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일정 잠정 연기한 SM상선
업사이클 꺾였다는 시장 평가
2023년 공급과잉 불거질 수도

SM상선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기업공개(IPO) 일정을 연기했다. 해운 호황 고점론이 불거지면서 공모주 시장 수요가 기대를 밑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선과 선복량을 확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SM상선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는 점이다. 투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도 관건이지만, 신규 개설할 예정인 미주 동안 노선의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
 

상승곡선을 그리던 SCFI 지수가 4주 연속 하락했다.[사진=연합뉴스]
상승곡선을 그리던 SCFI 지수가 4주 연속 하락했다.[사진=연합뉴스]

2016년 출범 이후 줄곧 조용한 행보를 이어오던 SM상선이 침묵을 깼다. 지난 10월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기훈 SM상선 대표는 “신규 자산 확보와 서비스 네트워크 확대 전략에 집중해 흔들림 없는 탄탄한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로 도약하겠다”며 신규 투자를 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날 공개한 청사진에 따르면 SM상선은 2024년까지 미주 동안東岸 노선을 신규 개설하고, 아시아지역 노선도 기존 9개에서 13개로 늘린다. 노선만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몸집도 키운다. 연간 공급하는 누적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을 2025년까지 172만8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계획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SM상선의 주력 노선인 미주 서안西岸과 달리 동안엔 ‘큰 배’가 필요하다. 현재 SM상선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배는 6655TEU 규모다. 미주 서안 노선을 운영하는 덴 이 배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미주 동안엔 적어도 1만TEU급 이상의 컨테이너선이 필요하다. SM상선이 미주 동안 노선을 개설하기 위해선 1만TEU급 이상의 배를 발주ㆍ매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선복 공급량을 키우기 위해 들여야 할 자금도 만만치 않다. SM상선이 연간 공급하는 선복량은 현재 85만3000TEU 수준이다. 이를 172만8000TEU까지 끌어올리려면 지금보다 2배 이상 확대해야 한다. 

SM상선은 이를 위해 미주 동안 노선에 투입할 1만TEU급 컨테이너선 2척을 비롯, 4300TEU급 2척, 1700TEU급 2척을 신규 발주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부족한 부분은 용선을 통해 보충할 예정이지만 구체적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참고: 용선은 화물운송을 위해 대여료를 지급하고 배를 빌리는 걸 말한다.] 

 

언뜻 봐도 몸집을 키우기 위해 쏟아부어야 할 자금이 만만치 않다. 용선을 제외한 선박 발주에만 2000여억원이 든다. 여기에 컨테이너 2만4000박스, 친환경 설비 등 장비투자 자금을 포함하면 SM상선이 조달해야 할 자금은 총 2777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 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인데, SM상선은 그 방법으로 기업공개(IPO)를 택했다. 올해 초부터 코스닥 상장을 준비해온 SM상선은 지난 10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구체적 계획을 내놨다. 상장 예정인 8461만주 가운데 3384만주를 공모해 6092억~8461억원(순수입금 3020억~4200억원)을 조달하는 게 목표였다. 

해운업이 오랜만에 호황을 맞은 데다, SM상선이 올 상반기 3090억원의 영업이익(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1406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으니 문제 될 게 없었다. 되레 일부에선 “공모가를 낮게 잡았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하지만 상장 예정일(11월 15일)을 10여일 앞둔 지난 3일, SM상선이 돌연 IPO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1~2일 이틀간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를 예측한 결과, 시장의 가치 평가가 기대치를 밑돌았기 때문이었다. 예상 밖 결과였지만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상승곡선을 그리던 해상운임이 한풀 꺾인 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운업황을 가늠하는 데 쓰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지난 10월 둘째주 이후 4주 연속 하락했다. 이를 시장에선 해운업황이 고점을 찍고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였다는 거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거시적으로 봤을 때 시황이 바뀌어가고 있는 건 맞지만 여전히 운임이 높은 수준”이라면서 “다만, 올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내년 이후 더 좋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면, 상승 여력이 떨어진 건 맞는 거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HMM을 비롯한 글로벌 해운사들의 주가가 하락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당장 해상운임이 큰 폭으로 떨어지거나 시장이 침체하진 않겠지만 지금의 해운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더구나 2023년 이후엔 공급과잉 우려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해운이 호황을 맞은 지난해부터 글로벌 해운사들의 선박 발주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했을 때 SM상선이 미주 동안 노선을 신규 개설하고, 선복량을 확대하는 2024~2025년께엔 글로벌 해운사들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 특히 미주 서안ㆍ유럽 노선에 비해 미주 동안 노선의 해상운임은 하락 속도가 더 빠르다. 

이런 맥락에서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한 SM상선도 고민이 많아졌을 공산이 크다.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시장 전망도 곰곰이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호춘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빅데이터연구센터장은 “운임 급등 시기에 국내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국적선사 여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SM상선이 (신규 투자를 통해) 글로벌 해운사 랭킹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면 상당히 긍정적인 일”이라면서도 “다만, 우려와 리스크를 감내하고 덩치를 키울지는 SM상선이 판단할 몫”이라고 말했다.

SM상선은 신규 투자를 통해 탄탄한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로 도약하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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