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와 맞바꾼 보복성 인사조치
신희영 회장이 직접 인사 거래 
직원 행동 사찰 논란 불거져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사무총장 K씨가 사임하는 조건으로 2명의 직원을 사실상 강등조치했다. 그 과정에 정당한 절차는 없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사무총장 K씨가 사임하는 조건으로 2명의 직원을 사실상 강등조치했다. 그 과정에 정당한 절차는 없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조직의 고위 관계자가 내부규정에도 없는 호텔 숙박비를 쌈짓돈처럼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조직은 이를 감추기 위해 결재서류를 거짓으로 작성했다. 심지어 시행규칙을 졸속으로 신설해 호텔비 결제를 정당화했을 뿐만 아니라 값비싼 사택舍宅까지 제공했다. 이 모든 게 단 한사람만을 위한 셀프 특혜였다.” 지난해 3월 26일 더스쿠프가 단독보도한 기사의 골자다.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K씨를 둘러싼 특혜 논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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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가 보도되자 대한적십자사 내부에선 ‘대책회의’가 열렸다. 사무총장의 거취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쟁점은 사퇴하느냐 버티느냐였다. 이 대책회의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부서장 5명이 참석했다.

[※참고: 이 이야기는 사무총장이 대한적십자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소송’의 1심 판결문에 적시됐다. 사무총장은 예상대로 패소했는데, 그 판결문엔 뜻밖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 조직의 구성원이 불ㆍ편법을 저질렀으면 절차에 따라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징계를 내리면 된다. 세상은 이를 ‘공정한 절차’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부서장 5명은 ‘공정’을 논하지 않았다. 규정이 아닌 대한적십자사 회장(신희영)의 뜻을 물어 결정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사무총장은 이에 따랐다.[※참고: 대한적십자사 수장의 명칭은 2019년 총재에서 회장으로 변경됐다. 대한적십자사의 명예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 대책회의 도중 사무총장은 대한적십자사 회장을 직접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회장의 의견을 존중해 사직하겠다. 하지만 2명의 기관장은 반드시 인사조치(강등)하고 가겠다.” 지명된 2명은 이번 기사가 보도되는 과정에서 사무총장의 눈밖에 난 이들이었다.

그중 1명인 A씨는 “더스쿠프 기사가 보도되는 걸 막아달라”는 사무총장의 도움을 거절한 이였다. 또다른 1명인 B씨는 “더스쿠프에서 공개한 기관장 사택 자료를 내부통신망에서 열람했다”는 이유로 내부고발자 의혹을 받았다. 사무총장이 2명의 인사조치를 ‘사퇴조건’으로 내건 셈이었다. 이를테면 괘씸죄를 묻겠다면서 ‘사직서’를 거래했던 거다. 

# 이 황당한 요구는 실제로 이뤄졌다. A씨는 ○○지사 사무처장(관리사 1급)에서 ○○센터 총무부장(관리사 2급)으로, B씨는 ○○기획단장(관리사 1급)에서 ○○의료재활센터병원 관리부장(관리사 2~3급)으로 전보됐다. 1급 관리자가 2~3급 자리로 이동한 것으로 사실상 부당전보였다.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자 대한적십자사 내부도 술렁였다.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는 “4급 팀장 보직을 떼는 것도 쉽지 않은데, 둘의 인사는 말도 안 된다는 얘기가 당시 내부에서 나돌았다”고 털어놨다.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사직서 거래 파문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시절 서울적십자병원을 찾은 안철수 의원과 신희영 회장(왼쪽)의 모습. [사진=뉴시스]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사직서 거래 파문에 개입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시절 서울적십자병원을 찾은 안철수 의원과 신희영 회장(왼쪽)의 모습. [사진=뉴시스]

# 문제는 ‘사직서 거래’가 성사됐다는 것만이 아니다. 2명은 사실상 강등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했다. 대한적십자사가 이의를 제기할 만한 그 어떤 절차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2명 중 1명에게 “조금만 참으면 보직을 다시 회복시켜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 논란은 더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권한도 없이 직원들의 행동을 사찰했다”는 뒷말이 내부에서 커지고 있다. 언급했듯 ‘사직서 거래’의 대상이었던 B씨는 ‘사택 규정’을 봤다는 이유로 괘씸죄를 뒤집어썼는데, 이는 보안문서가 아니었다.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B씨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서류를 봤을 뿐이다. 그런데 대한적십자사 측은 이를 근거로 인사조치를 내렸다. 직원들을 은밀하게 사찰하지 않았다면 B씨가 서류를 봤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직원의 로그인 기록을 불법사찰했다는 뜻 아닌가.” 

# 공정 절차가 무너진 대한적십자사는 국민의 피와 적십자회비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이 공공기관,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걸까. 더스쿠프가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사퇴 논란과 그 뒤에 숨은 황당한 사직서 거래 사건을 취재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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