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서비스 종료한 인터넷 익스플로러
국내선 불친절한 기술에도 의무적 사용
미국선 90년대 PC 운영체제 독점 혐의
최근 크롬·사파리와 경쟁서 밀리며 퇴장

# 많은 인터넷 서비스가 태어나고, 경쟁하고, 그러다가 사라지곤 한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서비스, 프로그램, 커뮤니티일지라도 항상 평탄할 순 없다. 더구나 인터넷 서비스는 탄생과 종료에 드는 비용이 장치산업에 비해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어서 앞으로도 많은 서비스가 우리에게 추억만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웹 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탄생한 지 27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웹 브라우저라는 서비스의 특성, MS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으로 우리에겐 애증이 교차하는 서비스다. 더스쿠프가 그 27년의 기록을 정리해봤다.

공인인증서 제도가 폐지되기 전 익스플로러는 불편함의 상징이었다.[사진=뉴시스]
공인인증서 제도가 폐지되기 전 익스플로러는 불편함의 상징이었다.[사진=뉴시스]

익스플로러의 서비스 종료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오래된 시였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44년 미국 망명생활 중에 발표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하나의 서비스가 태어나면 또 다른 서비스가 종료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난 6월 마지막까지 생존해 있던 PC통신업체 ‘유니텔’도 30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유니텔은 1996년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후 웹 포털사이트로 변경해 지금까지 서비스되고 있었다. 1997년 영화 ‘접속’에서 주인공들이 대화하는 PC통신 채팅방으로 등장할 만큼 한 시대를 대표하기도 했다. 유니텔은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가 함께 다녔던 회사이기도 하다. 

올해 9월에는 다음 블로그가 운영을 시작한 지 17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한다. 다음을 인수한 카카오가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로 나뉘어 운영하던 블로그 플랫폼을 티스토리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터넷 기업들이 대단한 서비스를 탄생시키고, 경쟁에 나서고, 또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서비스는 쉽게 보내지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웹 브라우저 서비스인 익스플로러가 그렇다.

익스플로러는 태어난 지 27년 만인 지난 6월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이는 MS가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는 이들의 보안이나 편의를 위해 더 이상 인력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MS가 익스플로러를 출시한 건 1995년이다. MS는 윈도95 운영체제(OS)에 추가 패키지로 익스플로러를 포함해 발매했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올해 6월 15일, MS는 익스플로러 11버전 지원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윈도를 설치한 PC에서 익스플로러는 비활성화돼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익스플로러를 실행할 수는 있다. 익스플로러를 실행하면 자동으로 MS의 다른 웹 브라우저인 ‘엣지’가 실행된다. MS는 익스플로러에 익숙한 사용자들을 위해서 엣지에서 익스플로러 모드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 모드는 2029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MS가 익스플로러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공지한 이유는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다. MS가 익스플로러의 업데이트를 지원하지 않고, 신규 기능도 추가하지 않으면 향후 익스플로러에서 심각한 에러나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것은 앞으로 문제가 발생해도 회사에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는 얘기다.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사랑만 받아왔던 서비스라면 오히려 쉽게 보낼 수 있다. 분명히 강력한 대안이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고, 우리는 늘 그렇듯 그 새로운 서비스에 환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익스플로러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사랑만 받아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의 원인이 익스플로러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익스플로러와 우리의 관계는 아마도 애증일 것이다. 편의성의 문제가 아닌 추억의 문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익스플로러와의 이별을 굳이 반대하고 나서진 않는다. 다만,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익스플로러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생각난 시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던 것처럼 국내 사용자들도 대부분 익스플로러에 애증과 함께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사라지는 익스플로러를 둘러싼 추억이라기보단 그 시절 자신에 대한 추억이다. 

과거에 고생했던 일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공공기관, 은행 사이트에 익스플로러용 보안기술을 설치하느라 분통을 터뜨렸던 사람들은 익스플로러의 퇴장이 반갑기는 하지만 뭔가 아쉽기도 한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6월 15일 익스플로러 묘비 사진이 등장했다. 합성을 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묘비를 만들었다. 이 게시글 작성자는 경주의 한 카페 건물 옥상에 익스플로러 묘비를 설치했다.

웹 브라우저의 대명사였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2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웹 브라우저의 대명사였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2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그런데 우리는 왜 익스플로러를 이렇게 의무적으로 써야 했을까. 답은 질문 속에 있다. 정말 법적 의무였기 때문이다. 한국 특유의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는 인터넷 전자서명ㆍ보안기술이다. 공공기관ㆍ은행에서 뭔가를 하려면 필수적으로 전자서명제도를 이용해야 할 때가 많아 원성이 높았다. 

