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감대 형성된 반값등록금
역대 대통령 반값등록금 공약 내놔
공약 지킨 대통령 한명도 없어
사회적 공감대 깨뜨리는 尹 정부

윤석열 정부가 ‘등록금 인상론’에 불씨를 붙이고 있다. 그동안 사립대들이 재정 악화를 이유로 등록금 규제 완화를 주장했는데, 최근 교육부가 이 주장에 호응하면서다. 문제는 지난 15년간 대학생들은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면서 되레 등록금 인하를 주장했다는 점이다. 사회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이같은 사회적 합의를 밀어놓은 채 ‘등록금 인상론’을 띄우는 윤 정부의 행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학생들은 반값등록금을 외쳤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사진=뉴시스]
대학생들은 반값등록금을 외쳤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사진=뉴시스]

대학은 영리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다. 교육 외에 다른 부수적인 사업(부속병원 등)으로 수익을 얻을 수는 있지만 제약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재정은 항상 빠듯하고, 교원이나 직원들의 급여를 인상하려 해도 고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빠듯한 재정을 받쳐주는 건 다름 아닌 학생들의 등록금이다. 

사립대가 전체 재정에서 등록금에 의존하는 비율은 54.9%(2020년 기준)에 달한다. 쉽게 말해, 등록금이 오르지 않으면 교직원의 급여 인상이나 학생들을 위한 재투자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등록금을 인상하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이다. 대학등록금의 수준이 지나치게 비싸서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4년제 일반대학과 교육대학 194곳의 학생 1인당 연간 등록금 평균은 676만3100원이다. 사립대는 평균 752만3700원, 국ㆍ공립대는 419만5700원이다. 

이게 얼마나 비싼 걸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하는 사립대학생의 예를 들어보자. 원룸 월세 50만원, 밥값 14만원(1끼 7000원×20일), 교통비(지하철 요금 1250원×20일)와 통신비 6만원 등 줄이고 또 줄여도 월 70만원이 족히 든다. 주말과 평일 아침ㆍ저녁 밥값까지 계산하면 한달 최소 비용은 1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여기에 등록금까지 감당하려면 월 62만7000원이 필요하다. 

학기 중 1만원 이상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주말도 없이 매일 6시간씩 채워야 마련할 수 있는 액수다. ‘부모 찬스’가 없는 학생이라면 여가활동은커녕 잠자고 공부할 시간도 빼기 힘든 셈이다. 대학생들이 줄기차게 ‘반값등록금’을 요구하고 있는 게 과한 주장이 아니라는 거다.[※참고: 연평균 대학등록금 액수는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윤석열 정부는 대학등록금 규제를 완화해 사실상 등록금을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윤석열 정부는 대학등록금 규제를 완화해 사실상 등록금을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런 대학생의 현실은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로 이어졌다. 2007년 이후 역대 대통령 후보들이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이 공약이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다는 점인데, 이는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똑같았다. ‘정권의 거짓말’을 하나씩 살펴보자. 

# 2007년 3월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당사 앞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반값등록금 한나라당이 반드시 실현하겠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후보(이하 당시 직함)가 대선주자로 뽑힌 후 선거대책위원회에는 ‘등록금 절반 인하 위원회’가 설치됐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이후 “반값등록금을 공약집에 넣은 적 없다”고 발뺌했다. 대신 대학등록금 부담을 덜어주겠다면서 1조5000억원의 장학금 재원을 투입하는 등의 대안을 내놨다. 하지만 고지서상 등록금은 고작 5~8% 내리는 데 그쳤다. 

# 전前 정부의 실책을 만회하려는 듯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반값등록금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2년 11월 그는 공약집에 좀 더 구체적인 반값등록금 구상을 적어넣었다. “소득하위 80%까지 ‘소득연계 맞춤형 국가장학금’을 지원해 대학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낮추고, 2014년 대학 등록금의 실질적 반값을 완성하겠다.” 

지키지 못한 ‘반값’ 약속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국가장학금 제도를 만들었고, 공약을 지켰다면서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정부의 자찬과는 달리 등록금의 절반 이상을 지원받는 학생은 생각보다 적었다. 사립대의 경우, 소득 기준 3분위(8분위 중)까지만 실질적인 반값등록금의 혜택을 봤는데, 이에 따라 실질적인 반값 혜택을 받은 학생은 2016년 기준 전체의 24% 수준에 불과했다. 

# 문재인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갔다. “청년들의 아버지가 되겠다. 입학금, 등록금, 주거비, 생활비까지 감당하는 ‘캠퍼스 푸어’가 없도록 하겠다. 입학금은 없애고, 등록금은 진짜 반값으로 만들겠다.” 2017년 5월 당시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국가장학금 재원을 늘리고, 소득분위별 지원 등급을 없애 상아탑에 입성한 학생들을 모두 지원하겠다는 거였다. 

결과는 달랐다. 입학금을 폐지하고,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는 비율은 늘렸지만, ‘전체 학생의 반값등록금 실현’이란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국가장학금은 지금도 소득분위별로 차등 지원하고 있고, 등록금의 절반 이상을 지원받는 학생은 전체의 32%(2021년 기준) 수준에 불과하다. 

권력자들이 끝내 지키지 않은 반값등록금 얘기가 나온 건 15년 전이다.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장학금 제도가 도입된 지도 1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반값등록금은 여전히 숙원으로 남아있고, 국민들은 그것의 필요성을 갈구한다. 

지난해 7월 한국사회이론연구소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83.9%가 대학등록금이 ‘비싸다’는 의견을 냈고, 89.3%가 ‘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들 중 83.0%는 ‘반값등록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값등록금을 향한 사회적 요구는 반대로 흘러갈 듯하다. 윤석열 정부가 ‘등록금 인상’을 암시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6월 23일 대구에서 열린 대학 총장 세미나에 참석해 “대학등록금 규제 완화 필요성에 관한 교육 당국과 재정 당국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사실상 동결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음을 시사한 말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등록금을 올리진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 앞에 ‘당장은’이란 전제를 뒀다. 반값등록금이 필요하다는 지금까지의 방향성과 사회적 공감대를 틀어버린 말이다. 

그렇다고 ‘등록금 인상론’에 설득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교육부가 등록금 인상 가능성을 내비친 건 “대학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대학 경영자들의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학 재정 상황 제대로 봐야…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사학재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사립대들의 재정상황은 10년 전인 2012년보다 개선됐다. 이 기간 4년제 사립대의 평균 부채비율은 17.6%에서 2.7%로 14.9%포인트나 줄었고, 기본금(수익금을 포함한 기본 자산)은 31조9422억원에서 32조6902억원으로 2.3% 늘었다.

대학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통계가 정확한 현실을 반영할 순 없지만, ‘재정이 어렵다’는 대학의 주장을 점검하는 기초자료로는 충분해 보인다. 

이미현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가 교육까지 시장 논리에 맡기려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면서 “대학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등록금을 올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건 현재의 민심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 정부의 등록금 정책은 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구축된 사회적 공감대가 윤 대통령에겐 ‘군중의 허튼 의견’에 불과한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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