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사진관 스물세번째 이야기
반딧불이연무시장 김인순 다희청과 사장

남자는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웠다. 돈이 생기면 노름판으로 달려갔다. 술에 취하면 손찌검을 서슴지 않았다.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삶은 끔찍한 악몽이 됐다. 빚이 쌓였고, 희망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가혹한 삶 앞에 무릎 꿇지 않았다. 길바닥에 1평짜리 좌판坐板을 깔고 장사를 시작한 지 20여년 만에 반딧불이연무시장을 대표하는 ‘과일가게’를 만들어냈다. 

김인순(61) 다희청과 사장.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그녀의 씁쓸달콤한 인생을 따라갔다. 스물세번째 주인공이다. [※참고: 천막사진관은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촬영했습니다.] 

풍성한 과일바구니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김인순 사장. 그는 “마음이 가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풍성한 과일바구니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김인순 사장. 그는 “마음이 가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 1장. 밤이 얼굴을 바꿨다 

햇빛이 색을 뺐다. 바람도 숨을 죽였다. 어둠이 조용히 내리깔렸다. 그래, 지금은 밤의 시간이다. 얼굴은 두개다. 한쪽은 음침하고 적막하다. 다른 한쪽은 고요하고 푸근하다. 

두 얼굴의 단상斷想을 결정하는 건 사람이다. 어둠을 맞이한 이가 누구냐에 따라 밤은 얼굴을 바꾼다. 사람들은 그걸 운명이라 부른다. 때론 아름답지만 가혹한 운명…. 

“크앙~.” 밤의 푸근함을 깬 건 둘째의 울음소리였다. 인순은 잠결에 시계를 더듬었다. 시침은 어렴풋이 밤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둘째를 낳은 지 90여일, 엄마 인순에겐 낯선 일이었다. 우유를 맘껏 먹으면 해가 뜰 때까지 잠에서 깨는 법이 없던 아기였다. 

“참 희한한 일이네.” 혼잣말을 머금은 인순은 습관적으로 남편을 깨웠다. “여보, 잠깐만요.” 그런데… 손끝 감각이 이상했다. 써늘한 뭔가가 밀려들었다.

“여보~.” 거칠게 흔들었는데도 남편은 말이 없었다. 인순의 가슴에 섬뜩한 찬바람이 일었다. 순간, 전날 밤 남편이 건넨 말이 뒤엉켰다. “심장이 좀 이상하게 뛰는데, 부정맥은 아니겠지.” 

아차! 인순은 몸을 일으켜 불을 켰다. 아무 말도 없던 남편의 얼굴엔 ‘색’이 없었다. “여보, 여보~” 인순이 비명을 질렀다. 밤의 고요함이 깨졌다. 1986년 5월 어느날, 푸근하던 밤이 얼굴을 바꾸고 있었다.  

밤의 얼굴은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한없이 따뜻한 시간이지만 어떤 이에겐 차갑고 무서운 시간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밤의 얼굴은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한없이 따뜻한 시간이지만 어떤 이에겐 차갑고 무서운 시간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2장. 꽃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녀석들, 오늘은 엄마 안 괴롭혔어?” 꽃…. 남편은 꽃 같은 사람이었다. 마음결이 곱고 예뻤다. 아내 사랑도 끔찍했다. 막 두살 된 첫째, 갓 태어난 둘째가 재롱을 피워도 인순이 늘 먼저였다. 어딜 가든 인순의 손을 놓는 법도 없었다. 그래서 인순에게 ‘색 없는’ 남편의 얼굴은 더 두려웠을지 모른다. 

응급실에 들어간 지 1시간 남짓. 남편은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사투를 벌였다. 아내의 손을 먼저 놓는 건 그에겐 가당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이내 꺾였고, 인순은 꽃을 잃었다. 심근경색이었다. 

그날 이후 인순은 ‘며칠의 기억’을 상실했다. 슬픔의 사슬이 작은 기억까지 옭아맨 탓이었다. 그건 슬픔의 문제가 아니었다. 공포였다. 

인순이 정신을 차린 건 남편의 장례가 끝난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였다. 수원행 무궁화호 5호차. 인순은 창측에 첫째를 앉히고, 옆자리에 둘째를 품고 앉았다. 

