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소액주주가 기업분할 비판하는 이유
최대주주 기업 지배력 높이는 분할

LG에너지솔루션에서 출발한 ‘물적분할’ 이슈가 여전히 뜨겁다. 진원지는 개미들이다. ‘LG엔솔의 배터리사업처럼 핵심사업을 떼어낸 탓에 기존 주주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지난해 기업분할의 문제점을 지적한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를 다시 만났다.

기업의 분할이 주주와 기업의 가치보다는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사진=뉴시스] 
기업의 분할이 주주와 기업의 가치보다는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사진=뉴시스] 

✚ 기업분할을 두고 칭찬 일색이던 시장 기조가 많이 바뀌었다.
“기업분할의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 논란이 커지면서 투자자의 인식이 달라졌다. 기업의 핵심사업부를 떼어내 다시 상장하는 것이 기존 주주에겐 손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가 활성화하면서 주주의 권리보호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 지난해 ‘기업분할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여전히 그런 견해인가.
“그렇다. 수치만 봐도 알 수 있다. 2010년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은 1150조원가량이었다. 상장회사는 1806개, 코스피지수는 20 00포인트대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 시총은 2412조원으로 2배 이상 커졌다. 상장회사는 2487개로 37.7% 증가했다. 하지만 코스피지수는 2000포인트에서 2700포인트로 35.0% 상승하는 데 그쳤다. 모든 게 기업분할 때문은 아니겠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국내 주요 대기업은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을 통해 분리한 계열사를 상장하는 데 열을 올렸다. 실제로 상장사가 2개 이상인 대기업그룹에 속한 기업만 208개에 달한다는 자료도 있다. 기업의 성장성이 한곳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계속 쪼개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선 주가가 제대로 오르기 어렵다. 시총과 상장기업은 늘었지만 주가지수와 개별기업의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걷는 이유다.”

✚ 기업분할이 기업 가치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얘기다.”

✚ 자세히 설명해 달라.
“물적분할은 신설회사가 기존 회사의 100% 자회사가 된다. 이론대로라면 신설회사의 실적이 기존 회사의 재무제표에 그대로 반영된다. (물적분할도 마찬가지이지만) 인적분할의 경우에도 실적이 나쁜 사업부문을 떼어내면 재무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기업분할에 주식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그걸 보지 않으면 모든 건 ‘이론’일 뿐이다.”

✚ 요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물적분할의 예를 들어보자.
“투자자가 신사업 B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A기업에 투자했다고 치자. 당연히 주가엔 성장 가능성을 반영한 프리미엄이 붙는다. 하지만 A기업이 B사업부문을 느닷없이 분할하면 A기업은 졸지에 지주회사가 돼 기업가치가 하락한다. 반면, B사업을 영위하는 신설회사(사업회사)의 기업가치는 높아진다. 신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 기업이 배당을 노려야 하는 지주회사로 바뀌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는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 LG엔솔처럼 기업공개(IPO)에서 흥행하면 투자자도 이익을 보는 거 아닌가.
“LG엔솔이 물적분할 후 상장으로 끌어모은 자금은 12조75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상장 당일인 지난 1월 27일 LG엔솔의 주가가 따상(상장일 공모가의 두배로 시작한 시초가가 상한가 기록·공모가의 2.6배 상승)에 실패한 50만5000원을 기록하면서 개인투자자 올린 수익은 1주당 20만5000원에 그쳤다. 공모주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대주주가 기업분할 후 상장으로 얻는 이익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물적분할로 LG화학 주주는 이미 주가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경험하고 있다.”


✚ 기업분할 자체가 문제라는 건가.
“그런 것은 아니다. 기업분할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법도 아닌 데다 기업의 경영전략으로 볼 수 있다. 선진 금융시장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기업의 분할은 활발하게 이뤄진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선 분할로 쪼갠 기업을 재상장한다는 점이다.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기업분할로 모회사의 주가가 하락하고 자회사의 주가가 상승하는 것부터 이해상충이다. 대주주의 이익과 신설회사의 성장을 위해 기존 주주가 희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게임즈 등을 상장한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투자자 입장에선 세 기업 모두 카카오를 등에 업고 성장한 기업이다. 하지만 기업이 분할된 탓에 성장의 과실은 카카오에 베팅한 투자자가 온전히 누릴 수 없다. 카카오 주주 입장에선 자신이 투자해 성장한 회사가 정작 자신이 아닌 남의 배를 불려준 격이 된 셈이다. 신사업을 키우는 데 쓰인 돈이 애초에 어디에서 나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기업 분할 후 상장으로 소액투자자만 손실을 본다는 주장이 제기된다.[사진=뉴시스] 
국내 주요 대기업의 기업 분할 후 상장으로 소액투자자만 손실을 본다는 주장이 제기된다.[사진=뉴시스] 

✚ 신사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투자금이 필요하면 유상증자를 하거나 채권을 발행하면 된다. 무리한 투자로 기업이 망하면 어떻게 하냐고 우려하지만 그건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 책임을 주주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 반대로 기업이 망할 때 주주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것도 아니다.”


✚ 다른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기업을 쪼개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업 실패의 위험성을 낮추고, 막대한 자금을 손쉽게 모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다.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면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떨어진다. 기업은 이게 싫은 거다.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해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기업 경영과 지배구조를 별개처럼 얘기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기업의 행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 물적분할로 피해를 본 주주에게 매수청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존 주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하지만 기업의 무분별한 분할을 막는 수단은 되지 못한다. 기업의 입장에선 기존 주주든 새로운 주주든 상장하는 기업의 주가를 사주기만 하면 된다. 기업은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가.
“애플이나 구글처럼 대표기업 하나만 상장하게 만드는 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 상장을 제한하면 국내 기업이 해외 증시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럴 가능성은 낮다. 미국은 이해상충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소송으로 번질 경우 기업이 큰 손해를 볼 수 있어서다. 미국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대표기업 하나만 상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계열사끼리 복잡하게 엮여 있다.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해외 상장은 쉽지 않다. 해외 상장이 유리했다면 기업에서 먼저 알고 나갔을 거다.”


✚ 기업 분할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다른 방안은 없는가.
“기업이 소액주주를 무서워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집단소송제다.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소송을 통해 기업에 책임을 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소액주주가 기업분할로 눈뜨고 코 베이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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