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날 때마다 탈원전 논란
전기요금 인상론으로 이어져
흑자 냈을 때는 대비 전무

“한전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한전이 적자를 낼 때마다 나오는 주장이다. 정부 정책이 한전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한전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게 설득력 있는 주장일까. 그럼 한전이 흑자를 낼 때 한전 임직원들의 연봉을 올려주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한전 실적에 숨은 고약한 역설을 취재했다. 

한전이 적자를 낼 때마다 탈원전 논란이 불거진다.[사진=뉴시스]
한전이 적자를 낼 때마다 탈원전 논란이 불거진다.[사진=뉴시스]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올해 2분기 또다시 적자를 기록했다. 2019년 4분기 1조5872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지 6분기 만이다. 적자액은 무려 7648억원이다. 한전 측은 적자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회사 연료비가 2725억원 증가했고, 민간발전사 전력구입비가 1조143억원 늘었다. 이는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석탄발전 상한제 시행, 전력수요 증가로 인한 LNG 발전량 증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의 이행의무 비율 상향(7→9%) 등에 따른 결과다.” 

쉽게 말해 연료 가격과 정부 정책 등 외부 요인 때문에 적자를 봤다는 얘기다. 전력생산을 위한 연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전기란 공적 재화를 판매하는 공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한전이 호실적을 냈을 때에도 연료비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특히 한전은 주로 전력판매량이 급증해 누진율이 적용되는 3분기에 호실적을 낸다. 한전의 실적을 정책을 빼놓곤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적자를 무조건 외부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게 마땅하다는 건 아니다. 한전의 수익구조가 오로지 외부환경으로 결정되는 천수답 시장이라면 경영진이 필요하지도, 임직원들이 고액 연봉을 받을 이유도, 상장사 자격을 유지할 이유도 없어서다. 일부에서 그 어떤 기업보다도 한전이 ESG(환경ㆍ사회적 가치ㆍ지배구조) 경영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령, 한전이 자회사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더 투자하면 RPS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시대적 흐름과도 맞다. 

하지만 그동안 한전은 이런 흐름을 좇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에선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하느라 바빴다. 그 결과, 2020년 네덜란드 공적연금(APG)은 한전이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6000만 유로(약 790억원) 규모의 한국전력 지분을 매각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한전은 해외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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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전이 적자를 내고, 그 원인을 외부환경 탓으로 돌릴 때마다 불필요한 논란거리들이 불거진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건 ‘탈원전 논란’이다. 논리를 쉽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문재인 정부가 저렴한 데다 온실가스 문제도 없는 원자력발전(이하 원전)을 줄이는 대신 값비싼 LNG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려 한전이 적자가 났다. 이 때문에 결국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고, 애먼 국민이 ‘탈원전 청구서’를 받는 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주축인 태양광 발전 설비는 5062㎿에서 1만4575㎿로 크게 늘었다.

그렇다고 원전 설비가 줄어든 건 아니다. 같은 기간 원전 설비도 2만2529㎿에서 2만3250㎿로 늘었다.[※참고: 같은 기간 석탄발전(유연탄) 설비는 3만6098㎿에서 3만6453㎿로, LNG 발전 설비는 3만7833㎿에서 4만1170㎿로 늘었다. 석유발전 설비는 4151㎿에서 2247㎿로 줄었다.] 

에너지원별 발전량을 봐도 마찬가지다. 이 통계는 2018년 자료부터 공개돼 있는데, 이때부터 2020년까지 태양광 발전량(82 39GWh→1만6611GWh)과 원전 발전량(13만3505GWh→16만184GWh)은 동시에 늘어났다. 전력거래량에서도 태양광 발전 거래량과 원전 거래량은 함께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 통계는 한전이 오로지 ‘탈원전’ 때문에 적자를 낸 게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준다. 

그럼 문제가 어디에 있을까. 답은 또다른 화석연료인 LNG 발전 설비와 발전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데서 찾을 수 있다. LNG 가격은 다른 연료보다 훨씬 비싸다. 올해 7월 기준 연료원별 정산단가(㎾h당 원)에 따르면, LNG는 121.2원으로 유류(212.5원)보단 낮지만, 원자력(64.3원)이나 유연탄(99.9원)보다 훨씬 비싸다. 심지어 태양광(91.1원ㆍRPS 정산금 미포함) 가격보다도 비싸다. 

그럼에도 연료원별 전력거래량은 2017년 11만7637GWh에서 2020년 14만1077GWh로 19.9%나 늘었다. 올해 7월까지의 LNG 전력거래량이 9만8222GWh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말엔 16만8381GWh에 이를 전망이다. 원전 옹호론자들이 “저렴한 가격의 원자력 비중을 더 높였으면 적자를 면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냉정하게 말해 이는 설득력이 없는 주장은 아니다. LNG 대신 원자력을 더 많이 사용했다면 적자폭이 크게 줄었을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허점도 있다. ‘원전 비중만 높였으면 된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원전 만능론에 기반한 것이다. 원자력이 위험성 때문에 장기적으로 줄여야 할 에너지란 점을 생각하면 근시안적이기도 하다. 

한전이 석탄발전에 투자한 탓에 네덜란드 공적연금도 한전 투자를 중단했다.[사진=뉴시스]
한전이 석탄발전에 투자한 탓에 네덜란드 공적연금도 한전 투자를 중단했다.[사진=뉴시스]

“한전 경영진의 발전소 운영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비중을 더 줄여야 할 원자력도, 값비싼 LNG가 아닌 다른 에너지를 발굴ㆍ보완하는 건 한전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이란 거다.

하지만 한전은 앞서 언급했듯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영 방식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전력거래량 기준으로 원전은 29.0%, 태양광은 3.0%다. 반면 화석연료는 62.4%(LNG 26.4%, 유연탄 35.2%, 무연탄 0.4%, 유류 0.4%)를 차지하고 있다.

전기요금만 올리면 될까 

한전 경영진을 향한 비판은 또 있다. 흑자가 났을 때 적자를 메울 방책을 세웠다면 지금처럼 ‘손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참고: 한전은 흑자가 나면 어김없이 임직원들의 연봉을 올리기 바빴다. 한전은 지난해 4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후 직원 평균연봉을 전년 대비 2.3% 올렸다. 등기이사 평균연봉은 19.4%, 미등기임원 평균연봉은 15.5% 인상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한전은 흑자가 났을 땐 조용히 임금을 올리면서 적자가 났을 때는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면서 “그러니 국민들이 전기요금을 올린다고 하면 인상부터 쓰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 스스로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고 전기요금만 올리겠다는 주장은 명분이 없다는 얘기다. 

한전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한전은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적자 타개 방안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건 연료비용이 더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전력공급 비용을 매년 3% 이내로 줄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전력공급 비용을 어떻게 절감할지 그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았다. 적자만 나면 남 탓을 하는 한전의 민낯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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