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지역서만 타워크레인 노조 갈등, 왜?
민노총 “한노총 쓰지 마라” 타워 임대업체 협박
“지역 토박이만 쓰라”면서 노조 가입 원천봉쇄
근로기준법 어기는 민노총에 전태일 정신 있나

그동안 광주전남지역에선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타워크레인 조종 일감을 독점했다. 하지만 2019년 부터 한국노총에 타워크레인 노조가 조직돼 이 지역으로 진출했다. 그러자 민노총은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에 “한노총 조합원을 쓰지 말라”고 압박하고 으름장을 놨다. 왜 이러는 걸까. 

광주전남지역에선 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한노총 소속 조종사들의 취업을 막는 일이 비일비재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광주전남지역에선 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한노총 소속 조종사들의 취업을 막는 일이 비일비재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우리나라 건설현장의 생태계는 비상식적이다. 건설업계에서 노동조합이 일감을 따내기 위해 건설현장을 압박하는 일은 관행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건설공사의 외주화로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건설노동자들이 노조에 생존을 의지하면서다. 여기에 정해진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시공사, 현실과 동떨어진 법과 규제들이 맞물려 건설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예컨대 건설업계 노조는 건설현장에서 불법 혹은 편법적으로 자행되는 일들을 꼬투리 삼아 민원을 넣는다. 시공사는 정해진 공사비로 공사를 기간 내에 마무리하기 위해 노조 소속 조합원들을 고용해서 달랜다. 현장에선 능력보다 노조의 눈치를 봐서 사람을 뽑고, 노조는 시공사의 각종 불합리를 눈감아주는 비상식이 통용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건설현장인 셈이다.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고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에 가입돼 현장을 압박하고, 이를 통해 일감을 받아내는 게 일상이다.[※참고: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에 정규직으로 채용된 이들 중에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조종사들도 있다. 하지만 임대업체나 노조에 소속되지 않은 노동자가 일감을 얻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시공사가 타워크레인을 사용하려면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에 하청을 주고, 임대업체는 채용한 조종사가 없는 경우 노조 소속 조종사들과 단기고용계약을 맺는다.] 

이런 상황에서 양대 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서로 “우리 노조 조종사를 고용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에 소속된 조종사가 있으면 당연히 그들을 우선 투입한다. 자리가 남으면 양대 노조가 서로 협의해 투입 비율을 조정한다.

그런데 광주전남지역은 예외다. 여기선 민노총 소속 광주전라타워크레인지부(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산하)가 한노총의 진입을 원천봉쇄하고 있어서다. 사례를 보자. 2019년 11월, 전남 광양시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시공사는 임대업체 A사로부터 타워크레인 6기를 임차하기로 했다.

이 임대업체는 4기에 민노총 소속 조종사를, 2기에 한노총 소속 조종사를 채용하기로 고용계약을 맺고 타워크레인을 투입했다. 그런데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돌연 “다른 노조의 조합원을 허용할 수 없다”며 난동을 부렸다. 현장에 휘발유를 들고 나타나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도 했다.

결국 임대업체는 한노총 소속 조합원과의 고용계약을 파기하고, 민노총 소속 조합원으로 대체했다. 민노총 조합원들이 다른 노조 노동자를 물리적으로 밀어냈다는 건데, 이는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불법행위다. 

이런 일은 한노총에 타워크레인 노조가 조직된 2019년 이후 빈번하게 터졌다.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은 “우리 조합원만 쓰라”면서 불법파업과 공사 방해를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소모적인 법적 공방도 벌어졌다. 임대업체들이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을 고소했고,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무더기로 유죄(집행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은 이런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노총 소속 조합원이 배정된 타워크레인을 해체하도록 임대업체와 시공사에 압력을 넣는 일도 숱하다. 

가장 큰 피해자는 타워크레인 임대업체다. 시공사는 필요한 대수만큼 타워크레인을 사용하지 못하니 이동식 크레인으로 대체했고, 그 비용을 임대업체에 청구했다. 임대업체가 조종사를 고용하기 때문에 임대업체에 책임을 물리는 거다.

임대업체 B사의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선 양대 노조가 협의하는 게 일반적인데, 유독 광주전남에선 민노총이 협의를 하지 않고 불법파업에 으름장까지 넣고 있으니 난감한 상황”이라면서 “이동식 크레인 비용은 일반 타워크레인보다 단가가 훨씬 비싸기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임대업체가 맘대로 조종사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임대업체 C사의 관계자는 “노조에서 사람을 순번으로 정해 배정하다 보니 정작 사용자인 임대업체에는 인사권이 없다”면서 “건설현장에서 뒷돈을 받아먹은 조종사가 있어도 바꾸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노총의 이상한 대응이 임대업체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노노 갈등’이지만 이 때문만은 아니다. 건설현장의 뿌리 깊은 비상식적 고용시스템에서 싹튼 ‘또다른 비상식’이 문제를 키웠다. 이는 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한노총 소속 조종사들을 반대하는 논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근로기준법 무시하는 민노총

민노총의 광주전라타워크레인지부장 D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지금껏 지역 토박이들이 이 일(타워크레인 조종)을 해왔다. 그들이 민노총으로 조직돼 사실상 민노총 조합원만 일을 했던 셈이다. 그런데 2019년 한노총에 타워크레인 조합이 생긴 후 다른 지역에 소속된 이들까지 광주전남지역에 들어오고 있다. 지역 구분 없이 일을 할 거면 왜 조직이 지역별로 나눠져 있겠나. 상도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한노총 조합원들은 왜적이나 다름없다.” 

이를테면 광주전남지역에선 ‘광주전남’ 출신의 조종사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D씨는 “한노총 소속이라도 지역 토박이라면 반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이 지역 경계선을 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원래 현장을 찾아 전국을 떠돈다. 예컨대 경상도 목수가 전라도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는 얘기다. 

민노총은 매년 ‘전태일 열사의 정신 계승’을 강조하지만, 민노총에서 ‘전태일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사진=뉴시스]
민노총은 매년 ‘전태일 열사의 정신 계승’을 강조하지만, 민노총에서 ‘전태일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사진=뉴시스]

“한노총 소속이라도 지역 토박이라면 반대하지 않았다”는 D씨의 말도 사실이 아니다. 한노총 연합노련 소속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장 E씨 얘기를 들어보자.

“지역 토박이만 인정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전남 광양에서 나고 자랐다. 처음엔 민노총에 가입하려 하니 가입을 안 시켜줬다. 그래서 한노총에 가입해 다른 지역에서 일했는데, 타지 사람이라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나. 지역민과 타지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해법은 없을까. 양대 노조를 제외한 업계 관계자들은 “다른 지역처럼 민노총이 일정 비율을 양보하고, 협의를 해서 조율을 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합리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민노총 소속 광주전라타워크레인지부장 D씨는 “지역 토박이가 아니면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상위노조인 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는 “한노총과의 협의를 조율할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다는 얘기다. 

소속 다른 노동자 외면하는 민노총

민주노총은 매년 전태일 열사를 추모한다. 그의 정신을 기린다는 이유에서다. 전태일 정신의 핵심은 ‘모든 노동자를 사랑한 투쟁정신’이다. 그런데 최근 민노총은 자기 조합원 외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8월 우익 성향의 비정규직 노조 출범식에서 “민노총에 전태일 정신이 없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노동자를 ‘왜적’으로 치부하는 민노총의 민낯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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