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임대부 아파트 다시 등장한 이유
땅값 내지 않아도 돼 분양가 저렴해
공공 보유 땅 있어야 공급 가능하다는 한계 뚜렷
토지임대부 아파트 지을 땅 과연 있을까

땅값을 뺀 채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이 우리나라에서 중심에 섰던 건 10년도 더 된 과거다. 2007년 제정된 법으로 처음 시도됐던 토지임대부 주택은 이런저런 문제를 노출하면서 미분양으로 끝났다. 그로부터 4년 후 조성된 강남권 토지임대부 주택은 ‘로또 아파트’란 지적에 시달렸다. 이런 토지임대부 주택을 최근 SH 수장에 오른 김헌동 신임 사장이 화두로 삼았다. 그에겐 이전 문제들을 해소할 만한 솔루션이 있는 걸까. 

토지임대부 주택이 다시 화두에 올랐지만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사진=뉴시스]
토지임대부 주택이 다시 화두에 올랐지만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사진=뉴시스]

“땅 파는 시대는 지났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신임 사장이 더 이상 땅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1월 15일 김헌동 사장의 취임사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럼 아파트 공급을 포기하겠다는 걸까. 그건 아니다. 김 사장의 말을 이해하려면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부터 뜯어봐야 한다. 

아파트를 살 때 우리는 집과 함께 땅(대지 지분)을 매입한다. 전용면적 84㎡ 아파트(약 25평)를 샀다고 가정해보자. 침실 3개, 욕실 2개로 구성된 집뿐만 아니라 아파트가 만들어진 ‘땅’도 주택 크기에 따라 전 세대가 나눠 가진다. 전용면적 84㎡ 아파트 소유주라면 대지 지분으로 표시되는 이 땅을 대략 30~40㎡(약 10~12평) 갖게 된다. 집과 땅을 모두 사야 하다 보니 둘이 합쳐진 아파트는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땅이 아닌 집만 살 수 있다면 어떨까. 땅값이 빠지니 분양가는 저렴해질 가능성이 높다. 땅은 땅 주인에게 빌리면 그만이다. 집은 내 것이니 쫓겨날 걱정 없이 그대로 살면 된다. 

이것이 바로 주거 안정을 목표로 삼고 있는 토지개혁 시민단체들이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토지임대부 주택’의 골자다. 시민단체 출신인 김헌동 사장이 말하는 서울 주거 대책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런 게 되겠어’라고 냉소를 보내기엔 토지임대부 주택은 꽤 오래된 아이디어다. 일단 2009년에 제정된 법이 있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이다. 2006년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하 당시)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토지임대부 공동주택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세부 내용(토지임대차 기간)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두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핵심은 ‘땅을 팔지 말고 빌려준 후 그 땅에 국민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어 판다’는 거였다. 토지임대부 주택의 개념이 정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주장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런 법안의 발의로 2007년 4월 주택법에 ‘토지임대부 주택’과 관련한 조항이 신설됐다. 이 조항을 토대로 그해 경기 군포 부곡에 토지임대부 아파트가 공급됐다. 하지만 첫 시도의 결과는 반쪽짜리였다. 분양가는 인근 평균 분양가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한달에 50만원이 넘는 토지임대료가 뒤따랐다. 미분양이 발생했고 토지임대부 아파트의 공급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2011년께 두번째 토지임대부 주택이 공급됐다. 2009년 ‘토지임대부 주택공급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였다. 지역은 강남이었다. 당시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지구’를 조성하기로 하면서 서초와 강남에 각각 358가구, 402가구의 토지임대부 주택을 만들었다. 


두번의 실패와 새로운 화두 

강남 자곡동에 2012년 공급된 강남브리즈힐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분양가는 2억2230만원이었다. 같은 해 인근에서 분양한 래미안강남힐즈 전용면적 91㎡ 아파트의 분양가격이 7억2000만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당 3배가량 저렴한 가격이었다.

이번엔 토지임대료도 괜찮았다. 강남브리즈힐 전용면적 84㎡ 아파트 분양 당시 토지 임대료는 18만(보증금 2600만원)~35만3000원(무보증금)으로 50만원에 달했던 군포 부곡 토지임대료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었다.[※참고: 현재 임대료는 최대 보증금 5800만원 월 임대료 16만5000원이다.]

