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학술교류 필요한 이유

국내서도 유명한 칭다오맥주의 공장에 가보면 낯선 기록을 볼 수 있다. 칭다오맥주공장에서 일본 삿포로맥주를 생산했다는 거다. 이는 1900년대 일본에 침략을 당했던 중국의 아픈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중국인의 반일감정은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의 관영방송 CCTV는 일본 침략과 관련한 드라마를 거의 매일 방송할 정도다. 그런데도 중국과 일본의 학술교류는 활발하다. 우리는 중국의 이런 역설적 정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14년 중국은 난징대학살이 벌어진 12월 13일을 국가의 제삿날(국가공제일)로 정했다.[사진=연합뉴스]
2014년 중국은 난징대학살이 벌어진 12월 13일을 국가의 제삿날(국가공제일)로 정했다.[사진=연합뉴스]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는 맥주로 유명하다. 2017년 6월 칭다오시를 방문한 필자는 ‘청도맥주’라고 불리는 칭다오맥주의 공장을 견학했다. 공장 내부엔 관광객을 위해 회사의 역사와 관련된 전시물들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낯선 사진 한장이 눈에 띄었다. 일본 삿포로맥주 로고가 들어간 사진이었다. “웬 삿포로맥주 사진인가”란 궁금증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일본이 경영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설명이 덧붙어 있었다. 

칭다오맥주와 삿포로맥주는 대체 어떤 관계였을까. 중국은 아편전쟁(19세기) 이후 잇따른 서양 열강의 침략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산둥성은 독일의 점령지로 전락했다. 그러던 1903년 독일과 영국의 상인이 합작해 맥주공장을 차린 게 칭다오맥주의 시작이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같은 해 8월 23일 일본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명분은 독일이 일본의 연합국인 영국과 적대적이라는 데 있었지만, 일본의 진짜 목적은 산둥성을 점령하는 거였다. 독일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15년 1월 당시 중국 대총통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21개 조항을 요구한다. 그중 첫번째 조항이 ‘독일이 갖고 있던 산둥의 모든 권익을 일본이 계승한다’였다. 칭다오맥주공장에서 삿포로맥주를 생산한 덴 이런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우리 한국에만 아픈 상처를 남긴 게 아니다. 중국 역시 일제의 침략으로 숱한 곡절을 겪었다. 1937년 12월부터 6주 동안 중국 난징南京 시민 30만명이 학살된 ‘난징대학살’은 그 아픔의 상징이다. [※참고: 중국은 2014년 난징대학살이 벌어진 12월 13일을 이른바 ‘국가의 제삿날’인 국가공제일國家共祭日로 정했다.]

난징은 삼국지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수도이자, 주원장朱元璋이 명明나라를 세우면서 수도로 정한 곳이다. 또한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이 1912년 중화민국을 세우면서 수도로 정한 곳으로 중국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일본제국은 부녀자, 어린아이를 가릴 것 없이 철저하게 학살했다. 

난징대학살이 벌어지자 중국은 수도를 충칭重慶으로 옮겼다. 이때 교육 사상가인 타오싱즈陶行知는 충칭 봉황산 속 고성사란 절에 육재학교育材學校를 세웠다. 당시에는 항일전투조직이라는 명분으로 운영됐다. 타오싱즈는 당시 절박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남겼다. 

“전시에는 매 학교가 마땅히 하나의 학문적 조직이자 하나의 전투체가 돼야 한다.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일본군 폭격기가 서쪽에서 날아온다면 누가 적의 낙하산이 봉황산 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떨어져 내려오면 적이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니 때려눕힐 기회를 얻은 것이다.” 

2019년 12월 필자는 육재학교 80주년을 맞아 기념식에 참석했다. 학교의 타오싱즈 기념관은 마오쩌둥毛澤東, 송칭링宋慶齡을 비롯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물론 미국의 존 듀이, 인도의 타고르 등 저명인사들이 타오싱즈를 기린 글을 전시해 놨다. 그중엔 “타오싱즈의 교육사상은 중국에만 속하는 게 아니라 세계적인 것이다”란 일본 학자 사이토 아키오의 글도 함께 걸려 있었다.

예상외로 중국과 일본의 학술교류가 한국보다 훨씬 활발하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지만, 기분이 그리 편치는 않았다. 이런 활발한 중일 학술교류 활동이 전쟁의 상처를 넘어 무역 등 다른 영역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베이징北京 내 명문대학인 중국제2외국어대학에 석사연구생으로 지원한 현황(2018년 기준)을 살펴봐도, 일본어 지원자(96명)는 영어 지원자(204명) 다음으로 많다. 한국어 지원자(29명)는 러시아어(58명), 독일어(34명)보다 적다. 

 

중국과 일본과의 교역, 특히 자동차 부문만 들여다봐도 그 영향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 통계를 보면, 2020년 1~7월 승용차 판매량 중 일본 브랜드 판매량은 229만2800대로 24.1%를 차지했다. BMW, 벤츠, 폭스바겐, 아우디 등을 보유한 독일 브랜드 승용차 판매량 239만1100대(25.1%)와 비슷하다. 반면 한국 브랜드 승용차는 37만7500대로 판매량 비중이 4%에도 못 미친다.

사실, 중국의 그 어떤 기념관을 방문하더라도 항일전쟁을 다루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중국의 공영방송국 CCTV는 일본 침략과 관련한 드라마를 거의 매일 방송한다. 그럼에도 한국보다 일본을 더 가깝게 느끼는, 이 역설에 가까운 중국의 국가 정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요즘 한국은 K-팝 등 한류韓流의 성공으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한류에 흠뻑 빠지길 바라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중국 문화에 한 발 더 다가가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와 학술교류를 확장하려는 노력이 더 많은 협력의 연결고리로 발전할 것으로 믿는다.

임형택 타오싱즈교육기금회 한중우호대사
taoxingz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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