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사업보다 기존 사업 더 많아
재원 확보나 사업 확대와는 무관
책임 주체만 바뀌어 당초 취지 무색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외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부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조5000억원에 이르는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해 운영할 방침이다. 이런 기금을 활용해 다양한 사업들도 펼친다. 그런데 기후대응기금을 투입하는 사업의 면면을 보니 석연치 않다. 50% 이상이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의 명칭과 소관 부처만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운운하면서도 정작 기후대응기금 사업을 기존 사업들로 채웠다.[사진=뉴시스]
정부는 탄소중립을 운운하면서도 정작 기후대응기금 사업을 기존 사업들로 채웠다.[사진=뉴시스]

정부(기획재정부)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재정운용 방침을 내놨다. 지난 1일 개최한 ‘제7회 재정운용전략위원회’를 통해서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거다.

이에 따라 정부는 탄소중립의 이행 원년으로 삼은 2022년부터 예산안(정부안)에 약 12조원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투입 분야는 크게 4가지로 ▲경제구조 저탄소화(8조3000억원) ▲저탄소 생태계 조성(8000억원) ▲공정한 전환(5000억원) ▲제도 운영(2조3000억원) 등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기후대응기금으로 진행된다. 기후대응기금은 지난 8월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신설됐는데, 기금 조성액은 2조5000억원이다.

 ‘원인자 부담원칙’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기업에 부과하는 배출권 유상할당을 통한 수입과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수의 7%를 더해 마련할 계획이다. 쉽게 말해 12조원이 투입되는 사업 중 2조5000억원 규모의 사업이 기후대응기금을 통해 이뤄진다는 얘기다.

[※참고: 기금 재원은 부처 간 합의를 통해 교통시설특별회계에서 68%, 환경개선특별회계에서 23%,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에서 2%를 마련한다. 나머지 7%는 기후대응기금 순증 재원이다.]

그런데 기재부가 기후대응기금을 투입해 진행하겠다는 사업의 면면을 보면 뭔가 이상하다. 대부분이 기존 사업이고, 신규 사업은 많지 않아서다. 기후대응기금 2조5000억원 중 기존 사업에 투입되는 규모는 1조8000억원(72.0%), 신규 사업 규모는 7000억원(28.0%)에 불과하다. 사업 개수를 봐도 총 141개의 사업 가운데 신규 사업은 63개(44.7%)인 반면, 기존 사업은 78개(55.3%)다. 

여기서 ‘기존 사업’이라는 건 기재부가 아닌 다른 부처에서 진행해오던 사업이란 뜻이다. 예컨대, 2022년 기후대응기금을 투입하는 사업 중 가장 큰 금액(2688억원)을 차지하는 건 ‘탄소중립 도시숲 조성사업’인데, 이는 올해 산림청이 진행하고 있는 ‘미세먼지 저감 도시숲 조성관리’ 사업(에너지및자원사업특별회계)의 이름만 바꾼 거다. ‘온실가스관리 인프라 구축’ 사업은 올해 환경부가 진행했는데, 내년부터는 기후대응기금 사업이 된다. 

기후대응기금 취지 무색

이게 무슨 문제일까. 우선 기후대응기금의 설치 취지와 맞지 않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르면 기후대응기금은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신설됐다.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해 기후대응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기후대응기금의 역할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신설 사업 규모가 고작 7000억원에 불과하고, 대부분 기존 사업의 회계만 바꿨으니 재원 확보나 사업 확대와는 무관한 셈이다. 더구나 몇몇 기존 사업은 기후대응기금 사업으로 바뀌면서 예산이 되레 삭감됐다.

기후대응기금이 투입되는 사업 중 두번째로 큰 금액(2245억원)을 차지하는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사업은 올해 2276억원의 예산을 배분받아 국토교통부가 진행하고 있다. 사업 주체와 명칭만 바뀌었는데, 예산만 31억원 삭감된 셈이다. 

‘기후변화대응 기술개발(R&D)’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편성된 사업을 그대로 기후대응기금 신규 사업으로 편성했다. 과기정통부가 진행한 해당 사업의 올해 예산은 1038억원인데, 2022년도 기후대응기금 예산은 473억원에 불과하다. 전년도에 비해 564억원이 줄었다.

또다른 과기정통부의 사업인 ‘탄소자원화 기술고도화(R&D)’는 2021년 45억원에서 2022년 1억5000만원으로 예산이 96.7%나 삭감되기도 했다. 

실질적인 기후대응기금 필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각 담당 부처에서 진행하던 사업이 기후대응기금 사업으로 바뀌면서 혼선이 생길 우려도 있다. 환경부나 국토부, 과기정통부 등이 그동안 진행해온 사업의 책임자가 기재부로 바뀌기 때문이다. 기존 사업집행 주체와 현 책임 주체 간 괴리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다른 부처가 진행하던 사업이 기재부 소관의 기후대응기금 사업으로 묶이면서 정책적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사진=뉴시스]
다른 부처가 진행하던 사업이 기재부 소관의 기후대응기금 사업으로 묶이면서 정책적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사업 정보가 단절될 수도 있다. 기후대응기금이 신설되면서 연도별 비교나 모니터링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기존 사업이 이름을 바꾸고, 소관 부처가 바뀌면 해당 사업의 집행 경위나 연혁을 추적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일례로 기재부 재정정보공개사이트 ‘열린재정’에서는 기후대응기금의 모든 사업을 ‘2022년 신규 사업’으로 묶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외부는 물론 정부 내부에서도 재정 집행 성과나 효율성의 추세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과연 이런 식으로 2050년에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을까.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정부는 안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기후대응기금을 만든 걸까. 

송윤정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
hyounylee@naver.com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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