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후 66일만에 졸속대책 낸 한전
현실성 떨어지는 뒷북 대책 수두룩
2016년 했던 약속도 안 지켰는데…
소규모 전기공사는 안전대책서 제외

지난해 11월, 한전의 하청업체에 소속된 청년이 전기공사 도중 사망했다. 현장엔 안전장구도, 공사를 감독하는 이도 없었다. 고용노동부는 한전에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한전은 두달이 넘어서야 안전대책이란 걸 내놨다. 그것도 장관의 말 한마디가 전해진 뒤 급하게 내놓은 대책이다. 이런 대책이 촘촘할 리 있겠는가. 더스쿠프(The SCOOP)가 한전이 내놓은 안전대책의 허점을 취재했다. 

한전은 “이익이 줄더라도 안전에 신경쓰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사진=뉴시스]
한전은 “이익이 줄더라도 안전에 신경쓰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사진=뉴시스]

“전기공사 현장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 조직 운영 패러다임을 효율에서 안전으로 전환하고, 비용이 증가하고 (전력) 공급에 지장이 발생해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겠다.”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이 1월 9일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협력회사 직원 감전사고 관련 안전관리 특별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전이 전력 공급에 지장이 생기더라도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건 전력을 팔아 이윤을 내는 한전으로선 큰 결심임에 틀림없다. 돈을 덜 벌더라도 안전을 챙기겠다는 얘기여서다. 

하지만 한전의 안전대책을 두고 뒷말이 많다. 우선 이 대책이 온전히 자발적으로 나온 것인지 의문이다. 사실 한전이 안전대책을 내놓은 건 한 노동자의 죽음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5일 경기도 여주시에서 전기 연결 작업을 하던 김다운씨는 고압 전류에 감전된 후 19일 만에 숨졌다. 

김씨는 한전의 전기공사를 발주받은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위험의 외주화’에 노출된 그에겐 2인1조의 팀도, 절연장갑도, 고압전기작업에 사용되는 절연고소작업차도 없었다. 심지어 공사를 감독하는 이 또한 없었다. 그 바람에 김씨는 30분 동안이나 안전띠에 의지한 채 매달려 있었다. 해당 하청업체가 비용을 아끼려 했던 탓도 있겠지만, 한전의 관리감독 책임도 없지 않았다는 얘기다. 해당 사고를 조사했던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한전은 책임 있는 자세로 대책을 내놔야 했다. 하지만 한전은 김씨 사고 이후 두달 넘게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1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정 사장에게 이 사고와 관련해 전화를 했고, 중대재해처벌법(시행 2월 7일)에 따르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렸다”고 밝히자 태도를 바꿨다. 간담회 다음날인 7일 한전은 정 사장 주재로 전 경영진을 소집해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했고, 9일 안전관리 특별대책을 내놨다. 사고 후 66일 만이었다. 

이렇게 부랴부랴 내놓은 대책이 촘촘할 리 없다. 한전의 안전대책 주요 내용은 이렇다. 먼저 3대 재해(감전ㆍ끼임ㆍ추락) 방지책이다. ▲위해요인의 물리적 분리, 직접활선(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을 작업자가 직접 만지는) 공법 즉시 퇴출, 정전 후 작업 확대(감전 예방) ▲전기공사용 특수차량 밀림방지 장치 필수화, 기계적 성능인증제도 도입(끼임 예방) ▲추락방지장치 설치, 전주(전봇대) 직접 올라가기 금지, 고소작업차 탑승 원칙(추락 예방) 등이다. 

여기에 관리체계 혁신 방안으로 ▲도급 공사비 2000만원 이상이거나 간접활선 공사를 하는 현장에 감리원 상주 배치(1공사현장 1안전담당자 배치) ▲사전 신고와 실제 공사현장 일치 여부 확인, 불법하도급 관행 원천 차단 ▲불법 발견 시 즉시 공사 중단 ▲전기공사업체 간 직원 돌려쓰기, 불법하도급 등 적발 업체는 한전 공사 참여기회 박탈하는 제도 도입(정부와 협의)을 추가했다.

직접활선, 5년 전 퇴출하겠다더니…

언뜻 그럴듯하지만 대책엔 허점이 숱하다. ‘정전 후 작업 확대’는 한전의 설명처럼 위해요인을 배제할 수 있는 조치지만, 기업의 경우 실제 전력 공급이 끊기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게 함정이다. ‘직접활선 공법’은 2016년 당시 전기원노조가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자 한전이 ‘원칙적 폐지’를 선언했던 방식이다.

한전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직접활선 공법을 간접활선 공법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10건 중 3건이 직접활선 공법으로 진행했다. 직접활선 공법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여전하단 거다. 

이런 지적에 한전 측은 “9종의 간접활선(작업자가 직접 만지지 않는) 공법을 개발했고, 2022~2023년 사이 9종을 추가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말은 직접활선 공법을 간접활선 공법으로 즉시 대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 사장의 ‘직접활선 공법 즉시 퇴출’ 약속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허점은 또 있다. 한전이 강조한 ‘1공사현장 1안전담당자 배치’ 방안을 통해 현장이 얼마나 안전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전은 이 방안을 ‘도급 공사비 2000만원 이상이거나 간접활선 공사를 하는 현장’에 적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국전기공사협회의 전기공사업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전이 발주한 전기공사 건수는 28만618건인데, 이 가운데 27만3157건(97.3%)이 2000만원 미만의 공사다. 심지어 18만7220건(66.7%)은 500만원 이하 공사다. 공사 규모로 따지면 한전이 안전담당자를 적극 배치하겠다는 현장은 3%에도 못 미친다.

간접활선 공사 건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재해사고가 대형 현장보다 규모가 작은 현장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과 맞지 않는 방안이다.[※참고: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전체 산업재해사고의 73.6%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2020년 기준).] 

“불법하도급 등 부적정행위가 한번이라도 적발된 업체는 한전 공사의 참여기회를 박탈하도록 하겠다(정부와 협의)”는 방안에도 맹점이 있다. 전기공사업법은 불법하도급 업체의 등록을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와 협의를 할 필요도 없이 한전 공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전은 2016년에 이미 노조의 반발로 ‘직접활선’ 공법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사진=뉴시스]
한전은 2016년에 이미 노조의 반발로 ‘직접활선’ 공법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사진=뉴시스]

필요도 없는 대안을 내놓은 셈인데, 이 때문에 정작 필요한 대안은 내놓지 않았다. 등록이 취소된 후 새로운 업체명으로 입찰에 참여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한전 관계자는 “법도 그런 편법까지 막을 방법이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걸 막겠는가”라면서 이상한 해명을 늘어놨다. 

공공의 역할과 기업의 한계 

그렇다면 한전의 재해사고를 막을 좀 더 그럴듯한 대안은 없을까. 현장에선 “공공에서 관리ㆍ감독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게 해답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숙견 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는 “그동안 기업이 자율적으로 ‘안전관리자’를 임명해서 현장의 안전을 관리하게끔 했는데, 그게 잘 안돼서 결국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만든 것 아닌가”라면서 “결국 정부나 지자체, 혹은 공공기관이 관리ㆍ감독할 방안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안전관리 시스템을 강화하면 돈이 많이 들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 비용을 생각하면 애초에 재해사고의 원인이 되는 ‘위험의 외주화’를 못하게끔 제도화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지 않겠는가. 그게 오히려 비용이 더 적게 들 수도 있고, 특히 노동자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으니 더 안전해질 가능성도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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