볼품없는 행색, 매캐한 냄새…, 주변 승객이 눈살을 찌푸렸다. 인순은 불쾌한 시선을 느꼈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인순에게 중요한 건 남의 시선이 아니었다. 앞날이었다. 

“후두두둑…” 창밖에서 맴돌던 장대비가 차창을 때렸다. 저 멀리에선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장대비가 더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인순은 두 아들을 힘껏 껴안았다. 그는 떨고 있었다. 꽃은 어디에도 없었다. 

김인순 사장의 두 손엔 삶의 흔적이 묻어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김인순 사장의 두 손엔 삶의 흔적이 묻어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3장. 추악한 소문의 실체 

란제리 가게, 만화방, 보험설계사…. 인순은 삶을 홀로 짊어졌다. 선택지는 없었다. 무조건 버텨야 했다. 모성애, 숭고한 헌신, 이따위 고상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살기 위해서였다. 

세상의 눈은 곱지 않았다. 란제리 가게를 열었을 땐 동네 뭇 남성이 추근거렸다. 몇몇 아줌마는 대놓고 “하고 많은 제품 중에 왜 란제리를 파느냐”며 쪼아댔다. 

역겹고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싫어 만화방을 열었을 땐 한탕 챙기려는 사기꾼이 득실거렸다. “돈을 짭짤하게 벌 수 있다”는 속임수에 넘어가 파친코 기계를 불법으로 설치했다가 험한 일을 겪기도 했다. 

보험설계사로 일할 땐 너절한 험담에 시달렸다. 이른 아침에 정장을 입고 출근하면 ‘바람났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밤 늦게 들어오면 ‘모텔에서 나오는 걸 봤다’는 뒷말이 꼬리를 물었다. 

그날 밤엔 비가 억수같이 내렸지만 다희청과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궂은 날씨만큼이나 궂은 인생길이었지만 김인순 사장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날 밤엔 비가 억수같이 내렸지만 다희청과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궂은 날씨만큼이나 궂은 인생길이었지만 김인순 사장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진=오상민 작가]

생계를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은 인순이었지만 견딜 수 없었다. 그건 모욕이자 무례였다. 인순에게 할 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보험 일을 마친 후엔 3~4시간 파출부로 일했다. 그다음엔 모텔로 이동해 밤늦게까지 객실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친정에 맡겨둔 아이들을 데려왔다. 

하루에도 몇번씩 몸이 부서졌지만 쉴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더 억울했다. 인순은 몇몇 이에게 까맣게 타버린 속을 보여줬다. 눈물로 하소연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예쁜 옷에 뾰족구두 신고 외출해서 모텔에서 나온다’는 추악한 소문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인순은 ‘꽃 같던 남편’을 떠올렸다. “남편 없는 설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빠 없는 설움’을 대물림하면 어쩌나”란 상념에도 빠졌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잦아졌다. 간신히 눈을 붙이면 어김없이 악몽을 꿨다. 꿈에서도 인순은 잔인한 뒷소문을 듣고, 진저리를 쳤다. 

“난 괜찮아, 아이들은 안 돼, 아빠 없는 설움을 줄 순 없어.” 분노, 울화, 한탄… 파편처럼 찢어진 감정은 ‘더 나쁜 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인순은 흔들리고 있었다.

김인순 사장은 절대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역경을 이겨내면서 배운 삶의 지혜다. [사진=오상민 작가]
김인순 사장은 절대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역경을 이겨내면서 배운 삶의 지혜다. [사진=오상민 작가]

# 4장. 그 또한 운명이었다 

“정말 내 방도 있어?” 큰애가 활짝 웃으며 껑충 뛰었다. “당연하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 수 있어.” 남편을 보낸 지 5년 만에 인순은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작은 집이었지만 인순에겐 큰 선물이었다. 

그의 곁에 또 다른 한 사람이 찾아온 건 그 무렵이었다. ‘그분’은 인순이 짊어진 삶을 나눠 들겠다고 했다. 두 아이에게도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인순은 설움을 떨치고 싶었다. 마음을 열고, 삶의 일부를 내줬다. ‘가난한 배관공’이던 그를 위해 힘겹게 번 돈을 탈탈 털어 설비업체를 열어줬다. 보험 일도 그만뒀다. 내조가 먼저였다. 

