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패키지 뒤에 가려진 그림자

밀가루·구두약·껌·배달앱….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수제맥주로 출시됐다는 점이다. 곰표 밀맥주의 대성공 이후 각종 유통채널에서 이종異種 콜라보레이션 수제맥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편의점들은 ‘누가 더 독특한지’ 경쟁이라도 하듯 눈에 띄는 패키지를 두른 제품을 론칭하며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콜라보 제품이 수제맥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화려한 패키지 뒤에 가려진 그림자를 살펴봤다.

편의점과 브랜드, 수제맥주 업체가 손잡고 출시한 콜라보레이션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편의점과 브랜드, 수제맥주 업체가 손잡고 출시한 콜라보레이션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곰표가 쏘아올린 공이다.” 편의점 주류 코너의 효자 상품으로 주목받는 콜라보레이션 수제맥주 이야기다. 2020년 5월 출시된 ‘곰표 밀맥주(세븐브로이)’는 출시 4일 만에 10만개가 팔리고 추가 생산에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등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자 편의점마다 제2의 곰표 밀맥주를 노린 온갖 콜라보 수제맥주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구두약·골뱅이통조림·라면·껌·야구·웹툰·배달앱·커피·불닭…. ‘이것까지 되나’ 싶을 만큼 이색적인 콜라보 제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다.

이런 콜라보 수제맥주는 편의점에서 수제맥주 바람을 일으킨 공신이다. 현재 주요 편의점의 전체 맥주 판매량 중 수제맥주 비중은 12~15%에 달한다. 단독 신제품 출시도 끊이지 않는다. 편의점 CU가 올해 출시한 수제맥주는 30여종에 달하는데, 지난 10월에는 삼양식품·더쎄를라잇브루잉과 손잡고 ‘불닭망고에일’을 출시했다. 

독특한 콜라보 맥주는 편의점의 수제맥주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한몫했다. CU의 수제맥주 매출은 2018년 87.4%(이하 전년 대비), 2019년 220.4% 늘었는데, 곰표 밀맥주를 출시한 2020년엔 무려 498.4%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껌 시리즈 등 콜라보 수제맥주를 꾸준히 내고 있는 세븐일레븐의 수제맥주 매출(10월 19일 기준)도 전년 동기 대비 237.1% 늘었고, 같은 기간 전체 맥주 매출은 23.6%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이 배달의민족·KBC(오비맥주)와 7월 출시한 ‘캬 맥주’는 출시 보름 만에 25만개가 팔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콜라보 맥주는 수제맥주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톡톡 튀는 콜라보 제품을 통해 수제맥주를 접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만큼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장에선 늘어나는 콜라보를 두고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제맥주 업계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아서다. 수제맥주에 숨은 위험요인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번째는 ‘나와도 너무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수제맥주 제품 수는 상반기 기준 2019년 16개에서 2020년 41개, 2021년엔 64개로 꾸준히 증가했다(이마트·GS더프레시·CU 기준). 지난 1년 사이 출시된 콜라보 수제맥주 제품은 어림잡아도 20개가 넘는다. 이러다보니 경쟁은 치열해지고 식상함은 커지고 있다. 1세대 수제맥주 A업체 관계자는 “이종異種 콜라보 제품 출시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며 “오비맥주 등 대기업은 아예 콜라보 수제맥주 전용 브랜드까지 만들며 뛰어들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수제맥주 대중화 이끌었지만… 

두번째 위험요인은 콜라보 제품이 제조업체의 브랜드 강화나 인지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업계서 콜라보 수제맥주의 인기를 두고 “‘곰표’만 남았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어느 브랜드가 맥주로 나왔는지’는 화제가 되곤 하지만 ‘어디서 만들었는지’가 두드러지지 않는 건 짚어볼 만한 문제다. 

수제맥주 시장 상위권에 있는 B업체 관계자는 “콜라보 제품은 ‘한정판 굿즈’에 가깝다”며 “이벤트성 제품이 쏟아지는 상황이 수제맥주 시장의 건강한 발전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털어놨다. 

 

저렴한 콜라보 제품이 수제맥주의 맛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건 세번째 위험요인이다. 편의점 등 유통채널과 함께 출시한 콜라보 제품은 ‘4캔 1만원’ ‘3캔 9900원’ 등 할인 프로모션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수제맥주 제조업체 입장에선 원재료를 아끼거나 마진을 줄여야 하는 고민에 빠진다는 점이다. 

서울에 브루어리를 둔 C업체 관계자는 “수제맥주 특유의 맛을 내기 위해 맥아나 홉을 많이 사용한다”며 “주세법 개정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긴 했지만, 할인 가격으로 팔면서도 맛을 지키려면 마진을 포기해야 한다”고 토로했다.[※참고: 주세법 개정으로 2020년부터 맥주의 주세 부과 기준이 가격(종가세)에서 용량(종량세)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생산단가가 높은 수제맥주는 세금 부담이 크게 줄었다.] 

마지막 위험요인은 시장의 양극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수제맥주 업체 약 160개(제조면허 발급 기준) 중 편의점에 납품하는 업체는 10개 안팎에 머물러 있다. 전국 유통망에 납품할 만큼의 생산시설이나 자본을 갖춘 곳이 적어서다. 

콜라보 수제맥주의 난립은 수제맥주 시장의 양극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콜라보 수제맥주의 난립은 수제맥주 시장의 양극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나마 편의점에 납품하는 업체들도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롯데칠성음료 등에 OEM을 맡기는 실정이다. 코로나 사태로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손님이 줄어든 상황에 유통채널에 진출한 업체는 제품을 내고 생산시설을 늘리며 몸집을 키우지만, 펍 중심의 소형 브루어리는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거다. 

다양성·맛 떨어뜨릴 수 있어

이 때문에 콜라보 제품이 장기적으로 시장에 왜곡된 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수제맥주의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인데, 콜라보 제품은 맛보다 패키지 디자인에 포커스를 맞춰 다양성이 힘을 잃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시장 자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편의점 맥주가 곧 수제맥주란 인식이 고착화하면 케그(맥주 디스펜서·맥주통)로 판매하는 프리미엄 수제맥주의 이미지까지 훼손될 수 있다. 프리미엄이라는 가치를 잃으면 소비자가 수제맥주를 찾아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소형 브루어리의 맥주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달라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콜라보 수제맥주는 과연 독특한 맛을 남길까 거품만 남길까.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