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론을박 속 11년 동안 법 적용 예외
코로나 규제 완화에 입석 안전 재논란
입석 줄었다지만 승객 안전 방치

2011년 고속도로를 달리는 광역버스 승객들의 안전 문제가 대두됐다. 이후 정부는 안전띠 착용을 의무화하고, 입석을 금지하는 제도들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여전히 입석이 존재한다. 일반광역버스(광역직행버스)의 입석을 11년째 예외적으로 허용해주고 있어서다. 법과 현실 간 괴리가 있다는 건데, 정부도 지자체도 이를 잘 안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수도권의 광역직행버스엔 여전히 입석 승객이 적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다.[사진=뉴시스]
수도권의 광역직행버스엔 여전히 입석 승객이 적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다.[사진=뉴시스]

“기사님, 그만 좀 태우세요. 서서 간다고 버스요금 깎아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왜 이렇게 태우는 겁니까. 예전에 승객 안전 때문에 입석을 금지한 것 같은데, 왜 입석이 허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지난 5월 21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서 수원 광교로 가는 광역버스 내부. 한 승객이 만원버스가 된 상황을 참다못해 이런 말을 쏟아냈다. 

화창한 날씨와 코로나19 거리 두기 완화의 여파인지 그날은 서울로 나온 나들이객이 많았다. 특히 인사동과 광화문 주변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고공행진하는 기름값 때문에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 탓인지 저녁이 되면서 인파가 한꺼번에 광역버스로 몰렸고, 그런 불편한 상황이 연출됐다. 

다만, 소리를 내지른 승객의 불만을 모두가 공감한 건 아니었다. 또다른 승객은 “사람들이 굳이 타겠다고 하니 버스기사가 막지 못하는 건데, 왜 기사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이런 건 지자체에서 해결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참 후 버스기사는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했다. “저도 모든 승객이 안전하게 앉아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불만을 얘기하신 분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저도 난감하네요. 여러분들이 지자체에 버스를 늘려달라고 요청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이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다. 엄연히 버스 운영시스템의 문제인데 책임 없는 이들이 논쟁을 벌이는 격이어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풍경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란 점이다. 시계추를 10여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1년 4월부터 자동차 전용도로에 진입하는 모든 자동차의 승객들은 의무적으로 안전띠를 착용해야 했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탑승자 전원이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시행됐기 때문이었다.[※참고: 2006년 개정된 도로교통법과 시행령은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모든 자동차의 승차 정원을 넘길 수 없도록 규제했다. 따라서 시행규칙 개정은 이 법령을 준수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이 조치 이후 고속도로를 이용해 수도권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는 혼란에 빠졌다. 승객 전원이 안전띠를 하려면 좌석 수에 맞게 승객을 태워야 하는데, 배차 간격이 촘촘하면 몰라도 출퇴근 시간에는 입석을 완전히 없앨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갑론을박을 반복하던 정부는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광역버스의 입석을 ‘한시적’으로 허용해줬다. 법은 바뀌었지만 광역버스는 예외가 된 셈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면서 2012년 11월부터는 광역급행버스(M버스)와 시외버스, 전세버스에 타는 승객들은 모두 안전띠를 착용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하지만 이때도 광역직행버스(빨간버스)는 ‘승객이 많다’는 이유로 입석이 허용됐다. 대신 지자체들은 광역버스 운행을 늘리고, 2층버스를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병행하겠다고 했다. 

고속도로 시한폭탄, 광역직행버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사고가 터졌다.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났고, 사회 전반의 안전불감증이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도 광역직행버스 입석 문제가 논란이 되자 같은 해 7월 정부는 서울ㆍ인천ㆍ경기 지역 광역직행버스의 입석을 전면 금지했다.

광역직행버스가 사고를 당하면 입석 승객들은 크게 다칠 수 있다.[사진=뉴시스]
광역직행버스가 사고를 당하면 입석 승객들은 크게 다칠 수 있다.[사진=뉴시스]

시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안전을 챙겨주겠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좌석이 없어 버스 자체를 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버스 탓에 지각을 했다는 이들도 넘쳐났다.

지자체들이 대응에 나섰다. 버스 대수를 늘렸고, 운행 횟수도 늘렸다. 2층버스도 도입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니 요금도 올랐다. 그럼에도 여전히 광역직행버스의 입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는 늘 같았다. 버스보다 승객이 많다는 거였다. 이번에도 정부는 충분히 버스가 공급될 때까지 입석을 허용하기로 했다. 

당연히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버스 사업자는 광역직행버스에 사람을 더 태우겠다고 뒷문을 없애 자리를 만들었다. 비상구 하나가 사라진 셈이었다. 심지어 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제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시내버스마저 입석 승객들을 태운 채 고속도로를 질주하기도 했다. 안전을 위해 제도를 뜯어고쳤는데, 정작 시민은 더 위험해진 셈이었다. 

2018년 3월 도로교통법이 개정 공포됐다. 이제는 ‘모든 도로’에서 ‘전 좌석 안전띠’를 의무화한다는 내용이었다. 또다시 광역직행버스의 입석이 논란을 빚었다. 안전한 좌석에 앉은 승객은 안전띠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반면, 입석 승객은 안전할 권리도, 안전띠를 할 의무도 없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이미 법과 현실이 오랫동안 괴리돼왔던 탓이었다. 그러자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 내 일부 지자체는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똑같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인데 광역급행버스는 안전띠 단속 대상이 되고, 광역직행버스는 단속 대상이 되지 않는 불합리를 두고 보느니 차라리 모조리 입석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이 주장이 현실이 되지는 않았지만, 2019년 11월 고양시에서 버스 파업이 발생했을 때는 한시적이지만 광역급행버스에 입석이 허용되기도 했다.

지난 10여년간 시민의 안전을 위한 광역버스 안전띠 의무화와 입석 금지 정책의 결과는 이처럼 오락가락의 결정판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도 대안이 없다는 거다.

경기도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도로교통법에는 모든 자동차의 승객이 안전띠를 하게끔 돼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는 광역급행버스와 시외버스, 전세버스에만 안전띠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광역직행버스 규정은 없다. 입석을 금지하려면 운전자를 더 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승객이 아침과 저녁에만 많고, 낮엔 많지 않으니 인력 운용에 비효율이 생긴다. 버스를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코로나 규제 완화로 인해 입석 관련 민원이 늘고 있지만, 사실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

대안 없나 의지 없나

광역직행버스를 타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한 정책이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란 얘기다. 그러는 사이 2018년엔 입석 승객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광역직행버스가 추돌사고를 당해 승객 28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안전띠만 맸어도 다치지 않을 사고였다.

그런데도 달라진 건 없다. 법과 현실 간 괴리도, 애먼 버스기사와 승객 간 비상식적인 갈등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지자체엔 대안이 없는 걸까 의지가 없는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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