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3나노 양산한 삼성전자
최신 기술 앞세워 1위 TSMC 앞설까
양산 성공했지만 안정성은 담보 못해
갈 길 멀지만 가지 못할 이유도 없어

지난 6월 30일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양산에 성공했다. 파운드리 경쟁력을 좌우하는 미세공정 경쟁에서 삼성전자가 TSMC를 앞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줄곧 TSMC의 뒤를 쫓던 삼성전자가 이번에야말로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만 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기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은 정말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이 파운드리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거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이 파운드리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거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제공]

반도체는 작을수록 좋다. 하나의 웨이퍼로 더 많은 반도체 칩을 만들 수 있는 데다, 하나의 칩 위에 더 많은 반도체 소자를 쌓을 수도 있어서다. 성능과 전력 효율도 달라진다. 반도체 회로와 소자의 크기 변화가 전류ㆍ전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바일이나 웨어러블 기기가 대중화된 요즘, 반도체는 이처럼 ‘작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이런 반도체 발전사는 곧 미세화의 역사로 정의되곤 한다. 그만큼 반도체를 작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반도체가 작아질수록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까다로운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에 특화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ㆍFoundry)의 경쟁력과 기술력이 ‘반도체를 얼마나 작게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다. 

지난 6월 30일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ㆍ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파운드리 공정의 첫 양산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시장의 이목이 쏠렸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 TSMC와의 미세화 경쟁에서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앞서나갔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참고: 삼성전자는 지난 7월 25일 경계현 DS부문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협력사 등이 모인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3나노 파운드리 제품 출하식을 열었다. 그만큼 TSMC에 앞서 세계 최초로 3나노 양산에 성공했다는 건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3나노란 반도체 회로의 선폭을 말한다. 회로를 가늘게 그릴수록 반도체가 작아지고 집적도가 높아진다. 흔히 1나노미터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로 표현할 만큼 미세하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미세공정 경쟁에서 매번 TSMC에 밀렸다. TSMC가 새로운 미세공정을 도입하면 삼성전자가 이를 따라잡기까지 통상 반년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때문일까. 두 기업 간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16.3%에 그쳐 53.6%를 기록한 TSMC에 크게 뒤처졌다. 2019년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파운드리를 육성하겠다고 밝히기 직전의 점유율 격차(2018년 TSMC 50.8%ㆍ삼성전자 14.9%)보다 되레 더 벌어졌다.

■게임체인저 긍정론 = 그렇다면 이젠 3나노 첫 양산을 기점으로 상황이 달라질까. 삼성전자가 미세공정 경쟁에서 TSMC를 한발 앞선 만큼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한편에선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 기술이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게임체인저’가 될 거란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다. TSMC를 잡기 위해 단단히 준비한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엔 또다른 무기가 숨어있다.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GAA는 기존 핀펫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차세대 기술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지 않고선 다음 단계의 미세공정으로 가기가 어렵다.

[※참고: GAA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게이트(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는 곳)가 채널(전류가 흐르는 곳)의 4개면을 감싼 형태라는 점이다. 기존의 핀펫 구조는 게이트가 채널의 3개면만을 둘러싸고 있다. 그 때문에 GAA 구조에선 트랜지스터 성능 저하 문제를 개선하고, 데이터 처리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3나노 GAA 1세대 공정에서 반도체를 만들었을 때 기존 5나노 핀펫 공정보다 전력은 45% 절감, 성능은 23% 향상, 면적은 16%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제조공정이 미세화할수록 전류의 제어가 어려워지는 만큼 기존 핀펫 구조로는 한계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면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GAA 구조로의 변화는 필수다”고 말했다. 

 

그럼 TSMC의 현주소는 어떨까. 업계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TSMC의 GAA 도입 시기는 다소 늦을 공산이 크다. 올 하반기 양산 예정인 3나노 공정엔 GAA 대신 기존 핀펫 기술을 사용할 계획이라서다. TSMC가 GAA 기술을 적용하는 건 2025년 도입 예정인 2나노 공정부터다.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올해부터 GAA 기술을 활용하는 삼성전자에 비해 노하우 면에서 뒤처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와 같은 기술집약산업에선 기술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점에서 삼성전자의 GAA 기술은 함의가 크다. 

이종환 상명대(시스템반도체공학) 교수는 “반도체 산업의 방향성은 매우 뚜렷한데, 그건 더 작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 공정 양산에 성공함으로써 가장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선점 업체가 갖는 프리미엄도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술력에서 세계 1위 TSMC를 제친 만큼 삼성전자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달라질 공산이 크다는 거다. 

