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낭만을, 누군가에겐 작업을

 

# 하늘에서 내리는 예쁜 쓰레기, 바로 눈입니다. 눈이 더는 눈사람을 만드는 놀이감이 아니란 걸, 데이트할 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던 낭만의 존재가 아니란 걸 군대에서 알았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지역은 추석에서 시작해 식목일까지 눈이 내린다는 전설이 있던 곳, 철원이었습니다. 그만큼 겨울은 춥고 길었습니다. 

# 군 시절, 부대의 특성상 제설 작업이라 하지 않고 제설 작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방탄조끼, 방탄헬멧을 착용하고 총까지 메고 제설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빗자루로 길을 내고 넉가래로 밀어냅니다. 지상에서 산꼭대기 있는 부대까지 눈을 치우다 보면 땀인지, 눈인지 모를 정도로 온몸이 젖었습니다. 작업 중에도 눈이 펑펑 내리는 하늘을 보며 허망하기도 하고, 원망했던 기억도 납니다. 

# 올가을은 유독 춥게 시작한 것 같습니다. 여름 다음에 곧바로 겨울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반소매를 입다가 다음날 패딩 잠바를 꺼내 입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 덕분일까요. 여기저기 나무들이 가을색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더니 이내 낙엽을 떨어뜨리기 시작합니다. 올해는 유독 단풍이 빨리 떨어지는 듯합니다. 

# 가는 가을이 아쉬워 짬을 내 걸어봅니다. 한 줄기 빛이 손수레를 비춥니다. 싸리비와 빗자루, 그리고 마대 자루가 담겨 있네요. 낙엽을 정리하던 아파트 관리원 아저씨가 가져오신 것 같습니다. 손수레에 담겨있는 빗자루를 보니 문득 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 우리가 단풍을 즐기는 동안 누군가는 거리를 깨끗이 치우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거리엔 또다시 수북이 낙엽이 쌓여있을 겁니다. 끝이 안 보이는 작업은 낙엽이 다 떨어지는 그날까지 계속되겠지요. 안 보이는 곳에서 애쓰시는 분들을 생각해봅니다. 그분들의 노고에 고개를 숙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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