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주택과 침수, 그 속에 빠진 탁상행정
관악구·동작구 비 피해 많았던 이유

2010년부터 2011년 서울에는 1시간에 7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2022년에도 비공식적으로 한강 이남 일부 지역에 1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호우로 인한 피해는 재산부터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서울시는 12년 전에도 ‘반지하’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애초부터 빈틈이 있던 대책은 12년 뒤의 호우 피해도 막지 못했다.

서울시는 2010년 반지하 주택 신축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효과가 나타났다.[사진=뉴시스]
서울시는 2010년 반지하 주택 신축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효과가 나타났다.[사진=뉴시스]

갑작스러운 폭우는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8월 8일부터 9일까지 서울에 쏟아진 비는 건물을 잠기게 하고 도로를 마비시켰다. 이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본 건 불안한 주거 환경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반지하주택에 물이 차오르면서 가까스로 탈출했다는 증언이 줄을 이었고 반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틀간 내린 비로 14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다쳤으며 4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인명 피해가 컸다는 점 때문에 정부가 수해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거셌다.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시는 곧바로 ‘반지하 침수 주택’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가 내세운 가장 강력한 카드는 ‘반지하 주택신축 전면 금지’였는데, 곧바로 “2010년에도 반지하주택 건설을 불허不許하겠다고 하지않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물론 2010년과 비교했을 때 아무런 진전이 없는 건 아니었다. 8월 15일 발표한 서울시의 ‘반지하주택 규제’는 12년 전보다 더 구체화됐다. 그중 하나가 반지하 세입자에게 월 20만원, 최장 2년간 주택 바우처를 제공하는 등 이주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거였다. 반지하 세입자들이 비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반지하주택을 임대한다는 걸 고려한 조치다.

중앙 정부와 
협의해 저소득층이 받을 수 있는 주택 급여도 늘리기로 했다.[※참고: 국토교통부가 8월 16일 발표한 270만호 공급 대책에서도 주거 급여 대상을 2022년 132만가구에서 2027년 175만가구까지 늘리고 지원 금액도 늘리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서울주택도시공사(SH)를 통해 반지하주택을 매입하고 대신 공공임대주택입주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플랜도 밝혔다. 그 과정에서 남은 반지하주택은 인센티브를 적용해 주민 공동 창고, 주차장 등으로 만든다. 정책 추진 기간은 최장 20년이다. 2020년 기준 20만 가구가 있는 반지하주택을 20년 내에 물리적으로 없애버리겠다는 거다.

하지만 서울시의 ‘반지하주택 신축 전면금지책’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언급했듯 서울시가 ‘반지하와의 전쟁’을 선포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어서다.

 

이쯤에서 시계추를 2010년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침수 피해가 발생하자 서울시는“반지하주택을 만들 수 없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2년엔 건축법 개정으로 ‘상습 침수 지역엔 반지하주택의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도 생겼다.

당시 개정된 건축법(제11조ㆍ건축허가)의 내용을 원문 그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방재지구 및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등 상습적으로 침수되거나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 건축하려는 건축물에 대하여 지하층 등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거나거실을 설치하는 것이 부적합할 때 건축 허가를 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건축법 개정 이후 뜻밖의 상황이 나타났다. 그후 서울엔 4만호에 이르는 반지하주택이 만들어졌다. 전체 반지하주택 20만호 중 20%가 ‘반지하 불법화 조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어진 셈이다.

그럼 ‘반지하 방지책’은 왜 효과를 보지 못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 개정 건축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개정법은 반지하주택을 불허하는 곳을 ‘방재지구’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등으로 명시했는데, 문제는 이 지역이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점이었다. 

2020년 기준 서울에서 침수 위험으로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로 지정된 곳은 강서구(3곳), 서초구(2곳), 양천구(1곳), 용산구(1곳) 등 7곳이다. 2010년 2곳(강서구ㆍ서초구)에서 2011년 7곳으로 늘어난 후 2020년까지 변화가 없었다.

결국 반지하주택을 지을때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는 곳이 고작 7개 지구뿐이란 얘기인데, 이는 ‘탁상행정’의 나쁜 결과물이다.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와 실제 침수 피해가 발생하는 곳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익대 세종캠퍼스 산학협력단이 2014년 발간한 ‘침수주택 항구적 대책 마련과 임대주택 확보를 위한 지하 및 반지하주택 주거 환경개선 학술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13년 반지하 침수 주택이 가장 많은 서울 자치구는 관악구였다.

전체 1만2034동의 반지하 침수 주택 중 11.7%인 1410동이 관악구에 있었다. 그 다음은 양천구(1191동ㆍ9.9%), 강서구(1120동ㆍ9.3%), 동작구(930동ㆍ7.7%), 강동구(834동ㆍ6.9%), 서초구(820동ㆍ6.8%) 순이었다. 2022년 호우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관악구ㆍ동작구가 전체의 19.4%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두 지역은 공교롭게도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7곳에 포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상습 침체 지역인 관악구ㆍ동작구에선 ‘법망’ 안에서 반지하주택이 만들어졌다. 서울 관악구 건축인허가 담당자는 “우리 지역에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로 지정이 된 곳이 없어 반지하 주택을 불허하는 게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집주인에게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지급해 반지하 주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서울시는 집주인에게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지급해 반지하 주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서울시는 2022년 새로운 대책에서 침수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에서도 반지하주택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허술하게 만들어졌던 ‘반지하 신축금지’ 정책을 더 촘촘하게 만들겠다는 거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금지책’으로 해결할수 있는 건 아니다. 여기저기서 새로 만들어지는 ‘옥탑방’이나 ‘무단 증축’도 엄연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몇몇 편법이나 꼼수에 능한 이들이 반지하주택을 창고나 주차장으로 바꿨다가 다시 불법 개조해 ‘주택’으로 만든다면 세금은 세금대로 투입하고 정책 효과는 얻지 못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건 결국 정부, 지자체의 끈질긴 조사뿐이다. 서울시는 전문가 회의를 거쳐 더 꼼꼼한 대책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서울시는 그 회의에서 자신들의 허약한 ‘조사 의지’를 도마에 올릴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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