인순은 그때처럼 ‘예쁜 꽃’을 기대했다. 두 아이에게도 믿음직한 언덕이 생기길 바랐다. 하지만 그분은 천성부터 달랐다. 툭하면 바람을 피웠다. 돈만 생기면 노름판으로 달려갔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엔 손찌검까지 했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 머리부터 묶는 김인순 사장. ‘오늘도 진심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듯하다. [사진=오상민 작가]
장사를 시작하기 전 머리부터 묶는 김인순 사장. ‘오늘도 진심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듯하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렇게 다시 5년, 인순의 삶은 더 끔찍한 악몽이 됐다. 설비업체는 물론 집까지 날렸다. 빚이 쌓였고, 희망이 사라졌다. 그제야 잘못된 선택이란 걸 알아챘지만 시간을 돌릴 순 없었다. 그 또한 운명이었다. 

인순은 무거운 삶을 다시 어깨에 올렸다. 그새 지켜야 할 아이가 한명 더 늘었다. 예쁜 딸 ‘다희’였다. 세 아이를 보듬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제법 센 일당을 준다는 말을 듣고 ‘술집 주방일’을 시작했다. 거친 일이었다. 매일 밤 술·담배 냄새에 찌들었다. ‘안주 빨리 내놔라’‘×× 없게 인상 구기지 마라’며 빈정대는 취객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혹독한 땀은 ‘대가代價’를 선물했다. ‘술집 주방일’ 3년 만인 1997년 인순은 작은 음식점을 차렸다. 삼치구이와 막걸리를 파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하늘이 외면했다. 그해 겨울 느닷없이 외환위기가 터지더니 음식점이 있던 동네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다. 월세를 내던 힘없는 자영업자 인순에게 법적 보호망 따윈 없었다. 손쓸 틈도 없이 보증금 몇푼 돌려받은 채 길바닥으로 쫓겨났다. 

반딧불이연무시장에 다희청과를 열었을 때 김인순 사장은 가게에서 쪽잠을 잤다. 대청처럼 올라와 있는 이곳엔 그의 삶이 오롯이 묻어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반딧불이연무시장에 다희청과를 열었을 때 김인순 사장은 가게에서 쪽잠을 잤다. 대청처럼 올라와 있는 이곳엔 그의 삶이 오롯이 묻어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뭘 어찌해야 할까.” 1998년 9월, 인순은 몇달째 고민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큰일이었다. 살길은 막막한데 돈도, 쌀도 떨어지고 있었다.

“인순아, 인순아….” 다급한 목소리가 인순네 담장을 넘은 건 오후쯤이었다. 수원 파장시장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육촌 언니였다. 인순의 딱한 사정을 뒤늦게 듣고 버선발로 뛰어온 모양이었다. 원체 심성이 고운 언니였다. 

“우리 슈퍼 앞에서 장사해 볼래? 나물이나 야채를 팔면 될 거야. 형부 성격 알지? 다른 건 못 도와줘. 눈치껏 일해봐.” 

그래, 인생은 무작정 버티는 거다. 악몽에서 깨면 또 한토막의 악몽이 기다리는 게 삶의 민낯 아니던가. 인순은 다음날 육촌 언니를 찾아갔다. 구렁텅이든 벼랑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언니 장사할게.” 얼마 후 인순은 시장에 ‘좌판坐板’을 깔았다. 18개월 다희가 등에 업혀 있었다. 

비가 내린 늦은 밤, 다희청과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고인 빗물에 비친 불빛이 별처럼 반짝인다. [사진=오상민 작가]
비가 내린 늦은 밤, 다희청과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고인 빗물에 비친 불빛이 별처럼 반짝인다. [사진=오상민 작가]

# 5장. 길바닥서 피어난 희망 

어떤 삶이든 명암明暗이 존재한다. 행운이 가면 불운이 오고, 그런 불운 뒤에서 또다른 행운의 장章이 펼쳐진다. 그래, 인간사에 안정된 건 없다. 그러니 역경에 의기소침해질 필요도 없다. 

준비할 틈도 없이 시장에 ‘좌판’을 열었다. 고작해야 1평 남짓, 엉덩이를 간신히 붙일 만한 공간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새벽이 열리기 한참 전부터 나물‧김치를 만들어 팔았다. 

