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건축물과 민관 거버넌스의 힘

지난 8월 큰비가 내렸다. 이런 시기엔 낡은 건축물이나 금이 간 골목의 옹벽이 애먼 사람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 물론 공공의 감시 시스템이 구축됐지만, 그 감시체계가 상시 가동하지 않아서다. 더구나 문제가 발견돼도 건축물이나 시설물이 민간의 소유라면 공공 맘대로 보수ㆍ보강 절차를 밀어붙일 수 없다. 이런 안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서울시는 민관 거버넌스와 시민 네트워크를 활용해 그 빈틈을 메우고 있다. 

더안전시민모임, 안전보안관 등 시민과 함께하는 안전관리제도는 매년 1000여건의 재해 취약지점을 찾아내고 있다. 사진6은 안전 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충정아파트.
더안전시민모임, 안전보안관 등 시민과 함께하는 안전관리제도는 매년 1000여건의 재해 취약지점을 찾아내고 있다. 사진6은 안전 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충정아파트.

8월 집중호우에 건물이 침수되고 도로는 잠겼다. 이런 물 피해도 문제지만 갑작스러운 호우는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 평소 약했던 부분이 물의 무게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런 위험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는 있을까. 대표적인 제도는 건물 안전점검이다. 1종 시설물(500m 이상 고속철도 교량, 21층 이상 건축물 등)과 2종 시설물(100m 이상 도로, 16층 이상 건축물 등)은 안전점검을 받는다. 3종 시설물(준공 후 10년이 지난 교량터널, 준공 후 15년이 흐른 15층 이하 아파트, 연립주택 등)은 ‘3종 시설물’ 점검을 받는다.

그 결과에 따라 시설물은 A(우수), B(양호), C(보통), D(미흡), E(불량) 등급으로 나뉜다. 이중 DE등급은 기둥벽 등 주요부재에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하거나 심각한 결함이 있어서 바로 사용을 중지해야 하는 수준이다. 8월 8일부터 9일까지 호우가 쏟아진 때도 서울시는 9일 DE등급 시설물에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살펴볼 것(예찰)을 주문했다. 특별 관리 대상이라는 거다.

관리뿐만이 아니다. 이처럼 예찰이 필요한 건물이나 시설물을 공공이 보유한 경우엔 보수보강 조치에 들어가거나 철거 후 재건축을 진행한다. 2019년 콘크리트 균열 사고가 발생했던 서소문고가가 대표적이다.

당시 보강공사를 실시했던 서울시는 올해 초 이 고가가 D등급을 받자 철거 후 다시 짓기로 했다. 안전취약건물 보수 예산도 매년 책정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2~2018년 10억원(이하 연평균), 2019년~2021년 20억원, 2022년엔 30억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공공이 손댈 수 있는 영역은 한정적이다. 민간 재산에 행정력을 넣을 수 있는 정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E등급 건물 중 하나인 강남 대종빌딩은 2018년 구조 문제로 안전취약건물로 지정됐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지만 대종빌딩은 여전히 사용금지 조치만 내려진 상태로 테헤란로 복판에 서 있다. 대종빌딩의 경우, 민간 소유주들이 여러명이어서 재건축하려면 소유주간 합의가 필요하다. 

가장 위험한 E등급 건축물이라고 해도 공공이 마음대로 철거하거나 보수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E등급 건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22년 1월 기준 서울의 E등급 건물은 모두 13개소, 26개 동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간이 소유한 E등급 건물은 주소지를 밝히는 것도 조심스럽다”며 E등급 건물의 수를 제외하고 주소지 등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 민간 소유주의 결단이 있어야 보수보강이나 재건축이 가능한 E등급 건물은 ‘공공의 사각지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지만은 않다. 서울시는 2016년 DE급 건축물을 상시 감시할 수 없다는 단점을 민관 거버넌스(다양한 집단이 국가 정책에 참여해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체계Governance)로 보완했다. ‘더안전시민모임’이다. 이 모임의 운영절차는 다음과 같다. 일단 자치구별로 DE등급 건축물과 시설물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을 ‘살피미’로 임명한다. 여기에 기술사건축사 등 전문가와 해당 지역의 공무원이 함께한다. 

일상에서 시설물의 위험을 발견하면 전문가의 진단 후 공무원에게 알리는 체제를 갖춘 셈이다. 이런 ‘더안전시민모임’이 민관 거버넌스 형태라면, 2015년에 시작한 ‘안전보안관(옛 안전감시단)’은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이용한 안전관리제도다. 현재 1200여명이 활동 중이다. 

주목할 점은 이 민관 또는 시민조직의 성과가 뚜렷하다는 거다. ‘더안전시민모임’이 자문 역할을 맡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보수보강철거공사가 이뤄진 현장은 연평균 31개소에 이른다. 서울시는 앞서 언급했던 안전취약건물 보수예산도 이 모임의 자문을 받아 집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금천구 독산동의 D등급 연립주택이다. 2017년 예산 집행 대상으로 선정된 D등급 연립주택은 철거 후 주차장으로 재탄생했다. 주민들이 위험성이 큰 건축물을 직접 찾아내 쓸모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비슷한 제도인 안전보안관 역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건설 현장 등 재해취약지역에서 위험 요소 2000여건을 찾아냈다.

건축물 안전 담당 공무원의 말을 들어보자. “DE등급의 시설물은 1년에 3회 이상(건축물의 경우 2년에 1회 이상) 외관조사 수준의 정기안전점검을 받고 4년에 1회 이상 시험장비 등을 이용한 정밀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돼도 민간 소유주의 건축물 또는 시설이라면 공공이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한계를 메워주는 게 ‘더안전시민모임’ ‘안전보안관’ 등 시민조직이다. 실제 생활 속에서 위험을 확인하고 상시 알려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다.”

E등급(불량) 건축물의 민간 소유라면 그 위험을 제거하는 게 쉽지 않다.[사진=더스쿠프 포토]
E등급(불량) 건축물의 민간 소유라면 그 위험을 제거하는 게 쉽지 않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처럼 시민 네트워크와 공공이 위험 건축물이나 시설의 문제를 발견하는 원스톱 체제를 갖췄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더안전시민모임’에서 집행 여부를 자문하는 안전취약건물 보수예산이 연 30억원 수준으로 너무 적다. 민관 거버넌스나 시민조직이 감시할 수 있는 ‘데이터’도 턱없이 부족하다.

일례로, 자치구의 판단에 따라 민관이 모여 시설안전사각지대 발굴회의 등을 개최하고 있지만, 최저주거기준 미달의 주거 환경 등은 시민조직에서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 데이터에 잡히지 않은 데다 골목에 있는 반지하주택이나 고시원은 시민조직의 눈에서도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정술 안전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소방, 경찰 인력이 18만~19만명에 이르지만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신고가 집중돼 현실적으로 모든 현장에 (빠르게) 출동할 수 없다”며 “독일 같은 국가에서는 돈을 받지 않고 1개월에 1~2회씩 모여 회의하고 안전 활동을 하는 지역 주민 네트워크가 잘 짜여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공공도 지역 주민이 자율적으로 봉사하고 참여하는 활동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공의 빈틈을 메워주는 시민조직의 힘은 결국 공공의 노력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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