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공공주택지구 여전히 토지 보상 단계
세입자 재정착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공공이 그린 청사진 이뤄질 수 있나

서울역 역세권 개발만이 공공이 참여하는 유일한 주택사업은 아니다. 다른 곳도 있다. 영등포 공공주택지구다. 2020년 1월 정부는 영등포 역세권에 있는 1만여㎡(약 3030평) 땅을 수용해 세입자들이 다시 정착할 수 있는 공공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독특한 사업인 데다 상생이란 의미도 갖고 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이 사업은 원칙마저 흔들리고 있다. 

영등포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1년 넘도록 보상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영등포 공공주택지구 내 골목길.[사진=더스쿠프 포토]
영등포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1년 넘도록 보상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영등포 공공주택지구 내 골목길.[사진=더스쿠프 포토]

부동산 사업의 속도는 느리다. 땅 소유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면 더 그렇다. 2020년 1월 정부가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등포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이하 영등포 쪽방촌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그해 정부는 “서울이나 수도권의 숨은 땅을 찾아내 공공주택으로 만들겠다”는 공공주택 사업의 플랜을 발표했는데, 그 첫번째 대상이 ‘영등포 쪽방촌’이었다. 

영등포 쪽방촌이 있는 지역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정부가 땅을 수용한 다음 공공주택을 짓겠다는 의도였다. 토지주의 반발은 용적률 상향조정, 규제 완화 등으로 상쇄하겠다는 구체적인 보상책도 제시했다.

그로부터 2년이 훌쩍 흐른 2022년, 영등포 쪽방촌의 상황은 어떨까. 2021년 6월 더스쿠프 취재팀은 이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당시는 정부가 토지 보상 절차를 안내하던 때였기 때문인지 무척 고요했다.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쪽방촌의 양끝 구역에 ‘지구 지정’을 알리는 안내판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을까. 1년 만인 지난 6월 영등포 쪽방촌을 다시 찾았다.

쪽방촌 입구. 고개를 드니 하늘 대신 고가 도로의 회색 바닥면이 보였다. 일반적으로 고가도로 옆에는 주택을 만들지 않는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시야가 막힌다는 단점이 있어서다. 그런데도 이 고가도로 바로 옆에 있는 1만㎡(약 3030평)의 땅엔 공동주택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고개를 내렸다. 쪽방촌 입구에 걸린 붉은 현수막이 보였다. “이주대책 없이 나갈 수 없다.” 물 빠진 흔적 때문에 꽤 오래전에 만들어진 현수막이라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현수막 옆으로는 1년 전 봤었던 국토부의 공공주택 지구 지정 안내판이 서 있었다. 

1년 전 서 있던 안내판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년 전 서 있던 안내판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안내판을 지나쳐 쪽방촌의 안쪽길로 들어갔다. 지붕 위에 얹혀 있는 전선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대개 공공주택을 짓든 재개발을 하든 하늘을 가르는 복잡한 전선은 개발과 함께 지중화地中化 작업(전선류를 땅에 묻거나 설치하는 일)이 이뤄지며 땅 밑으로 사라진다. 누전으로 인한 화재 위험이 사라지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 쪽방촌의 전선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더 안쪽으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고가도로 아래에서 영등포역 서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와야 하지만 그 길은 높게 세워진 공사장 펜스에 막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경인로를 따라 영등포역으로 거슬러 올라간 다음 쪽방촌 안쪽으로 들어갔다. 영등포역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가자 원래 있었던 파출소는 사라지고 공사장 펜스가 높게 서 있었다. 2025년 완공이 목표인 ‘신안산선 공사’ 때문이었다. 

공공주택 지구사업을 알리는 안내판도 공사장 펜스에 함께 붙어 있었다. 무려 1년이다. 하지만 영등포 쪽방촌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지붕 위 전선은 그대로였고, 안내판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걸 찾는다면 거추장스러운 ‘펜스’가 많아졌다는 것뿐이었다. 영등포 쪽방촌 사업이 1년째 비슷한 자리를 맴돌고 있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보상 문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정부는 토지 보상 업무를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확정된 보상안은 없다. 보상안이 늦어지면 임시이주대책, 철거ㆍ착공계획 등 그 뒤 일정까지 함께 더뎌진다.

정부와 소유주간 협의 과정도 2021년 12월이 가장 최근이었다. 5차 주민협의체 회의에서 토지 소유주들은 ▲주거 비율 확대 ▲기준용적률 800% 상향 ▲업무지구(현재는 일반상업지역)로 용도 변경 등을 요구했다. 토지 수용에 따른 대토代土 보상을 둘러싼 구체적인 요구도 있었다.[※참고: 대토는 토지를 수용당한 사람이 인근 허가구역 안에서 같은 종류의 토지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애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시,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사업주체들은 영등포역 주변 건물을 리모델링해 선先이주단지를 만들고 이주민들이 빠지고 남은 땅에 공공주택(영구임대주택 등)과 민간주택을 만들 계획이었다.

민간주택은 계획대로 진행하면서 공공주택을 함께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실제로 공공주택이 완공되면 돌봄시설을 넣어 선이주단지에 있는 세입자들을 다시 이주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었다. 애초 영등포 쪽방촌 사업이 관심을 받았던 것도 세입자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임시 주거지를 제공해 ‘상생’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언제 실현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LH는 “임시이주시설과 관련해 주민대책위원회에서 제안한 사항(사업지역 외부 이주 등)을 지속해서 검토하겠다”며 기존 계획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도 “일단 보상 관련 업무가 끝나야 다른 계획이 실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은 민간만큼 돈이 없다. 대신 권한이 있다. 공공에 기대는 사람들의 믿음은 거기에서 온다. 하지만 공공주택을 짓겠다면서 첫발을 뗀 영등포 쪽방촌 사업은 이런 믿음을 흔들고 있다. 법에 따라 하는 사업은 빠르게 추진됐어야 하지만, 프로젝트의 첫 단계인 ‘보상 절차’에서 진통을 겪고 있어서다.

예정대로 사업이 추진됐다면 신안산선 공사는 영등포 쪽방촌 사업과 함께 진행됐을 거다. 하지만 주민이 여전히 살고 있는 땅은 그대로였고 철도 공사만 먼저 시작됐다. 그 바람에 있던 길이 가로막혔다. 새 길은 언제쯤 열릴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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