삶은 불운했지만 그의 옆엔 속 깊은 상인들이 있었다. 몇몇은 함께 웃어줬고, 몇몇은 같이 울어줬다. 술과 노름에 빠진 ‘그분’ 탓에 길바닥에 나앉은 그는 그렇게 상인이 돼갔다. 

김인순 다희청과 사장. 그는 수원 반딧불이연무시장을 대표하는 과일가게 주인이다. 좌판에서 나물‧김치를 팔았던 수원 파장시장 시절까지 포함하면 시장밥만 23년째다. 지금이야 웃음을 잃지 않는 법을 깨친 그지만, 시장에 처음 섰던 1998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야속한 운명을 원망했고, 곡절 앞에 한탄했다. 때론 울분을 끓이고 한을 씹었다. 아무리 땀 흘려 일해도 불어나는 빚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때마다 그를 붙잡아준 건 상인들이었다. 

다희청과는 주로 선물용 과일을 판다. 김인순 사장이 추석 선물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사진=오상민 작가]
다희청과는 주로 선물용 과일을 판다. 김인순 사장이 추석 선물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사진=오상민 작가]

“백반집을 운영하는 전주언니, 과일가게 주인 명희, 중국집 사장님 등이 진창 같은 삶에 빠져 있던 저를 조건 없이 응원해 줬어요. 그럴 때마다 마음만은 가난해지지 말자고 다짐했죠.” 

그래서인지 김 사장은 하루하루를 보답하는 마음으로 산다. 시장 손님에겐 ‘진심’을 팔고, 제철과일이 나오면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에게 선물한다. 이따금씩 ‘억척스럽게 돈만 버는 장사치’란 오해도 받지만 김 사장은 개의치 않는다. “속을 보여줘도 나쁜 소문은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어떤 말을 들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진심이니까요.” 

그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저 멀리서 경쾌한 캐럴이 들려왔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몸보다 큰 파라솔을 옮기느라 끙끙대는 인순이 오버랩됐다. 1998년 크리스마스 이브, 인순은 억센 삶의 물결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 6장. “파라솔 접으라니까” 

하늘에서 눈발이 춤을 추자 캐럴이 리듬을 탔다. “Jingle Bells, Jingle Bells….” 오랜만에 찾아온 화이트 크리스마스. 하지만 시장의 냉랭함은 풀리지 않았다. 나라경제가 망한 지 1년, 많은 직장인이 거리로 쫓겨났다. 개중엔 가장도, 젊은이도 있었다. 몇몇은 핸들을 잡았고, 몇몇은 자영업계에 뛰어들었다.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장이 평온할 리 없었다. “저 집 아빠 구조조정 당했대” “저 회사는 환율 탓에 망했다는데”… 시장엔 온갖 구설이 떠돌았고, 인순은 그런 삭막한 곳에 있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펴는 파라솔. 하지만 김인순 사장은 한때 파라솔 하나도 마음대로 펴지 못했다. 인생은 때론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사진=오상민 작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펴는 파라솔. 하지만 김인순 사장은 한때 파라솔 하나도 마음대로 펴지 못했다. 인생은 때론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사진=오상민 작가]

“펴지 말라니까, 파라솔 접어!” 고성이 시장통을 울렸다. 슈퍼마켓 사장 형부였다. 그는 상의도 없이 이곳에 들어온 인순이 마뜩잖았다. “몇번을 말해, 파라솔로 슈퍼 입구 막지 말라고.” “형부, 나물에 눈이 떨어져서….” 

인순은 이내 입을 닫았다. 육촌 언니의 도움으로 찾아온 곳, 월세를 낼 돈도 없으니 눈칫밥은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눈을 무작정 맞을 순 없었다. 나물과 야채도 그렇지만, 등에 업힌 다희를 위해서도 가릴 게 필요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파라솔을 폈던 건데, 형부는 그게 영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창피하고, 슬프고, 외롭고, 화나고…, 순식간에 온갖 감정이 밀려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삶이란 원래 ‘없는 사람’에게 더 가혹한 법이다. 

인순은 파라솔을 치우고, 골목 어귀로 좌판을 옮겼다. 캐럴이 더 크게 들렸지만 인순은 흥겹지 않았다. 다희 얼굴에 눈치 없이 떨어지는 눈발이 야속할 뿐이었다. 인순은 서둘러 좌판을 접고 무릎에 덮고 있던 담요로 다희를 감쌌다. 무릎이 시렸다. 마음이 아려왔다. 

