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자리로 이어진 국공내전

중국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다 보면 흥미로운 걸 느낄 때가 많다. 그중 하나는 그들의 삶에 ‘역사’가 투영돼 있다는 점이다. 중국 사람들은 어디서든지 자신들의 역사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차 마시는 자리든 술자리든 상관없다. 과거보단 미래를 더 지향하는 우리의 습성과는 약간 다르다.

중국 사람들은 일상에서 역사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사진은 자금성 전경.[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 사람들은 일상에서 역사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사진은 자금성 전경.[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할 때면 필자는 운전사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 그럴 때마다 “한국과 중국이 가장 다른 점은 뭐예요?”란 질문을 많이 받아서인지 나름의 답을 갖게 됐다. 필자가 느끼는 한국과 중국의 차이점 중 하나는 중국은 자국의 역사를 일상대화의 주된 소재로 재미나게 즐기는데 한국은 그러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례 한 토막을 꺼내보자. 필자는 2019년 10월 베이징에서 중국 친구와 식사를 하던 중 도자기와 황색을 주제로 중국 역사 이야기를 나눴고, 대화는 장장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베이징의 상징 자금성紫禁城이었다. 사실 자금성의 역사는 칭기즈 칸 손자 쿠빌라이 칸이 원나라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그후 명나라 영락제가 자금성을 증축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자금성의 기와색이 황제를 뜻하는 황색이 아닌 주황색이었기 때문이다. 표현기술이 부족한 탓이었다. 여기서 시작된 ‘황제의 색’ 이야기는 청나라 말기 서태후의 담화로 이어졌다. 

필자의 친구는 “서태후는 자신의 아들 동치제의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2년간 공들여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그 색이 진정 황제의 황색(皇帝的黃色)이었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자리에 동석했던 다른 친구가 한술 더 떴다. “중국에서 진정한 황제의 황색이 무엇인 줄 아느냐? 그것을 ‘지유황雞油黃(닭기름황색)’이라고 한다.” 그 식당의 물컵이며 그릇이 모두 황색이었기 때문인지 중국 친구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중국인들은 술안주로도 역사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난징南京의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산빈관鍾山賓館 로비에 들어서면 마오쩌둥毛澤東의 ‘인민해방군점령남경人民解放軍占領南京’이라는 시가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46년 6월 26일 국민당 장제스蔣介石와 공산당 마오쩌둥의 국공내전이 발발한 지 3년여 만인 1949년 4월 23일 공산군은 국민당의 본거지인 난징을 점령했다. 국공내전을 끝낸 승전보를 접한 마오쩌둥은 감격에 젖어 일필휘지로 시를 썼는데, 그게 바로 ‘인민해방군점령남경’이다. 

연회장에 들어설 때부터 중국의 역사를 만났기 때문인지, 그날 저녁 술자리에서도 역사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난징에 흐르는 장강長江에서 잡아 올린 새우요리, 난징의 특산 오리요리 옌슈에야鹽水鴨와 함께 난징의 역사 이야기들이 술자리를 채웠다. 

우리나라의 명승지나 국립박물관에서 인파가 북적이는 모습을 보는 건 단체견학을 오지 않는 한 드문 일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국가박물관이나 국립기념관은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처음엔 관광여행사가 여행코스로 잡아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한편으론 공원이나 놀이시설이 부족해서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반바지를 입은 배불뚝이 아저씨가 난징 총통부總統府 안에서 부채질하면서 장제스와 펑위샹馮玉祥의 기록을 진지하게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도 그 아저씨는 그날 저녁 친구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풀어냈을지 모른다. 이렇게 역사와 함께하는 모습이 중국의 문화이자 일상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조국을 사랑하고, 한국의 역사를 중히 여긴다. 하지만 저녁 자리에서 우리 역사 얘기를 일상처럼 꺼내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사실 우리나라보단 외국 역사를 상식이나 이슈로 삼는 이들이 더 많지 않은가. 

베이징의 유명한 귀신거리(귀가鬼街)에서 저녁을 하던 중 동석한 중국 친구들이 “이승만은 친일파인가 친미파인가”라고 물어서 말문이 막힌 적이 있다. 중국에서 TV를 시청하다가 ‘수준 높은 한국 역사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고 놀란 일도 숱하다. 

물론 역사는 흘러간 시간의 기록일 뿐이다. 과거보단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 낫다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일상에서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중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바람직하다. 과거를 꺼리는 건 미래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의 의미를 새기며 미래를 도모하는 게 숙련된 삶의 기술이기도 하다. 

찬란한 미래를 위해 우리 역사를 일상에서 논해보면 어떨까.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흥미롭게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이런 대화가 한중 관계 발전의 새로운 토대가 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임형택 타오싱즈교육기금회 한중우호대사
taoxingz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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