■게임체인저 신중론 = 하지만 3나노 공정이 게임체인저가 될 거라고 판단하긴 이르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파운드리 산업 특성상 기술력만 확보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파운드리는 수주산업이다. 기술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령, 메모리반도체는 기술이 있으면 만들어서 팔면 된다. 하지만 파운드리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바로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게 아니다. 고객의 주문이 있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기술이 획기적이고 우수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야만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그럼 실질적으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선 또 뭐가 중요할까. 안정성이다. 고객이 원하는 품질과 물량의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면 수주계약을 따내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문제는 안정성 면에서 삼성전자가 꽤나 애를 먹고 있다는 점이다. 수율收率(투입량 대비 양품 비율)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4나노 공정의 수율 문제 때문에 대형 고객사를 TSMC에 뺏긴 전력이 있다. 물론 최근 4나노 공정의 수율을 많이 끌어올렸다곤 하나 3나노 공정의 수율을 개선하는 건 또다른 문제다. 

특히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엔 GAA 기술이 처음 적용된 만큼 빠른 기간 안에 안정성을 끌어올리는 게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이종환 교수는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양산성이 신통치 않으면 손실이 발생하고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단기간에 수율을 안정화하는 게 급선무”라면서 “다만, 삼성전자는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기술이라 수율을 안정화하는 데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반면 TSMC는 기존의 핀펫 구조를 쓰기 때문에 수율을 더욱 빨리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TSMC가 먼저 3나노 수율을 끌어올리면 삼성전자가 먼저 기술을 발표한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팹리스 신뢰 얻을까

문제는 또 있다. 핀펫에서 GAA로 구조가 바뀌면 팹리스(설계 전문업체ㆍFabless)는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팹리스 입장에선 성능과 효율 좋은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GAA든 핀펫이든 상관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확실한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굳이 설계를 바꾸는 수고와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삼성전자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 그 때문인지 삼성전자는 아직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EUV 장비 확보를 위해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았다.[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EUV 장비 확보를 위해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았다.[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관계자는 “계약 관련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을 아꼈지만,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가 3나노 공정에서 확보한 고객은 중국 팹리스에 불과하다. 증권업계에서도 삼성전자가 당장 글로벌 대형 팹리스와의 계약을 따내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6월 양산을 시작한 1세대 3나노 GAA는 중국 업체들을 대상으로 공급될 예정이며, 2세대 GAA는 2024년부터 삼성전자(시스템LSI 사업부)에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참고: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에서 자사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0~40%에 이른다.] 퀄컴ㆍ엔비디아ㆍ애플 등 글로벌 대형 팹리스를 고객으로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TSMC를 쫓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란 점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삼성전자의 리스크는 그뿐만이 아니다. TSMC가 첨단 미세공정부터 레거시 공정까지 폭넓은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첨단 미세공정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파운드리 시장에서 첨단 미세공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다. 지난해 기준 5나노 이하 미세공정 비율은 13% 남짓에 불과했다.

[※참고: 첨단 공정에선 고성능 컴퓨팅(HPC),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의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한다. 심한 공급난을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를 비롯한 대부분의 반도체는 여전히 레거시 공정에서 제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첨단 미세공정 분야에서 TSMC보다 경쟁력이 우월한 것도 아니다. 생산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다. 삼성전자와 TSMC의 정확한 생산능력을 알 순 없지만 7나노 이하 미세공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극자외선(EUV) 장비 보유 대수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

유안타증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와 TSMC가 보유한 EUV 장비는 각각 33대, 62대였다. 이를 감안했을 때 두 회사 간 생산능력 차이는 대략 2배다.[※참고: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데도 EUV 장비를 사용하는 반면, TSMC는 전부 파운드리 사업에만 사용하고 있다.] 
 

이쯤에서 원점으로 다시 가보자.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 기술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선 게인체인저의 의미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김양팽 연구위원은 “게임체인저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게임체인저가 TSMC를 넘어서서 시장점유율을 뒤집는 것을 뜻한다면 쉽지 않다. 하지만 첨단 공정에서의 위상을 키우고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걸 뜻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가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적지 않다.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를 흔들기 위해선 결국 글로벌 팹리스들의 신뢰를 얻는 게 관건이다. 3나노 공정을 선점한 지금부터의 행보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파운드리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되기까지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가지 못할 이유도 없다. 승부는 지금부터다. 

고준영 더스쿠프 경영전문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