김인순 사장은 12년 전 연무시장으로 가게를 옮겼다. 당시 중학생이던 딸 다희가 파이프 기둥에 적은 응원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내가 있자늉! 힘내 엄마!” [사진=오상민 작가]
김인순 사장은 12년 전 연무시장으로 가게를 옮겼다. 당시 중학생이던 딸 다희가 파이프 기둥에 적은 응원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내가 있자늉! 힘내 엄마!” [사진=오상민 작가]

#7장. 그렇게 꽃이 되고 있었다 

푹 삶은 나물은 너무 빨리 상했다. 야채도 금세 숨을 잃었다. 누군가에겐 하찮은 좌판일지 모르지만, 인순에겐 그렇지 않았다. 길게 장사하려면 ‘특색 있는 품목’이 필요했다. 

“아야~ 인순아. 김치 팔면 어쩌까?” 진한 아랫지방 사투리가 인순의 귀에 꽂혔다. 백반집 주인 ‘전주언니’였다. 인순이 깐깐한 형부 탓에 눈물을 짤 때면 “써글 ×아 살고 시프면 정신 차려어”라면서 쓴소리를 내뱉던 언니였다. 

전주언니의 고향은 전라도였는데, 그래서인지 음식 솜씨가 일품이었다. 그중 김치맛은 시장통에서 첫손가락에 꼽혔다. “여기 음식점 많은 거 알제? 김치를 직접 맹들어서 팔아봐, 내가 도와줄랑께.” 

인순도 김치만큼은 자신 있었다. 술집 주방과 작은 음식점에서 손수 김치를 담갔다. 사과와 배를 듬뿍 넣어 만든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인순표 김치’는 인기만점이었다. 어지간해선 욕부터 쏴붙이는 전주언니도 인순이 담근 김치를 맛보더니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아이고, 우리 인순이가 김치 하나는 잘 만든당께.” 

“꽃 예쁘죠? 저도 꽃 같지 않나요?”라고 물으며 활짝 웃는 김인순 사장. 꽃만큼이나 환한 웃음은 김 사장의 매력이다.[사진=오상민 작가]
“꽃 예쁘죠? 저도 꽃 같지 않나요?”라고 물으며 활짝 웃는 김인순 사장. 꽃만큼이나 환한 웃음은 김 사장의 매력이다.[사진=오상민 작가]

인순은 그날그날 김치를 만들어 팔기로 했다. 시장 구석에 있는 낡은 창고에서 쪽잠을 자면서 김치를 담갔다. 배추는 작은 농가에서 조달했다. 고추는 직접 말려서 썼다. 전주언니는 ‘밴댕이젓 레시피’를 살짝 전수해 줬다. 

“다희 엄마가 김치를 잘 만든다네.” 시장 안팎에 입소문이 퍼졌다. 옆가게 중국집, 뒷골목 곰탕집, 길 건너 해장국집까지 인순의 김치를 찾았고, 담그면 족족 팔려나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어쩔 땐 새벽 2시부터 배추를 절이지 않으면 ‘납품약속’을 못 지켰다. 

그런 인순을 도운 건 상인과 손님이었다. 옆집 과일가게 주인 명희는 끼니마다 따뜻한 밥을 챙겨줬다. 단골손님이던 수복 언니는 인순이 김치를 담글 때면 다희를 품어줬다. 옆가게 중국집 사장님은 “다희 엄마 김치 최고”란 입소문을 동네방네 내줬고, 쌀집 사장님은 오토바이 배달맨을 자청했다. 

그들에겐 실속 없는 일이었다. 득 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상인들은 인순을 혼자 두지 않았다. 인순은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란 걸 깨쳤다. 얼굴에 웃음이 많아지고, 농이 늘었다. 

“이젠 전주언니보다 내가 김치를 잘 만드는 것 같아.”
“아이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깔깔~” 

예쁜 꽃을 찾아 헤매던 인순은 그렇게 꽃이 되고 있었다. 

