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웠다. 돈이 생기면 노름판으로 달려갔다. 술에 취하면 손찌검을 서슴지 않았다.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삶은 끔찍한 악몽이 됐다. 빚이 쌓였고, 희망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가혹한 삶 앞에 무릎 꿇지 않았다. 길바닥에 1평짜리 좌판坐板을 깔고 장사를 시작한 지 20여년 만에 반딧불이연무시장을 대표하는 ‘과일가게’를 만들어냈다. 김인순(61) 다희청과 사장.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그녀의 씁쓸달콤한 인생을 따라갔다. 스물세번째 주인공이다. [※참고: 천막사진관은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고통은 역설적이다. 자본엔 약하고, 빈貧엔 잔인하다. 혹자는 자본주의의 숙명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지독한 불평등일 뿐이다. 2018년 창업한 화장품 스타트업 ‘가람오브네이쳐(Garam of nature).’ 이곳은 글로벌 기업들이 탐내는 IP(지식재산권) 업체다. 독특한 한방 콘셉트와 탁월한 기술력은 세계시장에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대학 재학 시절 이 회사를 창업한 오성음(37) 대표는 ‘낯선 길’을 고집한다. 수익의 절반가량을 기부하고, 애써 개발한 기술을 사회적 약자에게 무상으로 전수한다. 이유는 별다른
뇌가 아픈 엄마를 위해 커다란 창문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꿈을 접고 무작정 목수木手의 길을 걸었다. 험난했지만 고달프지만은 않았다. 그 길 한복판에서 ‘아픈 기억’ 속 아버지와 조우했다. 우연히 만난 하찮은 쓰레기통에선 작은 희망도 찾아냈다. ‘자연놀이터 제작소’의 박재상(45) 소장은 목수다.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지으며, 숲놀이터를 제작한다. 때론 설계도 직접 한다. 평범한 목수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구·집·숲놀이터를 모두 만들 줄 알고, 시공에 설계까지 하는 목수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그런데도 그는 “원칙대로 땀 흘
빈貧과 아픔을 팔지 않았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따윈 필요 없었다. 대표와 직원은 월급을 공개했다. 후원금은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밝힌 뒤 썼다. 아동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 보듬을 필요가 있는 아동을 최장 10년간 1대1 멘토링 해주는 NGO다. 설립 초기엔 ‘어떤 멘토가 10년이나 멘토링하겠느냐’는 비판에 시달렸다. ‘비용은 많이 들고 수익성은 떨어질 것’이란 조롱 섞인 핀잔도 받았다. 그럴수록 러빙핸즈는 진심과 진실을 내세웠고, 지금은 놀라운 혁신을 일궈내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
‘값싼’ 중국산 액세서리가 남대문을 덮친 건 2010년 이후다. ‘가성비’에서 밀려난 남대문 가게들은 줄줄이 쓰러졌고, 그중 일부는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중국으로 떠났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던 그때, 패션머리끈의 원조 ‘아현사’ 변성호(48) 사장은 남대문에 남았다. ‘수십년 호흡을 맞춘 직원들과 우리만의 제품을 만드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곳곳에서 “싸게 만들면 그만인데 왜 그러냐” “고작 머리끈 만드는 주제에 애국하려는 건가”란 조롱 섞인 핀잔이 쏟아졌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변 사장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아빠는 술만 취하면 손찌검을 했다. 소녀는 두려움에 떨었다. 윗집‧옆집‧뒷집 옥상에서 아빠가 잠들기만 기다렸다. 비가 오면 눈물을 삼켰고, 눈이 오면 슬픔을 머금었다. 하지만 소녀는 ‘폭력의 사슬’에 갇혀 있지 않았다. 질긴 비극悲劇을 홀로 떼쳤다. 고약한 삶을 끝내 이겨냈다.지역청소년센터 무지개빛청개구리의 엄미경(52) 센터장. 폭력으로 얼룩진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꿈같은 청소년들을 보듬으면서 산다. 내 아이, 네 아이가 따로 없다. 무지개빛청개구리의 모든 아이들이 아들이자 딸이다. 그의 ‘역설적인 삶’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울림을
