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7월 15일. 기상이 너무 좋지 않았다. 풍랑이 전날보다 더 거셌고, 비바람까지 몰아쳤다. 그런데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돌격 앞으로’를 외쳤다. 곳곳에서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지만, 원균은 듣지 않았다. 남의 말을 듣지 않은 원균은 다음날 대패하고 만다. 불통이 부른 패전이었다. 늘 그렇듯 불통하는 리더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른다. 원균 함대의 이동 상황은 적의 척후병들에 의해 왜군 수뇌부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보고를 받은 원정군 대장 소조천수추와 부전수가는 동시에 무릎을 ‘탁’치며 기뻐했다.
인류세라는 것이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지질이나 생태계에 미친 시대를 이야기한다. 인류세의 지질은 인류의 흔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핵실험 이후의 방사능, 플라스틱, 닭뼈가 땅에 묻히면서 생겼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인류가 생겨난 이래의 흔적이 땅에 남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세다. 보통 인류세는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를 상징한다. 하지만 나는 인류세를 생각할 때마다 거대하고 오래된 역사책의 측면을 떠올린다.누구에게나 지층이 있다. 그것은 경험이기도 하고 사물이기도 하다. 레코드가 테이프가 되고 MP3 기기가 스마트폰이 됐듯
중저가 생활용품 전문점 ‘다이소(아성다이소)’가 지난해 매출액 3조원을 달성했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1000~2000원 제품을 판매하는 다이소로 소비자가 몰린 덕분이다. 여기에 다이소가 ‘디즈니’ ‘산리오’ 등 캐릭터 상품을 확대한 게 다이소의 또다른 경쟁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다이소에서 ‘미키마우스’ 내복까지 파네요?” 중저가 생활용품 전문점 ‘다이소(아성다이소)’가 지난 1월 출시한 아동용 의류상품이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디즈니 라이선스 제품인데 가격이 5000원대(상·하의 별도)여서인
1594년 10월 조선 조정이 거제도 일대에서 진행한 ‘왜적 소탕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조선 최초의 수륙합동작전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지도자들의 결함에 있었다. 총사령관을 맡은 윤두수, 현장 사령관 권율은 전쟁터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주둔하는 우愚를 범했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을 입에 달기 시작한 정치꾼 중에서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몇이나 될까.좌의정 윤두수가 선조를 움직이게 한 배경에는 원균이 있었다. 원균은 자신의 상관인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건너뛰고 바로 사
전통시장은 민심과 바닥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최적의 척도다. 서민층이 주로 찾고, 영세상인도 꽤나 많아서다. 정치인들이 철만 되면 시장을 찾아 떡볶이를 먹는 등 이상한 쇼잉을 해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설 명절을 앞둔 시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모처럼 찾아온 대목에 숨죽였던 활력이 움트고 있을까. 더스쿠프 취재팀이 지난 1월 30일 영등포시장을 찾아가봤다. 1956년 문을 연 서울 서남권 최대 규모의 시장. 영등포전통시장(이하 영등포시장)이다. 한때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물건을 사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영등포시장은 예전
# “팬데믹 때보다 더 힘듭니다.” 자영업자의 아우성은 종종 볼멘소리 취급을 받는다. “가게 문도 못 열고 테이블 치우던 때보다 더 힘들 수 있나”란 막연한 추측 때문이다. “너희들은 보상금도 받았잖아”란 부러움과 박탈감에서 기인한 비아냥일 수도 있다. # 하지만 2024년 자영업자는 정말 고통스럽다. 물가는 치솟았는데, 소비심리까지 꽁꽁 얼어붙어서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 금리에 돈줄이 막힌 사장님들도 숱하다. 이젠 팬데믹을 그럭저럭 버텨오던 자영업자마저 ‘벼랑 끝’에 몰렸다는 통계까지 나오고 있다. # 실제로 자영업자의 대출액
전쟁터에서 분투를 거듭하던 이순신을 괴롭히는 건 왜적만이 아니었다. 조선 조정에서 만들어낸 ‘유언비어’도 순신을 벼랑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였다. “이순신이 연해의 해왕海王 노릇을 한다.” 그 중심엔 순신에게 질투를 느낀 서인이란 일종의 카르텔과 귀가 얇은 왕이 있었다.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금 정치판이나 그때나 다를 게 없었던 모양이다.한산도 진중에 전염병이 유행해 순신까지도 병으로 신음하고 있던 1594년 4월 9일. 진중에서 무과 별시를 시행하고 합격자를 알리는 방을 붙이고 있는데, 비가 엄청