전주언니, 명희, 중국집 사장님 등등. 진창 같은 삶에 괴로워하던 김인순 사장은 동료 상인들 덕분에 웃음을 되찾았다. 그래서 김 사장은 다른 이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애쓴다. 보답하는 마음에서다. [사진=오상민 작가]
전주언니, 명희, 중국집 사장님 등등. 진창 같은 삶에 괴로워하던 김인순 사장은 동료 상인들 덕분에 웃음을 되찾았다. 그래서 김 사장은 다른 이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애쓴다. 보답하는 마음에서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과박스 위에 화분을 놓자 가게 분위기가 화사하게 바뀌었다. 인순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다. [사진=오상민 작가]
사과박스 위에 화분을 놓자 가게 분위기가 화사하게 바뀌었다. 인순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다. [사진=오상민 작가]

# 8장. 김치 냄새 나는 가게 빼 

“고집 펴지 마아, 그 양반 또 오면 어쩌려고 그려. 돈가방 주어봐.”
“괜찮다니까.”
“잔소리 마알고 주어봐.”

전주언니는 새벽 댓바람이 불면 인순을 찾아왔다. 인순의 돈가방을 대신 맡아주기 위해서였다. 말 못 할 사연이 있었다. 노름판을 전전하던 그분은 돈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나타나 인순의 돈가방을 슬쩍했다. 그 꼴을 보기 싫었던 전주언니가 “돈가방 맡아줄게”라면서 나섰는데, 그게 벌써 수년째였다. 

세상에 치열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시장도 그렇다. 상인들이 실속을 따지는 건 결국 살기 위한 경쟁이다. 그렇다고 시장에 ‘죽고 죽이는’ 싸움만 있는 건 아니다. 정情이 있고, 미덕美德도 있다. 인순에게 시장은 그런 곳이었다. 

시장에 좌판을 깐 지 2년여. 인순은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홀로 섰다. 수천만원에 달했던 빚을 일부 갚았고, 4평짜리 가게도 얻었다. 불운의 늪에 빠졌던 인순이 맨바닥서 일궈낸 결실이었다. 

다희청과는 언제나 밤 늦은 시간까지 가게문을 열어둔다. 혹시라도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한 배려다. [사진=오상민 작가]
다희청과는 언제나 밤 늦은 시간까지 가게문을 열어둔다. 혹시라도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한 배려다. [사진=오상민 작가]

하지만 고행苦行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인순이 가게를 얻은 지 3년여 만인 2009년 1월, 하필 그 상가에 제법 큰 마트가 들어섰다. 인순네처럼 야채·나물·포장김치를 파는 곳이었다.

김치 냄새 나는 가게를 내심 싫어했던 건물주는 이참에 인순을 쫓아내려 했다. “마트 들어왔으니까 당장 가게 빼. 안 나가면 임대료 더 받을 테니까.” 

말이 통보지 사실상 협박이었다. 인순으로선 딱히 버틸 재간도 없었다. “언니, 그 싹퉁바가지가 나가라고 했다며?” 며칠 뒤, 과일가게 주인 명희가 씩씩거리면서 인순을 찾아왔다. 새벽 5시에 가게에 나온 걸 보니 어지간히 분을 못 참은 모양이었다. 

“어쩌겠어, 빼라면 빼야지.”
“그래서 어쩌려고.” 
“여긴 임대료가 비싸더라고. 연무시장으로 갈까 해.”
“거기서 뭐 하게?”
“결정 못 했어, 거긴 반찬가게가 많던데….” 
“과일가게는 어때? 내가 거래처 사장님 연결해 줄게. 믿을 만한 분이야.” 

때마침 돈가방을 챙기러 온 전주언니가 가게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미 소식을 접했는지 속 시끄러운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갈 때 가더라도 나쁜 마암 먹지 마러. 마암까지 가난해지면 불쌍허잖아. 마암이 풍성허야 행복한 기야.” 

새벽바람이 전주언니가 열어놓은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인순의 머리카락이 흩어지면서 얼굴을 가렸다. 인순은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울긴 왜 울어, 써글 ×.” 전주언니의 정겨운 사투리가 인순의 가슴을 더 울리고 있었다. 