공인인증서 제도는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정부 주도의 보안기술이다. 액티브X는 MS가 개발한 기술인데, 익스플로러에서 특정 응용프로그램과 인터넷 웹을 연동하기 위해서 쓰이는 ‘플러그인’이다. 

플러그인은 제3자가 만든 특정 소프트웨어를 웹에서 실행해주는 기술을 뜻한다. 공인인증서는 바로 이 액티브X 기술을 기반으로 운용됐고, 지금도 범용적으로 쓰이고 있다. 문제는 이 기술들이 굉장히 불친절하고, 설치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의무적으로 써야 했던 전자서명제도는 2020년에야 폐지됐다. 전자서명 시장을 독점했던 공인인증서 제도는 사라졌다. 이제 익스플로러의 퇴장과 함께 불친절했던 과거의 전자서명제도도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지만 미국에선 익스플로러가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큰 문제가 됐다. 익스플로러는 지배적인 운영체제인 윈도95에 패키지 형태로 넣어 판매했는데, MS는 이 문제로 회사를 분할할 뻔한 위기에 처했다. MS 입장에서도 익스플로러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1990년대 후반은 웹 브라우저 시장을 놓고 경쟁이 첨예했다. MS가 자사의 지배적인 운영체제인 윈도에 익스플로러를 끼워팔기 시작한 것도 경쟁사인 넷스케이프와의 격차를 계속 벌려나가기 위해서였다.

미 법무부는 1998년 MS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MS가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경쟁 제품을 차단하기 위해서 윈도의 압도적인 지배력을 악용했다는 혐의였다.법무부가 노린 것은 사실 윈도였다. 1990년 미 연방무역위원회(FTC)는 PC 운영체제 시장 독점 혐의로 MS 조사에 착수했다. 이어 1994년 4월 넷스케이프가 웹 브라우저 내비게이터를 개발해 MS와 경쟁을 시작했다. 

같은해 7월 미 법무부는 MS와 합의서를 체결한다. 그 내용은 MS가 PC 제조사들에게 윈도 운영체제를 설치한 PC를 판매할 때 추가로 MS의 다른 소프트웨어 설치를 요구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이었다. 이 합의는 1995년 지방법원의 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에 의해 승인된다. 

1995년 MS는 익스플로러를 윈도에 끼워팔기로 출시하면서 이 합의를 어겼다. 1998년 법무부는 주정부들과 함께 MS의 독점금지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1998년 10월 MS의 독점금지법 위반소송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0년 잭슨 판사가 이끄는 1심 법원은 MS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두 개의 회사로 분할할 것을 명령했다.

항소에 나선 MS는 200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 법무부와 합의를 통해서 간신히 회사 분할을 피할 수 있었다. 2심 법원은 2002년 MS에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조치를 명령하면서 소송을 종결했다.

MS는 회사가 쪼개질 뻔한 위기를 겪었지만 새로운 행정부 아래서 오히려 이득을 봤다. 2심 법원은 MS에 익스플로러 판매를 금지하거나 다른 페널티를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후 20년간 MS는 익스플로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서비스를 종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익스플로러는 보안에 취약하고, 경쟁 브라우저인 구글 크롬과의 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20년 하반기 악성코드 은닉 사이트 탐지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국내에서 사이버 공격에 쓰인 소프트웨어 취약점은 모두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비롯됐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2014년 익스플로러의 보안 결함 때문에 해커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MS가) 보안 결함을 업데이트로 해결할 때까지 다른 웹 브라우저를 쓰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익스플로러는 구글이 제공하는 웹 브라우저 크롬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렸다. 모바일 시장에서는 삼성인터넷(26.18%), 애플 사파리(23.1%) 2강 체제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트래픽 분석사이트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크롬이 점유율 54.25%로 1위를 차지했다. 애플의 사파리가 12.9%로 2위, 삼성인터넷이 12.88%로 3위였다. MS ‘엣지’는 7.5%로 5위,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1.43%로 6위였다.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인 ‘클리앙’ 이용자가 만든 묘비에 적힌 추모사는 익스플로러의 지난 27년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했다. “He was a good tool to download other browsers(그는 다른 웹 브라우저를 내려받기 좋은 도구였다).” 유용함과 애증이 교차된 익스플로러의 시대는 그렇게 마감됐다.

한정연 더스쿠프 칼럼니스트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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