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 1월 1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정익환 국민행복제안센터장에게 면담요구서 제출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국에는 기업살인법이라는 게 있다.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매출액의 2.5~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과실책임이 크면 벌금액의 상한선이 없다. 쌍용차 노동자가 자살했다. 기업살인법이 있다면 쌍용차에 과실이 있을까.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에게 물었다.

2009년 2600여명을 구조조정 대상에 올린 쌍용자동차 사태. 구조조정 이후 23명의 죽음을 불러왔다. 노동자와 가족들이 스스로가 목숨을 끊거나 돌연사했다. 1월 8일에는 이 회사의 노동자 류모씨가 작업장에서 자살을 기도해 뇌사상태에 빠졌다. 류씨는 유서에 “쌀이 떨어져 아픈 아이들에게 라면을 먹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절망적 상황을 적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쌍용자동차 사태는 일종의 기업살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살인은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책임을 기업에게 물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쌍용자동차 노사는 1월 10일 “무급 휴직자 455명 ‘전원’을 3월 1일부로 복직시킨다”고 발표했다. 노사 양측 모두 국정조사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고, ‘무급 휴직자 전원’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머지 정리해고자 2000여 명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소속 해고 노동자들은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이 이뤄질 때까지 송전탑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개념을 도입한 영국은 2008년 4월부터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을 시행하고 있다.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해당 기업은 연간 매출액의 2.5~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 과실의 책임이 클 경우 벌금액에 대한 상한선을 두지 않는다. 영국은 이 제도를 도입한 뒤 인구 10만명당 산재 사망자 수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0.07명으로 낮아졌다.

이 국장은 “영국에서는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원인 대부분을 노동자의 부주의보다는 기업의 고의적 과실로 보고 있다”며 “살인에 준하는 범죄로 여겨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 사태에 대해 그는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들이나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며 “배신감·분노감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자살률을 높이거나 심장병 등 질병을 키운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자살을 기업살인과 연관지을 수 있는 근거는 ‘고의성’ 여부다. 노동자의 죽음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고의로 회피했을 경우 넓은 의미의 산업재해로 볼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기업살인이라는 얘기다.

노동자 위한 제도 보완해야…

이 국장은 “쌍용자동차 사태는 노동자 자살 사태를 막으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며 “기업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업살인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와 야권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회계조작에 의한 고의부도로 발생한 부당정리해고’와 궤를 함께하는 논리다. 야권이 요구하는 국정조사에서 고의부도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정리해고 사유가 사라지고, 기업살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국장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이 정리해고를 피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불가피한 정리해고가 발생하더라도 기업과 지자체, 정부가 노동자들의 취업알선과 심리적 지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 기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많이 얘기했다”며 “기업의 기본적 의무인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성민 기자 icarus@itvfm.co.kr | @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