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집행 기준 무시한 지자체들
무기계약직 보수까지 휴가비로…
예산 전용 심각성 인지도 못 해

모든 예산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용처用處가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용처대로 예산을 사용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가 숱하다. 일부에선 사무관리비나 물품 구입비를 공무원들의 휴가비로 전용해 지원했다. 지난 9월 감사원이 경북도 내 지자체 4곳을 감사한 결과다. 나라살림연구소가 감사를 받지 않은 경북도 내 지자체들을 추가 조사해보니 같은 방식으로 예산을 전용한 곳은 12곳에 달했다. 이 문제 어떻게 해야 할까. 

포항시와 고령군, 성주군은 사무관리비 등의 예산을 직원 휴가비로 지원해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사진=뉴시스]
포항시와 고령군, 성주군은 사무관리비 등의 예산을 직원 휴가비로 지원해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사진=뉴시스]

국내 지방자치단체는 소속 공무원의 후생복지를 위한 예산을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라는 항목으로 통합ㆍ운영하고 있다. 지방공무원 맞춤형 복지제도 운영기준(행정안전부 훈령)에 따른 건데, 이는 공무원의 복지에 이중삼중으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을 막는 일종의 예규다. 

이런 법적 시스템은 또 있다. ‘지방자치단체 세출예산 집행 기준(행정안전부 예규)이다. 이에 따르면 용처用處가 정해져 있는 다른 항목(예산통계목)의 예산을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로 편성해서 사용할 수 없다. 이 역시 공무원의 후생복지에 허투루 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가 이런 예규를 위반해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지난 9월 9일 감사원은 경북도 내 4개 기초지자체(포항시ㆍ고령군ㆍ성주군ㆍ청도군)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포항시와 고령군, 성주군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사무관리비 등에 속한 예산을 소속 공무원의 콘도ㆍ하계휴가비로 추가 편성해 지원했다”면서 “별도의 예산으로 직원의 후생복지를 지원하는 일이 없도록 3개 지자체장에게 주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들 지자체가 지난 4년간 소속 공무원들의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로 사용하기 위해 다른 항목에서 끌어다 쓴 돈은 총 6억7880만원(포항시 3억7560만원ㆍ고령군 2억5320만원ㆍ성주군 5000만원)이었다.

이 돈은 ▲공무원 후생복지 ▲후생복지 증진과 사기앙양 ▲공무원 사기진작 ▲맞춤형 복지제도 지원 등의 명목으로 쓰였는데, 세부사업 내역에 따르면 실제 용처는 ‘직원 휴양시설 회원권 구입’이나 ‘직원 휴양시설 이용료 지급’ 등이었다. 

원래 용처대로라면 사무관리비, 무기계약근로자 보수, 포상금, 자산ㆍ물품취득비 등으로 써야 할 예산이었다. 용처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예산집행이었다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다른 지자체들엔 이와 비슷한 사례가 없을까. 그래서 나라살림연구소는 이번 정기감사에서 제외된 경북도 내 19개 시ㆍ군의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 전용 실태를 조사해봤다.

조사는 감사원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 실시했다. 기간은 올해를 포함해 최근 5년으로 설정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12개 시ㆍ군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예산을 전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자체 잘못된 관행 벤치마킹

감사원이 앞서 3개 지자체 감사를 통해 지적한 것처럼 12개 지자체들도 포상금(5곳), 자산ㆍ물품취득비(5곳), 사무관리비(2곳) 등의 항목에 포함된 예산을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로 전용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이렇게 편성ㆍ지원한 금액은 43억3589만원이었다. 감사원 감사가 이뤄졌다면 비슷한 지적을 받았을 거라는 얘기다. 

지자체 12곳 중 예산을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로 가장 많이 전용한 지자체는 영주시로, 금액은 13억6854만원이었다. 2017년부터 매년 포상금을 전용했다. 

2위는 2년간(2017~2018년) 5억8260만원을 전용한 의성군이었는데, 자산ㆍ물품취득비를 끌어다 썼다. 3위는 매년 포상금을 전용한 구미시로, 4억9274만원을 전용했다. 경산시는 3억9820만원, 영천시는 2억9680만원, 안동시는 2억3710만원, 상주시는 2억649만원, 칠곡군은 1억9570만원, 울진군은 1억9372만원, 김천시는 1억9183만원, 청송군은 1억5120만원, 울릉군은 2096만원을 전용했다. 

울릉군의 경우는 올해 처음으로 다른 지자체 사례를 검토해 추경으로 포상금 예산을 책정하고, 이를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로 전용했다. 다른 지자체의 잘못된 예산집행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추경까지 한 셈이다. 세부사업 내역은 ‘직원 휴양시설 이용료 지급’이었다. 올해 총 6건 중 4건은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에서 지출했지만, 이후 2건은 포상금에서 지출했다. 

5년간 매년 직원들을 위한 휴가용 콘도ㆍ펜션 비용을 지급했던 지자체는 영주시ㆍ구미시ㆍ칠곡군ㆍ울진군 등 4곳이었다. 김천시는 최근 3년간 전용을 했고, 의성군ㆍ안동시ㆍ상주시는 2년간 전용했다. 그 외 경산시ㆍ영천시ㆍ청송군ㆍ울릉군은 각각 1차례씩 전용했다. 

지자체 예산은 예산과목에 따라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크게 세입예산 과목과 세출예산 과목으로 구분한다. 세출예산 과목만 해도 기능별로 13개 분야와 52개 부문으로 나뉘고, 조직별 정책사업, 사업목적별 단위사업, 경비유형별 세부사업에 따라서도 세세하게 분류된다. 성질별로도 38개의 편성목과 128개의 통계목으로 분류된다. 

영주시는 지난 5년간 13억6854만원의 포상금 예산을 직원 후생복지비로 전용했다.[사진=뉴시스]
영주시는 지난 5년간 13억6854만원의 포상금 예산을 직원 후생복지비로 전용했다.[사진=뉴시스]

이렇게 세세하게 분류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예산을 써야 하는지, 예산을 줄인다면 어디서 줄일 수 있는지, 어떤 예산이 모자라고 넘치는지 등을 명확하게 파악해 이를 통해 예산을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예산 전용 심각성 인지 못 해

특히 처음 언급했던 것처럼 공무원 후생복지를 위한 예산을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라는 항목으로 통합해 운영하는 건 공무원의 후생복지에 이중으로 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그래서 전용도 할 수 없도록 해놨다. 결국 지자체들이 다른 곳에 써야 할 돈을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로 전용해 사용하는 건 이런 예산 분류의 원칙과 취지들을 모조리 무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해당 지자체 공무원들은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해당 지자체들에 ‘맞춤형 복지제도 시행경비’ 전용 실태에 관해 지적하자, 상당수 지자체 관계자는 “경북도 내 지자체 집행 사례를 참고해 공무원 복지 차원에서 집행한 것뿐”이라며 책임을 ‘다른 지자체’로 돌렸다. 심지어 몇몇 지자체는 감사원 감사결과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자체의 심각한 모럴 해저드, 괜찮은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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