던 공간인데 작고 습하다는 단점이 있었죠. 학교 측에서 부모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죠.”

강은영 : “그때부터 공간을 쓸고 닦고, 학교에서 버려지는 사물함을 가져다 선반을 만들었어요. 직접 페인트칠도 했죠. 졸업생들이 찾아와 ‘이 공간이 이렇게 멋진 곳이었느냐’며 놀라더라고요(웃음).”

사실 산제로 상점을 만든 것 자체가 ‘업사이클링(upcyclingㆍ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었다. 버려진 공간은 그렇게 쓸모를 찾았고, 산제로 상점은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었다.

✚ 다른 준비 과정도 순탄했나요?
이하경 : “9명이서 조금씩 자금을 모았어요. 그리고 ‘사업자 등록팀’ ‘매장 시설 준비팀’ ‘홍보팀’으로 나눠 준비했죠. 한달에 두세번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나갔어요.”

이미애 : “무엇보다 부천시사회적경제센터가 운영하는 ‘단비기업 창업지원사업’에 신청한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자칫 과정이 느슨해질 수 있는데 단비기업 멘토링 지원 등을 받으면서 협동조합 설립부터 개점까지 순조롭게 이뤄졌죠.”

지난 6월 문을 연 산제로 상점은 ‘산을 살리는 소비’를 지향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난 6월 문을 연 산제로 상점은 ‘산을 살리는 소비’를 지향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산제로 상점엔 어떤 제품들로 채웠나요?
이하경 : “제로웨이스트 매장인 만큼 세제를 소분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소비자가 용기를 가져오시면 세제를 원하는 만큼 담아갈 수 있죠. 커피나 빵·쿠키도 텀블러나 용기를 가져오시는 경우에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미애 : “자연분해되고 재사용이 가능한 생활용품, 친환경 세제, 비누 등을 판매하고 있어요. 특히 관련 경력을 갖고 있는 엄마들이 직접 만든 상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수세미는 엄마들이 산학교 담장에 직접 수세미를 심어 재배한 거예요. 칫솔꽂이, 명함꽂이 등 나무 제품은 목공방을 운영하는 아빠가 자투리 나무로 만들었죠. 아토피를 겪다 직접 비누와 화장품 공방을 운영하게 된 엄마의 제품도 있고요.”

강은영 : “제품 선물 포장은 ‘소창행주’로 하고 있어요. 소창행주 역시 엄마가 직접 만들었는데, 삶아 빨수록 천이 더욱 질겨지고 흡수력이 좋아져 오래 두고 쓸 수 있죠.”

✚ 제로웨이스트 매장엔 환경 부담을 덜어주는 제품들이 많지만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하경 : “사실 제품을 소분해서 판매하는 게 더 저렴해야 하는데, 오히려 비싼 경우가 많아요.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제품 자체가 비싸기도 하고,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비싼 임대료 부담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 보니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운영하는 게 녹록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다른 제로웨이스트 매장과 함께 제품을 공동구매하고 좀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방안을 강구 중입니다.”

✚ 산제로 상점의 다양한 역할도 고민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미애 : “네, 맞아요. 저희는 운 좋게도 임대료 부담을 덜었잖아요. 그만큼 공익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공익적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죠. 일단 ‘재활용 거점’ 역할을 하고자 해요. 예컨대, 재활용 선별장에서 선별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작은 폐플라스틱’을 산제로 상점에서 모으는 건 그 일환이에요. 수거한 폐플라스틱은 S자 고리, 비누받침, 치약짜개 등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어요.”

✚ 또 다른 친환경기업과 함께하는 ‘콜라보 활동’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강은영 : “부천시 친환경 기업 ‘에코말리온’과 협업하고 있어요. 에코말리온은 산제로 상점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죠.”

✚ 또 다른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나요?
이미애 : “지난 9월 6일에는 ‘자원순환의 날’을 맞아 다른 제로웨이스트 매장과 협업해 ‘우유팩·멸균팩’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우유팩과 멸균팩은 재활용 가치가 매우 높은 자원이에요. 특히 우유팩은 고급 펄프로 만들어 휴지로 재활용할 수 있죠.”

