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응준 엔비디아 코리아 대표
GPU 슈퍼컴퓨터에 숨은 플랜
GPU 넘어 AI·메타버스 공략

# 엔비디아.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선 게임용 그래픽카드(GPU)를 만드는 회사쯤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엔비디아가 이미 인공지능(AI)·메타버스 등 미래 산업을 좌지우지할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어서다.

특히 ‘전원만 꽂으면 곧바로 AI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엔비디아의 DGX는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국내 AI 사업의 선두주자인 네이버가 최근 DGX 모델을 280대 구축한 건 DGX의 기술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 문제는 엔비디아가 GPU에 갇힌 ‘인식의 오류’를 떼어내고 AI·메타버스 업계에서 새로운 상징으로 기억될 수 있느냐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더스쿠프(The SCOOP)가 유응준(61) 엔비디아 코리아 대표를 만나 엔비디아의 현재와 미래를 물어봤다.

누군가에게 ‘엔비디아를 아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이런 답이 되돌아온다. “그래픽카드(GPU) 만드는 회사입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인식의 오류가 낳은 답변일 수도 있다. 물론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게임·데이터센터 등의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GPU와 CPU(중앙처리장치)를 디자인하는 회사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가 규정하는 것처럼 ‘GPU·CPU’만 취급하는 곳은 아니다. 엔비디아는 AI·메타버스를 위한 전문 플랫폼 사업도 펼치고 있다. 엔비디아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GPU·CPU란 장벽에 갇혀 있는 셈이다. 유응준 엔비디아 코리아 대표는 이 숙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참고: GPU (Graphics Processing Unit)는 컴퓨터 시스템에서 그래픽 연산을 빠르게 처리해 결괏값을 모니터에 출력하는 장치를 말한다. CPU(Core Processing Unit)는 컴퓨터의 시스템을 통제하고 프로그램의 연산을 처리하는 일종의 제어 장치다.]

✚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음에도 엔비디아를 게임용 GPU 회사로 알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엔비디아로선 풀어야 할 숙제로 보입니다.
“2010년 중반까지는 게임용 GPU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면서 회사 규모를 키워나갔죠. 그러다 보니 그런 인식이 아직 남아있는 듯합니다.”

✚ 한 기업을 상징하는 ‘분야’가 있다는 건 일면 장점입니다. 정체성이 확실하니까요. 하지만 다른 사업 부문의 가치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단점도 있을 듯해요.
“어떤 시장의 목소리를 듣느냐에 따라 평판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거죠.”

✚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AI 사업을 예로 들어볼까요? 제가 만나는 AI 관련 고객사나 연구원들은 엔비디아가 AI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평가합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들도 엔비디아의 AI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고요. 이런 맥락에서 일반 소비자가 엔비디아를 ‘게임용 GPU 회사’로 생각해도 그건 ‘인식의 오류’가 아니라고 봐요. 이미 다른 업계에선 인정을 받고 있으니까요.”

✚ 기업을 상징하는 관념이나 인식은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 그럼 엔비디아가 GPU에서 소프트웨어인 AI로 사업을 확장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과거 AI 프로그램엔 CPU가 쓰였어요. 직렬사고를 하는 CPU의 처리속도가 무척 빠르거든요. 그러던 2012년 AI 프로그램에 GPU가 더 유용하다는 걸 입증하는 사건이 발생했죠.”

✚ 그게 뭔가요?
“그해 캐나다에서 AI 프로그램의 성능을 겨루는 ‘이미지넷(ImageNet)’이란 대회가 열렸는데, 엔비디아의 GPU를 사용한 프로그램이 압도적인 성능 차이로 우승했죠. 엔비디아가 CPU가 아닌 GPU를 AI 프로그램에 활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엔비디아의 AI 프로젝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죠. 이를테면 ‘고사양의 게임을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 고도화된 엔비디아의 GPU 기술이 AI 프로그램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겁니다.”

엔비디아의 CEO인 젠슨 황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2016년 엔비디아가 개최한 기술 콘퍼런스 ‘GTC2016’에서 “AI가 모든 산업에서 새로운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면서 “컴퓨터로 이용하는 모든 연구와 혁신을 GPU 기반 AI로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AI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을 선언한 셈이다.

“AI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젠슨 황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엔비디아의 GPU가 전체 AI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90%까지 치솟았다. 엔비디아의 가치도 덩달아 상승했다. 2016년 26.69달러(연말 기준)이었던 주가는 현재 145.05달러(9월 12일)로 5년여 만에 5.4배가 됐다.