1594년 봄, 이순신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명나라에서 날아온 패문牌文(통지문)이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적을 치지 마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천하의 이순신도 어쩔 수 없었다. 명나라에 의존하는 외교정책 때문이었다. 어쩔 땐 미국, 또 어쩔 땐 중국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때와 뭐가 다를까. 힘이 없으니 ‘전략적 관계’를 택해야 한다는 우리의 오랜 외교 전술은 옳은 걸까.이순신은 1594년 2월 13일 선조의 출전 명령서를 받고 경남 창원의 저도에서 소비포 만호 이영남, 사량 만호 이여념,
영화관 업계가 ‘아이맥스’ ‘4D’ 등 특별관을 확대하고 있다. OTT에 밀려 영화관을 찾는 소비자가 가파르게 줄자 프리미엄 전략을 꾀하는 셈이다. 그 선봉엔 업계 1위 CGV가 있다. CGV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특별관을 늘리고 있다. 문제는 CGV의 프리미엄화가 영화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만 미치진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5월 개봉한 ‘범죄도시3’은 천만고지를 넘어섰다. 11월 개봉한 ‘서울의 봄’ 역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쯤 되면 영화관도 대박이 난 셈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곳을 훈훈하게 덮어줄 봄은 아직도 저
1593년 6월 진주성이 함락된 뒤 이순신은 전황의 변화에 대비해야 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7월 15일 한산도에 지휘본부를 설치했다.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본 결정이었다. 이처럼 상황이 바뀌면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지만, 전제가 있다. 확실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총선을 앞두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신당을 준비한다. 그들은 과연 누굴 위해 창당하려는 걸까.왜군은 무려 8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많은 공격을 펼쳤으나 진주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9일째 되던 날, 왜군 장수 후등기차後藤基次(고토 모토쓰구)가 계책을
1593년 4월 9일. 명나라 장사꾼 심유경은 왜군의 수장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심유경은 “한양에서 물러간다면, 조선의 남삼도를 풍신수길의 영토로 할양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조선 조정은 애먼 결정만 내리고 있었다. 밀실 합의의 폐단을 극단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대부분 신당 창당 건이고 대부분 ‘밀실’에서 진행된다. 그들은 누굴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가. 왜군은 갈수록 불리해졌다. 우선 군량미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이 심각했다. 병력도 왜란 초기에 비해 절반이나 줄었다.
# 때만 되면 시장을 찾는다. 어김없이 떡볶이를 먹고, 어묵 국물로 쇼잉의 종지부를 찍는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6일 대기업 총수들과 부산 깡통시장을 찾아 ‘떡볶이 먹방’을 시연했다.# 그런데, 높으신 나리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떡볶이는 이제 ‘서민음식’이 아니다. 1인분 값이 평균 4000~5000원에 이르고, 순대라도 곁들이면 1만원에 육박한다. 과연 그들은 ‘떡볶이의 애환’을 알고 먹방을 펼쳤던 걸까. 그들이 택한 음식은 역시나 떡볶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 깡통시장을 찾았다. 앞서 오전 부
# “서비스 개선을 위해 이 대화는 녹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요즘 기업 고객센터나 공공기관에 전화하면 으레 이런 멘트가 날아온다. 그런데 해당 기업과 기관은 녹음파일을 별문제 없이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을까. # 지난 2월 금융감독원은 한 온라인 보험서비스 기업이 보험상담 녹음파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2014년과 2015년 대형 생보사에서 녹음파일이 유출되는 사고가 터졌는데도 여전히 관리시스템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거다. #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숱한 기업과 기관이 녹음 행위를 강화하고 있다.
