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시장서 중국 전기버스 아이러니한 성장 
허술한 국내법이 중국산 전기버스에 날개 달아줘
부실한 인증제·쿼터제 등 ‘역효과’ 불러일으켜

불과 5년 사이 시장이 60배 가까이 성장했다. 그런데 불안하다. 외세外勢의 힘이 막강해지는 게 느껴져서다. 이대로라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쇠퇴하고, 국민의 안전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게 불 보듯 뻔하다. 중국산이 밀고 들어온 국내 전기버스 시장의 얘기다. 이곳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국내 전기버스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내 전기버스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소리소문 없이 급성장 중인 분야가 있다. 바로 전기버스 시장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전기버스 시장 규모는 337억2000만 달러(약 44조원)에 달했다. 전기버스 시장은 해마다 평균 13.9% 성장해 2030년엔 전세계 전기버스 보급 대수가 21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전기버스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2015년 22대였던 국내 전기버스 보급 대수는 2020년 1276대로 5년 새 58배가 됐다. 국내에서 전기버스가 빠른 속도로 확산한 건 정부의 적극적인 ‘친환경’ 정책 덕분이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국토교통부ㆍ환경부는 물론 지자체까지 나서 전기버스에 보조금ㆍ면세 등의 혜택을 줬고, 버스운송사업을 영위하는 운수사들이 전기버스 도입으로 화답했다. 

전기버스의 이점은 분명하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배출가스가 발생하지 않고 소음이 적다. 일반 내연기관 버스에 비해 연료비ㆍ유지보수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운수사 입장에선 운영비도 절감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기버스를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국내 전기버스 시장이 처한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 전기버스 제조사들이 국내 제조사들을 위협하고 있어서다.

통계를 살펴보자. 관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4~5년 새 중국산 전기버스 수입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478만 달러(29대)였던 중국산 전기버스 수입액은 2020년 4971만 달러(389대)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중국산 전기버스의 파상공세는 국내 제조사들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전기버스 제조사들의 시장점유율은 61%로 중국 제조사(39%)보다 우위에 있었다(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하지만 올 상반기(1~6월) 중국 제조사들이 시장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리면서 ‘점유율 역전’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쯤에서 한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중국 제조사들이 한국 시장에 공세를 퍼부을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이냐는 거다. 답은 가격경쟁력, 손쉬운 인증 절차, 독점방지 쿼터제란 세가지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전기버스 제조사들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 전기버스 제조사들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요인❶ 가격경쟁력 = 중국산 전기버스의 가격경쟁력부터 살펴보자. 국산 전기버스 가격이 3억원대 중반인데 반해 중국산 전기버스는 수입단가 기준으로 대당 1억5000만원~2억원대 수준이다. 여기에 최대 700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으면 원래 가격의 절반 정도 비용으로 차를 구입할 수 있다.  

가격대별로 다양한 차종도 중국산 전기버스의 강점으로 꼽힌다. 보조금 지급 대상에 속하는 모델의 수를 비교해보면 중국산 전기버스가 25종으로 국산(20종)보다 많다(환경부ㆍ2022년 6월 기준). 구매자 입장에선 중국산 전기버스를 구입할 때 선택권이 국산보다 좀 더 넓은 셈이다. 

■요인❷ 손쉬운 인증 = 중국 제조사들이 이렇게 다양한 모델을 수출할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허술한’ 국내 법체계 덕분이다. 국내법상 전기버스는 자국의 안전 인증 및 적합성 검증시험 성적서를 갖추면 국내 도입 시 별도의 추가 인증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반면 국산 전기버스는 국토부가 주관하는 수십가지 인증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참고: 문제는 중국의 안전 인증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중국 제조사들 중에선 전기차 전용 부품이 아닌 ‘일반 전자제품용’ 부품으로 안전 인증을 받고 그대로 차에 탑재하는 곳들이 숱하다. 당연히 부품의 내구성은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산 전기버스도 한국의 인증 체계에 맞춰 안전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요인❸ 독점방지 쿼터제 = 이렇듯 진입장벽이 낮은 상황에서 지자체의 ‘규제’가 되레 중국 제조사들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지적도 있다. 가령, 전기버스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서울시에선 독점을 막기 위해 운수사별로 특정 제조사의 차량 비중이 5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규정을 일부 완화해 구입하는 버스가 10대 이하라면 쿼터제를 적용하지 않지만,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 제조사 입장에선 쿼터제가 여전히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본래 중소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예상치 못한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물론 전기버스 보급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ㆍ지자체의 정책 방향에는 십분 공감한다. ‘탄소제로(0)’가 글로벌 산업의 트렌드인 만큼, 전기차는 미래 교통의 핵심이나 다름없어서다.

관건은 어떻게 시장을 육성해 나가느냐다. 국내 전기버스 제조사들이 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전체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우리 현실에 맞는 제도와 문화가 필요하다.

2019~2021년 전기버스 구매자에 면세 혜택을 준 부가가치세 금액만 719억원에 달한다(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실ㆍ2021년은 3분기 기준). 이중 중국산 전기버스의 비중이 28%에 달한다.

지금처럼 ‘올 테면 오고 갈  테면 가라’ 식의 부실한 정책이 이어진다면, 시장은 시장대로 중국 제조사들에 점령당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혈세로 남 좋은 일만 시킬 셈인가.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 전기버스의 리셋 버튼을 눌러야 할 때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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