조건이 나쁘지 않으니 수요자가 많았다. 강남ㆍ서초에 공급된 토지임대부 아파트는 첫 시도와 달리 대부분 주인을 찾았다. 그렇다면 땅값을 뺀 아파트는 비싸지기만 하는 부동산 시장에 ‘경종’을 울렸을까.

토지임대부 주택의 전제 조건은 '공공 보유 토지'다. 사진은 김헌동 SH 사장.[사진=뉴시스]
토지임대부 주택의 전제 조건은 '공공 보유 토지'다. 사진은 김헌동 SH 사장.[사진=뉴시스]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두번째 시도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몇년 후 토지임대부 주택은 함정에 빠졌다. 시세 차익 때문이었다. 집을 저렴하게 분양받은 행운을 누린 사람들은 이 행운을 계속 누리고 싶어 했다. 높은 가격에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발생하는 시세 차익은 포기하기 어려운 돈이었다.

집은 비싸게 팔려나갔다. 2012년 2억원대 분양가로 팔렸던 토지임대부 주택은 2020년 3월 11억30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참고: 이 계약은 그해 7월 계약해제 사유가 발생해 취소되긴 했다. 하지만 토지임대부 주택의 시장 거래가격이 10억원을 넘었다는 건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토지소유권과 무관한 전세 거래 금액도 빠르게 뛰었다. 2017년 강남브리즈힐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평균 전세 보증금은 5억2200만원으로 인근에 있는 민간분양 아파트인 래미안강남힐즈 전용면적 91㎡(6억9977만원)의 77.94% 수준이었지만 2020년에는 6억9250만원으로 래미안강남힐즈 평균 전세 보증금의 86.51%에 달했다. 토지임대부 주택의 임대료 상승 속도가 더 빨랐다.

이처럼 토지임대부 주택은 땅값을 뺀 채 저렴하게 분양했지만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인한 시세 차익은 개인이 가져갔다. 당연히 ‘로또 아파트’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토지임대부 주택이 2012년 이후 더 이상 공급되지 않았던 건 이런 비판을 넘어서지 못한 탓이었다. 2016년에는 결국 ‘토지임대부 주택공급을 위한 특별법’이 폐지됐고 2020년이 돼서야 주택법 개정안으로 부활했다.

자! 그렇다면 땅값을 뺀 채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SH 김 사장의 주장은 현실화할 수 있을까. 10년 전 시세차익 논란 등을 해소할 장치는 과연 마련한 걸까. 일단 시세 차익을 개인이 독점하는 건 막을 수 있게 됐다. 새 주택법 개정안에서 토지임대부 주택을 팔고 싶다면 공공에게 매도하도록 규정해 놨기 때문이다. 이 법만 제대로 가동되면 토지임대부 주택의 시세차익 논란은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땅값을 빼고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은 ‘땅값을 뺄 수 있는 지역’에 만들 수밖에 없다. 김 사장이 주장이 통하려면 SH가 소유하고 있거나 SH가 맘대로 쓸 수 있도록 협의가 가능한 땅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그 땅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급할 수 있는 수도권 택지 대부분을 ‘127만호’라는 공급대책 안에 넣어버렸다. 거의 모든 수도권 택지의 공급 방식이 정해져 있다는 거다. 

법 있고 제도 있어도 땅이 없다면…

이 때문에 토지임대부 주택을 시도해볼 수 있는 건 주택건설계획이 잡혀 있지 않은 공공택지들이다. 가장 최근에 공급된 공공주택지구인 3기 신도시는 일부에서 사전청약까지 이뤄졌기 때문에 토지임대부 주택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

택지정보시스템을 통해 보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도권 공공택지지구 중 개발 계획이 결정되지 않은 사업지는 14개 정도다. 이마저도 SH와는 무관한 땅이 대다수다. 땅을 팔아 돈을 벌었던 SH는 정말 다른 방식으로 집을 만들 수 있을까. 

SH의 현재 기조는 “대규모 택지 공급 대신 좁은 땅이라도 유휴부지가 있으면 활용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SH 안팎에선 “예전부터 추진해왔던 사업도 땅이 없어 신규 사업지를 더 늘리지 못하는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토지임대부 주택을 통해 반값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근거는 아직 SH 사장의 말뿐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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