뿌리를 내릴 진흙이 없으면 연꽃의 아름다움도 없을 것이다. 연잎 사이로 삐죽 올라온 다른 연잎이 물에 비친다. 마치 연꽃처럼 보인다. [사진=오상민 작가]
뿌리를 내릴 진흙이 없으면 연꽃의 아름다움도 없을 것이다. 연잎 사이로 삐죽 올라온 다른 연잎이 물에 비친다. 마치 연꽃처럼 보인다. [사진=오상민 작가]

# 9장. 가격 저항이 부른 불평 

수면에서 바라본 ‘물속 연꽃’은 청초한 미를 뿜어낸다. 누가 봐도 주인공은 연꽃이다. 하지만 물속 상황은 다르다. 연꽃의 연약한 뿌리를 지탱하고 있는 건 진흙이다. 진흙이 없으면 연꽃은 없다. 연꽃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없다. 인간사도 같다. 삶은 주고받는 거다. 연꽃과 진흙처럼….

“선물용 과일 팔게요.” 연무시장을 새 터전으로 삼은 인순은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값이 비싼 ‘선물용 과일가게’를 콘셉트로 잡았다. 

명희가 소개해 준 과일 도매상은 손사래를 쳤다. “안돼예, 선물할라꼬 사는 과실은 비싸예. 연무시장은 생긴 지 오래됐잖아예. 이런 데선 값이 중요한기라예. 비싸면 손님 안올기라예.”

옳은 말이었다. 시장에서 가격은 ‘장벽’과 다름없다. 처음부터 높은 가격을 매기면 가격 저항이 생긴다. 하지만 시장밥만 10년 먹은 인순이 ‘가격의 무서움’을 모를 리 없었다. 인순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무엔 작은 과일가게가 많더라고요. 가격대도 비교적 낮고요. 상인끼리 부딪히고 싶지 않아요. 그냥 선물용 팔게요. 좀 비싸도 괜찮아요.” 

추석을 며칠 앞둔 반딧불이연무시장의 모습. [사진=오상민 작가]
추석을 며칠 앞둔 반딧불이연무시장의 모습. [사진=오상민 작가]
다희청과는 반딧불이연무시장에서 손꼽히는 과일가게다. 김인순 사장은 몇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다희청과는 반딧불이연무시장에서 손꼽히는 과일가게다. 김인순 사장은 몇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인순은 얼마 전 찾아간 절에서 본 ‘물속 연꽃’을 떠올렸다. “연꽃을 떠받치는 진흙처럼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지난 10여년, 염치없이 받고만 살았다. 이젠 되돌려줘야 할 때였다. 인순이 ‘웬만해선 자리 잡기 힘들다’는 선물용 과일가게를 고집한 건 그 때문이었다. 

사실 시장 내 다른 과일가게들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인순이 새 과일가게 이름을 ‘다희청과’라 지은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딸 다희를 조건 없이 보듬어준 옛 상인들처럼 살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시장에서 양보는 ‘지고 들어가는’ 것과 같다. 다희청과는 개업하자마자 가격 저항에 부닥쳤다. “비싼 돈 주고 샀는데 과일이 안 달아” “저 집 썩은 과일 팔던데.” 저항은 불평을 부추겼고, 불평은 근거 없는 말의 씨앗이 됐다. 그렇게 일어난 뜬소문은 거친 바람처럼 인순을 덮치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불꽃이 흔들리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촛불은 다시 똑바로 선다. 숱한 불운에도 무릎을 꿇지 않은 김인순 사장의 인생 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바람이 불면 불꽃이 흔들리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촛불은 다시 똑바로 선다. 숱한 불운에도 무릎을 꿇지 않은 김인순 사장의 인생 같다. [사진=오상민 작가]

#10장. 뜬소문과 입소문

개업 3개월째, 다희청과를 찾는 손님은 여전히 뜸했다. 삽시간에 퍼진 뜬소문 탓이었다. 인순은 서두르지 않았다. 나름의 확신도 있었다. “뜬소문을 밀어내는 건 입소문이다. 입소문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뚝심 있게 해보자.”

간단치만은 않았다. 과일의 속성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과일은 속을 알 수 없다. 겉이 매끈해도 속이 못난 게 숱하다. 이런 이유로 주인장 모르게 품질 나쁜 과일이 섞여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인순은 손님들에게 ‘더없는 진심’을 쏟았다. 혹여 맛 없는 과일이 섞이면 ‘무한 덤’을 선물했다. ‘비싸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손님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을 일일이 설명했다. 

은밀한 제안은 단칼에 뿌리쳤다. 잔꾀 부리는 도매상들이 수시로 찾아와 “그런 식으로 장사하면 돈 못 번다”며 꼼수를 제안했지만 인순은 샛길을 탐하지 않았다. 