날씨가 좀처럼 받쳐주지 않았다. 부산포로 향하던 조선 연합함대는 거친 날씨 탓에 번번이 바다에서 발이 묶였다. 그럼에도 선조는 ‘공격하라’는 지령만 내리고 있었다. 자고로 지도자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장에 걸맞지 않은 지시나 명령만 주야장천 하달해 지도자가 되레 ‘악당(빌런)’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의 지도자들은 어떤가. 견내량에 집결한 조선 수군은 2월 8일 칠천도로 이동해 머물고 9일 새벽에 부산포를 목적지로 삼아 출발하려 했다. 이때 폭우가 내리자 이순신은 칠천량과 가덕도에 진을
# 도쿄 오타구大田区와 서울 문래동엔 똑같이 공장이 있다. 그런데 두 제조단지의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오타구의 마을공장은 때때로 박람회나 행사를 연다. 우수한 성과를 거둔 공장엔 표창장도 준다. 관광객이 눈여겨볼 만한 제품도 직접 만든다. 직접 홍보하기 위해서다.# 반면 문래동의 작은 공장은 조만간 새 터전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제조업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작은 공장의 ‘성과’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런 무관심은 결국 낙후한 지역을 재생해 도시 미관을 정비하는 ‘개발론’으로 이어진다.# 더스쿠프와 영상 플랫
# 일본 도쿄 오타구大田区엔 활력 넘치는 마을공장(町工木場ㆍ마치코바)이 많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데도 ‘쇠락한 시설’이란 눈총을 받지 않고 밀집한 도시 인프라와 한데 어울려 살아간다. 문래동 작은 공장이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놓여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오타구 마치코바도 한땐 도심 외곽으로 밀려날 위기에 몰렸었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은 마을 생태계의 일원이자 친구로 인정 받고 있다. 더스쿠프와 영상 플랫폼 Video B가 오타구의 변화를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의 비밀 네번째 영상, ‘마
# 문래동 작은 공장 1279개의 새 터전이 조만간 공개된다. 이들이 떠난 자리엔 4차 산업과 밀접한 산업단지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낡은 공장을 허물고 새로운 첨단 산업이 들어서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문래동의 공장들은 작고 낡았지만, 그 가치까진 작진 않아서다.# 문래동 작은 공장은 어떤 부품이든 뚝딱 만들어낸다. 그래서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이곳 작은 공장에 제품을 의뢰하는 경우가 숱하다. 촘촘히 엮인 그물망처럼 작은 공장들이 우리나라 제조업 생태계의 밑단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대로 문래동
# 도시에도 공장은 있다. 그런데 존재감은 사실상 없다.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그 낡은 공간에서 뭘 만드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다. 이 때문인지 도심 속 작은 공장들은 흉물이란 오해를 사거나 도시개발론에 밀려 흩어지기 일쑤다. # 더스쿠프와 영상 플랫폼 Video B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의 가치’를 영상으로 만들었다. 인트로 1편 ‘스러지는 작은 공장’과 2편 ‘흉물이 된 작은 공장’을 동시에 공개한다.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은 작은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다. 청계천과 을지로에서 밀려난 공장 중 상당수가 이곳에
# 도시재생과 함께 산업적 유산을 보존하자는 이야기는 수없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산업적 유산 중 하나인 산업무형자산은 갈 곳이 없다. 제조업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문래동 작은 공장이 한껏 치솟은 임대료와 개발바람에 휘청이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 물론 개발론자들은 문래동 작은 공장을 도심 외곽으로 밀어내면 ‘4차 산업거점’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게 작은 공장을 보존하는 가치보다 크다는 분석도 함께 내놓는다. # 하지만 ‘4차 산업’은 작은 공장 없이 돌아갈 수 없다. 문래동 작은 공장을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은
도쿄 오타구는 준공업지역이다. 영등포구 문래동과 마찬가지다. 1980년대 오타구도 마을공장을 바닷가로 이전시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몇몇 마을공장은 그 자리에 남았다. 정책에 반기를 들었지만 오타구 마을공장은 그곳 사람들과 공존하면서 ‘아름다운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더스쿠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오타구 르포 두번째 편이다. 일본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서 10분이면 도쿄 오타구大田에 있는 게이큐본선 가마타역 앞에 닿는다. 이 역 앞에 있는 오타산업프라자(Ota City Industrial·PiO)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