엔비디아가 AI 시장을 정조준한 데는 또다른 이유도 있다. 유응준 대표는 “엔비디아는 우리 제품을 이용하는 고객사와의 상생을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고객사의 TTM(Ti me To Market)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TTM은 제품 개발 후 실제로 판매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뜻하는 용어다. 그럼 엔비디아가 AI 제품의 TTM을 줄이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 AI와 TTM이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네, 쉽게 설명해 볼게요. 한 회사가 AI 기술을 도입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먼저 연산을 하는 AI 하드웨어를 구매해야 하고, 운영체제(OS)와 AI 플랫폼 등 몇가지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다음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자신들의 사업에 맞게 최적화하고, 필요한 앱을 설치해야 하죠.”

✚ 과정이 꽤 복잡하네요.
“당연합니다. 엔비디아든 다른 기업의 제품이든 AI를 설치한다고 당장 효과가 나오는 게 아니란 겁니다. 특히 전문인력이 있는 IT 회사라면 그 과정이 어렵지 않겠지만, IT가 주력사업이 아닌 회사에는 복잡하고 곤란한 일이죠. 막대한 예산도 투입해야 하고요. 그래서 엔비디아는 이런 수고를 덜기 위한 ‘원스톱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DGX’가 대표적이죠.”

✚ DGX가 뭔가요?
“하드웨어부터 OS·앱 등 AI 관련 인프라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DGX만 있으면 앞서 언급한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전원만 꽂으면 바로 AI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준비 속도가 빠릅니다.”

✚ 엔비디아 고객사 입장에선 상당한 강점이 되겠네요.
“맞습니다. 한번 DGX를 사용한 고객사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국내에선 네이버가 AI 사업의 선두주자 중 하나인데, 최근 AI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처음으로 DGX 모델을 280대 구축했죠. 엔비디아의 AI 기술 경쟁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방증입니다.”

✚ 최근엔 메타버스 시장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엔비디아의 메타버스 사업군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3D 디자인 콜라보레이션입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여러 인원이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협업할 수 있도록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기술입니다.”

✚ 다른 하나는 뭔가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입니다. 쉽게 말해, 현실과 동일한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가상의 세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으로 자동차를 설계하거나 건물을 짓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일을 가상공간에서 빠르게 테스트해볼 수 있죠. 미래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디지털 트윈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사진은 유응준 엔비디아 코리아 대표.[사진=엔비디아 제공]
사진은 유응준 엔비디아 코리아 대표.[사진=엔비디아 제공]

이처럼 AI 등 신사업은 엔비디아의 가치를 높여놨다. 문제는 그 가치가 ‘눈에 보이는’ 실적으로 연결됐느냐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렇진 않다. 올 2분기 엔비디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1% 줄어든 67억400만 달러(약 9조3349억원)에 그쳤다. 이 때문인지 한편에선 “엔비디아의 문어발식 확장전략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유 대표는 “문어발식 확장은 과장된 해석이다”며 반론을 펼쳤다. “엔비디아엔 몇가지 비즈니스 원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쉬운 문제는 풀지 않는다’입니다. AI나 메타버스는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영역입니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는 이 분야를 정복하는 걸 나름의 숙명처럼 여기고 있죠. 실제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고요. 앞뒤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비판하는 건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 그럼 2분기에 기대치를 밑도는 실적을 거둔 이유는 뭔가요.
“암호화폐 업체들은 화폐채굴 과정에서 GPU를 많이 사용하는데, 최근 암호화폐 시장이 흔들리면서 GPU 수요가 줄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게임 산업이 조금 위축된 것도 실적 감소에 영향을 미쳤고요. 물론 글로벌 공급망 대란, 고물가 등 여러 악재가 겹친 탓도 있습니다.”

✚ 실적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규모가 아직 작긴 하지만 AI 관련 사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엔비디아의 미래 성장동력이 탄탄하다고 볼 수 있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실적이 회복될 여지는 충분합니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엔비디아는 AI와 메타버스를 통해 인류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세계 엔지니어들이 모여 서로의 기술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GTC를 오는 9월 21일 개최합니다. 앞으로는 GPU 회사가 아닌, 디지털 세계를 선도하는 엔비디아로 기억되길 기대합니다.”

인식의 오류는 ‘고정관념’이란 말로 표출된다. 엔비디아 역시 GPU란 인식의 오류가 낳은 고정관념 안에서 성장과 진화를 거듭해왔다. 엔비디아는 과연 GPU를 넘어 또다른 상징을 가질 수 있을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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