김인순 사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과일의 품질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김인순 사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과일의 품질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추석을 앞둔 시기, 선물 상품을 진열하고 있는 김인순 사장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추석을 앞둔 시기, 선물 상품을 진열하고 있는 김인순 사장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진심은 조금씩 통했다. ‘저 가게는 장난 안 친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썩은 과일 판다’는 뜬소문이 잦아들었다. 다희청과는 제자리를 잡아갔다. 설‧추석 등 명절에 ‘선물용 과일’을 주문하는 손님이 몰라보게 늘어났다. 

그럴수록 인순은 욕심을 더 덜어냈다. 시장 상인회가 펼치는 기부·봉사활동에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맛 좋은 제철과일이 들어오면 따로 챙겨놨다가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에 남몰래 선물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18년 수원시의회로부터 ‘상인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인순의 소식은 전주언니, 명희 등 옆시장 상인들에게 때마다 전해졌다. 몇몇은 손뼉 치고, 더러는 눈물을 훔쳤다. 작은 진심이 만들어낸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도운 적은 없어요.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고요. 외로운 어르신이 가게에 들어오셨을 때 맛난 과일 몇개 집어서 선물로 챙겨드린 게 전부예요. 그저 ‘마음이 풍성해야 행복하다’는 전주언니의 말만 되새기면서 살았을 뿐이에요.”

김인순 사장은 제철과일을 따로 챙겨놨다가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 몰래 선물한다. 그는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데, 아직도 멀었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김인순 사장은 제철과일을 따로 챙겨놨다가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 몰래 선물한다. 그는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데, 아직도 멀었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11장. 좌판 상인에게 찾아온 기적 

반딧불이연무시장에 둥지를 튼 지 어느덧 12년째, 다희청과는 연무를 상징하는 가게로 우뚝 섰다. 시장 내 다른 과일가게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인순의 기쁨이다. ‘1평짜리 좌판 상인’ 인순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일이다. 

“불운을 참 지겹게 겪었어요. 그 덕분에 배운 것도 많죠. 그중 하나가 어떤 일이든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걸 깨달은 뒤부턴 ‘오늘 하루만 버티자’가 아니라 ‘오늘 하루도 진심을 다하자’란 마음으로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인순은 오늘도 ‘진심’을 바친다. 환갑을 넘긴 잔뼈 굵은 상인이지만, 인순은 여전히 시장에서 가장 늦게 가게문을 닫는다. 새벽녘까지 문을 열어놓는 날도 숱하다. 단 한명의 손님에게도 ‘진심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김인순 사장은 제철과일을 이용해 청과 잼을 만든다. 그는 “청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청을 맘껏 나눠주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김인순 사장은 제철과일을 이용해 청과 잼을 만든다. 그는 “청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청을 맘껏 나눠주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김인순 사장은 과일청을 만들 때 100일 이상 숙성시킨다. 사진은 숙성되기 전 사과청의 모습. [사진=오상민 작가]
김인순 사장은 과일청을 만들 때 100일 이상 숙성시킨다. 사진은 숙성되기 전 사과청의 모습. [사진=오상민 작가]

최근엔 또 다른 나눔도 시작했다. 제철과일로 만든 ‘청’을 통해서다. 인순은 지난해부터 외로운 어르신이나 몸이 아픈 이들에게 과일청을 선물해 왔는데, 반응이 괜찮다.

얼마 전엔 안양 미혼모 시설에 ‘맞춤형 과일청’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짬이 날 때만 과일청을 담가서 선물했어요. 내년부턴 좀 더 많이 만들어서 여기저기 보낼 생각이에요. 그럼 제가 받은 것만큼 돌려줄 수 있겠죠?” 

인순이 수줍게 웃었다. 붉게 타오른 11월 가을해가 인순네 과일가게를 탐스럽게 물들였다. 소박한 바구니에 담긴 사과에 가을이 흠뻑 젖어들었다. “맛나요, 맛나, 맛없으면 다희청과가 아니에요.”

인순의 흥겨운 목소리에 가을향이 실렸다. 가게 앞을 지나던 손님이 코끝을 찡긋하며 웃었다. 인순이 미소를 머금었다. 씁쓸달콤한 인생이 가을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글=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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