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원가 공개 찬성론 vs 반대론
과거 논쟁에서 지적 사항 보완되어 적용하기도
이번 논쟁에서도 의미 찾을 수 있나

전력, 하수도, 수도는 원가原價를 공개한다. 전기, 물 등이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활 필수재인 주택도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문제는 반대론은 반대론대로, 찬성론은 찬성론대로 주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최근 SH가 공공주택의 분양 원가를 공개하면서 이 논쟁에 또다시 불이 붙었다. 이번엔 양쪽의 주장이 한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까.

분양 원가 공개 확대를 놓고 민간에서는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분양 원가 공개 확대를 놓고 민간에서는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원가原價는 기업의 영업 비밀이다. 원가에 얼마만큼의 이익을 더해 시장에 내놓느냐가 가격경쟁력으로 이어져서다. 사업을 따내기 위한 경쟁을 펼칠 때, 최소한의 이익을 담보하는 ‘입찰가격’의 기준도 결국 원가다.

그래서 기업은 원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부 법이 기업이 공개할 수 없는 자료 중 하나로 ‘원가’를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란 말만 나오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현시점에서 분양 원가 공개 대상인 주택은 두 종류다. 공공주택과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민간주택이다. 이 조건을 충족한 아파트라면 ‘싫어도’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 더구나 ‘분양 원가를 공개하라’는 압박도 최근 더 커졌다. 

시작은 공기업이었다. 지난해 말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이전에 분양했던 아파트 단지의 원가를 공개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분양 원가 공개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물론 처음 있는 대립은 아니다. 참여정부 집권기인 2003~2007년 공공과 민간에선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의 당위성과 타당성을 둘러싼 논의를 광범위하게 진행했다. 하지만 20여년 전인 그때나 지금이나 건설ㆍ부동산 업계는 분양 원가 공개에 부정적이다. 

민간에서 반대하는 논리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사업장마다 원가ㆍ수익률의 차이가 클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나름 근거가 있다. 분양 원가 공개는 언급했듯 공공주택과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 민간 아파트에서만 이뤄진다.

나머지 민간 아파트의 분양 원가는 공개된 일부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분양 원가 공개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이 부분을 지적한다. 예컨대, 공공주택의 분양원가를 민간 아파트 전체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논리는 원가 공개와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란 명제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원가를 공개해 건설사의 수익을 가늠할 수 있더라도 분양가는 떨어지지 않을 거란 얘기다. 이 논리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원가를 공개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다.

중견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일부 사업장에서는 공사비 상승으로 오히려 이익이 남을지 의문”이라며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장에서 원가를 공개하면 과연 분양가가 내려가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원가 공개가 필요한 이유와 근거도 뚜렷하다. 전력ㆍ수도ㆍ하수도의 원가는 공기업을 통해 공개한다. 이들이 필수재이자 공공재여서다. 흥미롭게도 SH가 분양 원가를 공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기업이 만든 주택인 공공주택이 공공재인 건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민간주택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공공주택이든 민간주택이든 의식주衣食住 중 하나인 주택은 생활 필수재다. 없으면 빌려서라도 반드시 하나는 갖고 있어야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이론상 재료만 있다면 무한정 생산할 수 있는 식품이나 의류와 달리, 주택은 땅이란 한정된 재화 없이는 만들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 분양 원가 공개는 대통령 공약 중 하나였다. 사진은 분양 원가를 공개하는 김헌동 SH 사장.[사진=뉴시스]
이번 대선에서 분양 원가 공개는 대통령 공약 중 하나였다. 사진은 분양 원가를 공개하는 김헌동 SH 사장.[사진=뉴시스]

이런 배경에서 국회는 2021년 4월 민간 분양 아파트의 분양 원가 공개 항목을 늘리는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공동주택 분양가격의 산정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공공주택 분양가 공시항목은 ▲택지비 ▲토목ㆍ건축ㆍ기계설비ㆍ전기설비 공사 등 기타 공종 ▲일반관리비와 이윤 등 기타 공사비 ▲간접비(보상비ㆍ사업성 경비)와 기타 비용(기본형건축비 추가 비용) 등 62개다.

이 규칙상 민간주택은 62개 항목 중 7개 항목만 공개하면 되지만, 발의 개정안은 이를 공공주택과 동일한 수로 늘렸다. 이처럼 분양 원가 공개를 둘러싼 논쟁은 팽팽하다. 

사실 이 논쟁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어서 얼마나 더 다툴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쟁이 아무런 가치를 남기지 못한 건 아니다. 치열하게 논쟁했던 사안 중 일부는 최근 분양 원가를 공개하는 흐름에 반영되기도 했다.

SH가 토지비와 택지 조성비 등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분양 원가를 발표한 건 대표적 사례다. 과거 분양원가 논쟁에서 원가 공개를 반대한 전문가 중 일부는 “토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차라리 토지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 주장은 지난해 SH가 택지비를 공개하면서 20여년 만에 반영됐다. 반대 의견이 소모적 논쟁에만 쓰이진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엔 ‘민간 아파트도 분양 원가를 공개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당위론이 확산되고 있다. 6월 21일 제1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가 발표한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재건축ㆍ재개발 조합의 사업비를 보전해주겠다.”

이를테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대신 재건축ㆍ재개발 사업을 위해 투입된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하고, 총회 등 조합 운영 비용도 분양가로 회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거다. 이 때문인지 분양 원가 공개를 찬성하는 쪽에선 “정부 지원을 받은 민간사업자들이 원가 공개로 화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재건축ㆍ재개발 사업비를 정부가 보전한다는 건 법적으로 도울 필요가 없는 민간사업을 경기를 위해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민간 아파트 역시 분양 원가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분양 원가 공개는 ‘공공의 이익’과 직결되는 면이 많다. 정부가 민간의 이익을 보전해준다면, 민간 역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할 의무가 있다. 당장 결론이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 논쟁의 끝엔 ‘진일보한 결론’이 있었다. 2022년 다시 반복된 분양원가 논쟁은 또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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