이하경 : “그럼에도 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종이와 함께 버려지는 경우가 숱해요. 집 앞 분리수거함에 고철이나 PET처럼 우유팩ㆍ멸균팩 수거함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죠. 제로웨이스트 매장에선 우유팩ㆍ멸균팩을 수거해 재활용 업체에 보내고 있어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정부·지자체와 기업이 나서 손쉽게 분리배출할 수 있도록 수거함을 만들어야 해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전국의 제로웨이스트 매장들과 함께  SNS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 실제로 환경을 지키기 위해선 개인의 노력만큼 시스템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관官과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하죠.
이미애 : “맞아요. 환경에 관심을 가질수록 딜레마에 빠지는 게 사실이에요. 어쩔 땐 ‘나 혼자 이렇게 노력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하죠. 그래서 연대가 중요합니다. ‘혼자서 떠안아야 할 책임이 아니다’ ‘기업이 책임져야 하고 나라가 정책을 내야 한다’라는 목소리를 함께 내야 해요. 그런 목소리를 만들고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제로웨이스트 매장들의 또 다른 역할입니다.”


✚ 산제로 상점을 찾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강은영 : “처음엔 ‘마니아’라고 할 만큼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주로 찾아오셨어요.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멀리 인천에서 찾아오신 분들도 있었죠.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다 보니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등 종교단체에서도 제품을 구입하러 오시고요.”


이하경 : “부천에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찾아오시는 분들을 보면서 ‘참 많은 사람이 각자 노력하고 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사실 분리수거하는 것도 복잡하고 어렵잖아요. 그런데도 환경을 위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분들이 많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었죠. 한편으론 우리에게 ‘소통’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걸 몸소 깨닫는 계기가 됐죠.”

✚ 그럼에도 희망이 보이는 건 요즘 젊은층이 환경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하경 : “맞아요. 산제로 상점을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로 문의해오는 학생들이 많아요.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대학생까지 환경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더라고요. 그만큼 환경에 관심이 많다는 방증이겠죠. 사실 제가 환경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전문적인 답변을 해주지 못할 때도 많아요(웃음).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은 최대한 설명해주려고 노력하죠. 학생들을 보면서 또 배우고요.”


✚ 산제로 상점을 운영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강은영 :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달라지는 걸 느꼈을 때예요. 대단한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엄마들이 하는 걸 보고 아이들이 배우더라고요. 아이들이 작은 플라스틱을 따로 모으고, 페트병의 라벨을 떼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가  잘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웃음).”


이하경 : “산제로 상점 운영자들뿐만 아니라 산학교 학부모님들도 힘을 보태서 운영하고 있어요. 짬나는 대로 일정을 정해 매장을 관리하죠. 그런 노력을 알았는지 아이가 ‘엄마가 우리를 위해서 하는 일이잖아’라고 하더라고요. 뿌듯했어요.”

✚ 그럼에도 환경을 지키기 위해 갈 길은 멉니다. 제로웨이스트 매장 운영자로서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이미애 : “사실 텀블러나 손수건을 늘 갖고 다니지만 불가피하게 일회용품을 쓰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면 ‘제로웨이스터(Zero waster)가 그래도 괜찮아?’란 눈총을 받곤 해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비슷한 눈길이나 우려 때문에 환경을 위한 노력을 포기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각자가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노력이라도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 산제로 상점의 목표가 있다면요.
이하경 : “부천 지역에서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하나둘 태동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조금 일찍 문을 연 저희가 컨설팅을 해주기도 했고요(웃음). 이렇게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동네 ‘구멍가게’처럼 어디서나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로웨이스트가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일상적 선택’이 되는 거죠. 장기적으로는 산제로 상점이 오래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많은 청년에게 ‘직업 체험의 장’ 또는 ‘인큐베이팅의 장’이 된다면 더 좋겠죠.”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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