유럽 성악가들과 ‘소리’로 경쟁했다. 이탈리아 피아첸자 국립음악원을 졸업했고, 독일에선 시립예술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채관석(49) 부천오페라단 단장. 그의 노래를 들으려면 왠지 격식을 차리고, 값비싼 티켓을 끊어야 할 것 같다.그렇지 않다. 편견이다. 채 단장은 ‘거리의 예술가’다. 공헌이란 뜻만 맞으면 옥상에서든 주차장에서든 노래를 부른다. 사회적 약자에게 위안을 선물할 수 있다면 연미복을 입는다.그는 왜 꽃길을 버리고 가시밭길을 택한 걸까. “예술은 특별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도구가 아닙니다. 결핍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첫째는 태어난 직후 별이 됐다. 둘째는 폐렴 탓에 하늘로 올라갔다. 청소년 미혼모(한부모)의 쌍둥이 딸은 그렇게 세상과 작별했다. 엄마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조신하지 않다’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숨을 죽이고 있을지 모른다. 사회적기업 마리에뜨㈜는 청소년 미혼모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사업을 한다. 쉼터에 장기체류한 미혼모가 성인이 되면 정직원을 보장해준다. 원한다면 ‘사이버대’에 진학할 수도 있다. 문제는 마리에뜨가 이 아름다운 사업을 언제까지 맘놓고 펼칠 수 있느냐다. 청소년 미혼모, 우린 그들을 어떻게 보듬고 있는가. 더스
뇌를 다친 채 태어났다. 의료사고 탓이었다. 아이의 몸은 갈수록 뻣뻣해졌다. 먹는 것도 앉는 것도 쉽지 않은데, 옷 입는 것까지 괴로움이 됐다. ‘뇌병변(뇌문제로 나타나는 장애)’의 무서운 후유증이었다. 장애인 옷 전문업체 ‘베터베이직’의 박주현(48) 대표. 눈물도, 곡절도 숱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편한 옷을 입히기 위해 ‘재봉틀’을 손수 돌렸다. 해외 장애인용 보디슈트를 참조해 옷의 앞·옆·뒤를 터봤다. 이렇게 만들어진 ‘트임방식’은 놀랍게도 국내특허로 이어졌다. 2018년엔 장애아를 둔 엄마들과 함께 ‘장애인옷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수평을 맞춘다. 인간은 다르다. 돈이든 권력이든 뭔가를 거머쥐면 밑단을 보지 않는다. 가진 자는 더 갖길 원하고, 물욕은 세상을 양쪽으로 쪼개놓는다. 이렇게 탐욕스러운 세상을 외로이 떠받치는 게 있다.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이가 더 못 가진 사람을 위해 헌신獻身하는 것, 역설적 희생이다. 서울 도봉구 자원봉사캠프의 이수열(68) 캠프장. 그는 ‘사랑의 택시운전사’로 불린다. 고되다는 택시를 몰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고 있어서다. 한두해만 반짝 그런 것도 아니다. 벌써 30여년째 헌신이
아빠는 대장암에 눈을 감았다. 수술 59일 만의 사망. 날벼락이었지만 끝이 아니었다. 병마는 대를 물고 딸을 찾아왔다. 이번엔 유방암이었다. 생명의 소중한 젖줄인 가슴을 자신들의 ‘숙주宿主’로 만든 셈이었다. 딸은 아빠와 달랐다. 암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몹쓸 병마를 애써 이겨냈고, 유방암 환우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벌써 10년째 헌신獻身이다. 이런 딸을 두고 사람들은 “웃음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무거운 외로움이 숨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암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 아빠
명분과 실리는 다르다. “진정한 가치는 영원하다”는 말도 있지만 멋진 명분이 생존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냉정한 시장에서 명분만큼 중요한 건 ‘매력’이다. 2015년 창업한 ‘우시산(울산의 옛 이름)’은 요즘 주목 받는 사회적기업 중 한곳이다. 실버 바리스타를 고용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희망을 펼칠 공간(갤러리)을 선뜻 제공하며, 날로 사라지는 ‘고래자산’을 보호하는 문화 콘텐트를 만들고 있으니, 이목을 끌 만하다.우시산의 매력은 ‘사람’이다. 실버인력·경단녀·청년인력·자원봉사자들이 연출하는 하모니는 아름답고 경
‘후원을 위한 미덕美德’은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일부 높으신 양반들처럼, 약간의 위선만 떨면 얼마든지 미덕을 뽐낼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을 내건 미덕’은 함의含意가 다르다. 누군가를 위해 내 삶과 욕구를 포기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건 헌신이다. 조성태(46) 카페풍경 사장. 월 매출 1억원이 넘는 ‘카페 체인’을 미련없이 팔았다. 그 돈으로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카페’를 차렸다. 많은 이들이 “왜 실속도 없는 길을 스스로 걷느냐”며 핀잔을 주곤 하지만 그는 꿋꿋하다. “꿈이 없다는 건 가슴 아픈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 새 리어카를 선물하면 행복해질까. 빈 상자를 하나라도 더 주워야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분들에게 무료건강교육은 한갓진 담론談論이지 않을까. 사회적 약자弱者를 도울 땐 신중해야 한다. 팍팍한 현실을 냉정하게 반영해야 한다. 별 도움도 안 되는 지원책을 내놓고 ‘이만하면 됐다’고 안심하는 순간, 약자는 기댈 곳을 잃는다.여기 폐지 줍는 어르신들과 ‘행복한 동행’을 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CEO가 있다. 신미자(58) 여월농업공원 원장(지엔그린 대표)이다. 그는 숱한 시행착오를 꿋꿋이 이겨낸 끝에 폐지 줍는 어르
