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제기되는 한계기업 위험성
이견 없는 해법은 ‘창조적 파괴’
하지만 청산 없이 지원정책만 난무
사회안전망 만들고 청산 나서야

15.3%. 2020년 기준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한계기업의 비율이다. 규모 있는 기업 10곳 중 1~2곳이 한계기업이란 얘기다. 최근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된 탓이기도 한데, 그러자 한계기업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수십년 전부터 비슷한 지적이 끊이지 않아서다. 그동안 숙제가 풀리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더스쿠프가 한계기업과 모순의 접근법을 취재했다.

역대 정부는 늘 한계기업 퇴출을 얘기했지만, 청산보다는 회생에 초점 맞춘 정책을 펼쳤다.[사진=뉴시스]
역대 정부는 늘 한계기업 퇴출을 얘기했지만, 청산보다는 회생에 초점 맞춘 정책을 펼쳤다.[사진=뉴시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2020년 5월 0.50%였던 기준금리는 2021년 두차례(8월ㆍ11월), 올해 세차례(1월ㆍ4월ㆍ5월) 인상을 거쳐 현재 1.75%까지 치솟았다. 2년 만에 1.25%포인트가 인상된 셈이다. 고작 1.25%포인트가 무슨 큰 영향을 미칠까 싶지만, 그리 만만한 숫자가 아니다. 

3%의 금리로 1억원을 빌려 10년간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상환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만기까지 갚아야 할 총 대출이자는 1587만원, 월 상환금액은 97만원이다. 그런데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4.25%로 상승하면 총 대출이자는 44.4% 늘고, 월 상환금액은 6.1% 증가한다. 1.25%포인트의 금리 변동에도 시장이 들썩이는 이유다. 

중요한 건 급격한 금리인상이 한계기업의 부실을 키운다는 거다. 단적인 예로 금리가 오르면 한계기업의 연체율도 올라갈 수 있다. 더구나 금리인상기에 기업대출 연체율은 가계대출 연체율보다 더 크게 상승한다(한국경제연구원).

[※참고: 한계기업이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총이자비용÷영업이익)이 1 미만’인 기업이다. 열심히 돈을 벌어도 대출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3년간 계속됐다는 의미다. 성장 잠재력도 없이 사회적 자원을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좀비기업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런 한계기업의 수는 적지 않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9월 발표한 ‘금융상황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한계기업은 2020년 기준 3465개(외부감사 대상 기업 기준)다. 전체 외감 기업(2만2688개)의 15.3% 수준이다. 2017년엔 13.7%였는데, 더 늘어났다.

외감 대상 기업은 직전연도 자산총액이 70억원 이상인 곳이다. 꽤 규모가 있는 기업 10곳 중 1~2곳이 한계기업이라는 거다. 한계기업의 차입금은 124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9조1000억원 증가했다.

한계기업은 은행 건전성을 해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장 건전성도 함께 해친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산업 내 좀비기업 자산 비중이 10%포인트 증가하면 정상기업의 고용증가율은 0.53%포인트, 투자율은 0.18%포인트 감소한다. 반면 좀비기업 자산 비중을 10%포인트 낮추면 정상기업의 고용이 11만명 늘어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은 신규 기업의 활발한 진입과 생산성이 낮은 기업의 퇴출, 다시 말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된다. 한계기업은 이 과정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금리인상기에 한계기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김태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예보 창립 26주년 기념사를 통해 “은행들은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늘어난 한계기업ㆍ소상공인 대출의 부실이 금리상승으로 현실화해 수익성이 낮아질 우려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제는 한계기업의 위험성이 어제오늘 제기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한계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정착하면서 경기가 침체기에 들어가거나 금리가 인상(상승)할 때면 어김없이 거론됐다. 

그렇다면 한계기업의 위험성을 해소하기 위해 제시된 해법은 뭐였을까. 해법은 간단했다. 앞서 언급한 ‘창조적 파괴’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한계기업의 청산가치와 존속가치를 따져 청산가치가 높으면 청산하고, 존속가치가 높으면 제대로 지원해서 살리면 그만이란 거다. 물론 청산은 기업부실의 원인이 단기적 경기침체가 아닌 경쟁력 약화나 고비용 구조로 인한 생산성 저하일 때 가능하다. 

문제는 이같은 ‘창조적 파괴’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일까.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청산해야 할 기업들을 청산하지 못했다. 청산에 따른 일자리 감소나 연쇄 도산을 감당할 수 없었고, 각종 중소기업 보호정책들을 토대로 정책금융이 끊임없이 지원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산이 필요한 기업을 솎아낼 때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기준점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 보니 청산 대상을 선정하지도 못했다. 결국 기업의 회생에 초점 맞춰진 정책들만 난무했다.” 

정부는 일자리 감소와 연쇄 도산을 우려해 대형 한계기업이 청산되는 걸 원치 않는다.[사진=뉴시스]
정부는 일자리 감소와 연쇄 도산을 우려해 대형 한계기업이 청산되는 걸 원치 않는다.[사진=뉴시스]

옥석을 가려 살릴 건 살리고 죽일 건 죽여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는 거다. 실제로 한계기업 퇴출이 절박했던 외환위기 당시 기업 구조조정을 명목으로 법정관리제도와 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제도가 도입됐지만, 둘 다 청산보다는 회생을 위한 제도에 가까웠다.

[※참고: 법정관리는 존속가치가 높은 기업을 법원이 관리하면서 정상화하는 것이고, 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은 채권단과 채무불이행 기업이 자율협상을 통해 채무를 조정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부실기업 퇴출을 위해 만든 워크아웃제도가 부실기업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장치가 되고 있다” “부실기업 퇴출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신종 관치”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죽이지를 못하고 살리기만 했으니 한계기업이 독버섯처럼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또다시 한계기업들이 도마에 올랐다. 금융감독원이 한계기업의 회계관리를 강화하고, 증시에선 한계기업들이 대거 퇴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후속조치가 없었던 탓에 청산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2015년 시중은행들의 부실채권 관리회사인 유암코(연합자산관리)를 확대 개편해 기업 구조조정 역할을 맡겼다. 민간 주도의 시장 친화적인 방법을 활용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유암코 역시 청산을 통한 기업 퇴출보다는 존속가치가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일에 집중했다.

구조조정조차 쉽지 않았다. 채권은행들이 대주주인 경우가 많아 입김을 낼 수 없었던 탓이다. ‘한계기업 퇴출’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스스로 한계에 부딪힌 거다. 

2001년부터 반복적으로 일몰과 부활을 반복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도 매한가지였다. 일례로 지난 2016년 3월 금융위원회는 “기촉법을 활용해 한계기업을 과감히 퇴출할 것”이라고 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부실기업의 경쟁력을 복구해 회생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퇴출보다는 회생이 목표였던 거다. 

청산하려면 사회안전망부터 갖춰야

물론 시장에서 청산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건 아니다. 맹점은 큰 부실을 가진 대형 한계기업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거다. 미래 비전이 없는 쌍용차가 제대로 주인을 못 찾고 헤매고 있지만 청산되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김상봉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일자리 감소와 연쇄 도산 가능성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선 “사회안전망을 먼저 갖춰야 기업이 자연스럽게 도산하고 청산할 토대가 마련된다”는 지적이 숱하게 나오지만 정부는 여전히 사회안전망 마련에 미온적이다.

한계기업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견이 없다. 탄탄한 안전망 위에서 ‘창조적 파괴’가 제대로 작동하게끔 하는 거다. 지금 필요한 건 파괴와 안전망이다. 모순이지만 가장 효율적인 접근법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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