창업은 간판으로 하는 게 아니다. 아카데미컬한 이론이 창업시장의 동아줄이 될 수도 없다. 창업시장은 워낙 변덕스럽고 고약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장을 잘 모르는 이들이 종종 유망한 창업가의 가치를 가문ㆍ학벌 등 ‘간판’에 옭아맨다. 그 과정에서 창업가의 분투奮鬪는 사라지고, 진심은 왜곡된다.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폐차 가죽을 활용한 제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최이현(37) 모어댄 대표를 조명한 이유다. ‘흙수저 창업가’인 그는 낡은 폐가죽으로 희망을 재단했다.# 1장. 실명, 아름다운 대가 “열 발자국 다음
소방복을 벗을 때 약속했다. “내일도, 그 내일도 봉사하겠다.” 그로부터 5년,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가위를 든다. 경로당을 찾아가 ‘이발 봉사’를 하고, 독거노인을 돌본다. 폐지를 땀흘려 모아 판 돈으론 어려운 이를 남몰래 후원한다.누군가는 “물적 여유가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그는 숱한 곡절을 힘겹게 떼치면서도 ‘나눔의 씨앗’을 뿌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가위손 소방관’ 이영직(64)씨를 만났다. 일곱번째 주인공이다.# 1장. 가난, 꼬마의 아픔 빈농貧農의
만성 신부전증 환자, 백혈병 환우…. 아픈 이들과 아프게 ‘동행同行’했다. 동고동락해야 약자들의 아픔을 나눌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매운 좌절을 맛봤고, 뼈아픈 눈물을 흘렸다. 시린 이별도 경험했다. “별이 되고 싶다”며 눈을 감은 백혈병 환우 앞에선 펑펑 울기도 했다.이른바 ‘아픈 동행’, 난제難題가 숱했다. 넉넉지 않은 재정은 현실적인 벽이었다. 사회적기업가인 그가 난데없이 김치사업을 펼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벌어 제대로 돕겠다”는 취지에서다. 사회적기업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조인검(49) 단장의 ‘아픈 동행기記
맏이도, 둘째도 ‘중증 발달장애아(자폐아自斃兒)’로 태어났다. 아빠도, 엄마도 유전적 질환이 없었지만 마음이 불편한 ‘두 천사’를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엄마는 눈물만 흩뿌리지 않았다. 세상의 편견을 온몸으로 뚫으면서 ‘자폐아를 위한 텃밭’을 가꿨다.‘엄마가 죽더라도’ 두 천사가, 아니 세상의 발달장애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그녀의 꿈이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엄마 임신화(42) 꿈고래놀이터 부모협동조합 이사장과 두 천사 동현(13), 혜승(11)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1장. 엄마,
사회적ㆍ경제적 약자의 마음에 ‘청진기’를 대는 이들이 있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티도 잘 안 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약자들에게 헌신을 선물합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서울적십자병원 온드림 희망진료센터 임수연ㆍ김혜영 사회복지사의 ‘아름다운 분투’를 취재했습니다. 천막사진관 세번째 주인공입니다.# 1장. 나이지리아 사업가의 눈물찜통 더위가 숨통을 사납게 조이던 2016년 8월 어느날. 자동차 수출업체를 운영하는 나이지리아 국적의 A씨(40대 중반)가 서울적십자병원 ‘온드림 희망진료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층판상어린선’이라는 질환을 아십니까? 일반인보다 피부가 10배나 빨리 자라는 탓에 물고기 같은 비늘이 생기는 병입니다. 유병률은 0.001%로 극희귀병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이 병이 독한 건 ‘난치難治’때문만은 아닙니다. 정부 지원책은 물론 사회 지원망까지 허술하기 때문입니다. 더스쿠프와 천막사진관이 ‘층판상어린선’을 아름답게 극복하고 있는 쑥쑥이네 가족을 만났습니다. 천막사진관 제1편입니다. # 1장 붉은 내 아기유독 입을 많이 벌리는 태아胎兒였다. 뭐가 그리 재미난지 연신 ‘들숨날숨’을 했다. 배 속 개구쟁이 ‘쑥쑥이(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