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강일차고지에 가보니…
차고지 지하화 반대의 목소리
컴팩트시티 첫 모델 언제쯤 나올 수 있나

공간이 부족하면 만들면 된다. 빗물펌프장도, 차고지도 괜찮다. 그 위에 인공 대지를 만들고 주택을 지으면 ‘하나의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서울시가 ‘컴팩트시티’라고 명명한 입체화 사업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하지만 이 사업에선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컴팩트시티’ 후보군 중 하나인 강일차고지에서 그 어려움을 살펴봤다.

강일차고지를 지하화하는 '컴팩트시티' 사업은 주민과 운수업체의 반대를 겪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강일차고지를 지하화하는 '컴팩트시티' 사업은 주민과 운수업체의 반대를 겪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모든 게 꽉 들어찬 서울에선 이제 ‘주택’을 지을 땅을 찾을 수 없을 듯하지만, 그렇진 않다. 서울 도심만 벗어나면 ‘빈 땅’이 여전히 남아있다. 역설적이지만 찾는 게 어렵지도 않다. 철도 차량 기지나 버스 차고지 등이 바로 그 빈 땅이어서다. 

서울시는 2019년 대부분 국공유지인 데다가 크기도 넓은 이 땅을 ‘컴팩트시티(Com pactcity)’로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를테면 차량 기지나 차고지 위에 ‘건물’을 짓겠다는 거다. 그래서 컴팩트시티의 공식 명칭은 ‘입체화 사업’이다. 

개념은 간단하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토지를 입체화하는 거다. 건물 저층에 상업시설을 만들고 나머지는 주택으로 만드는 주상복합건물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컴팩트시티의 후보군 중 하나인 ‘차고지’의 사례를 들어보자. 일단 차고지는 그대로 이용한다. 그 위에 인공 대지를 만들어 주택을 올리고 공원도 만든다. 어떤가. 가능할 듯한가. 

언뜻 허황한 아이디어 같지만 서울 주택난을 생각하면 이런 발상을 가볍게 볼 순 없다. 실제로 몇몇 차고지에선 ‘컴팩트시티’를 짓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강일차고지다. 

2002년 만들어진 강일차고지에는 하루 300여대의 버스가 드나든다. 서울시는 2019년 이곳을 ‘컴팩트시티’로 만들어 차고지를 지하에 다시 만들고, 그 위에 공원과 주택 688호를 만들겠다는 플랜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 플랜은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2019년의 밑그림대로 순항 중일까.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지하철 5호선 강일역에 내렸다. 강일차고지는 직선으로 약 500m 거리에 있다. 역 앞에서 ‘따릉이’를 타고 잘 만들어진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보니, 경기 하남의 미사강변도시가 스쳐 지나갔다.

서울 경계에 바짝 붙어 만들어진 경기도의 공동주택지구는 서울 주택난의 증거이기도 하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아파트 단지들이 많았고 아직 개교하지 않은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 대신 공사 차량이 가득했다.

새 아파트 단지가 생기는 미사강변도시를 빠져나오자 다시 서울 강동구 강일동의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문 닫은 곳 없이 빼곡히 차 있는 아파트 인근 상가를 지나치자 강일차고지 출입구가 나타났다. 왼쪽으로는 3차선 왕복도로를 사이에 놓고 아파트 단지와 마주하고 있다.

버스가 드나든다는 사실만 빼면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어도 이상한 위치가 아니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차고지 경계를 따라 걸었다. 긴 직사각형 형태의 강일차고지는 대부분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조용했다. 

부족한 집, 쌓아올린 땅 위로

강일차고지의 면적은 약 3만5804㎡(약 1만830평)다. 공동주택을 짓기에 적당한 크기다. 2020년 기준 서울시가 집계한 아파트 총 단지 수(2469개)와 아파트 단지 전체 토지 면적(7733만6005㎡)을 대상으로 평균을 내보면, 서울 아파트 단지의 대지 면적은 3만1399㎡(약 9498평)다. 서울 아파트 단지 평균 면적보다 강일차고지가 조금 넓은 셈인데, 공동주택 단지를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 봤던 출입구로 되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이었다. 아파트 1개 단지를 돌아볼 때와 비슷한 시간이었다. 출발했던 출입구 앞에 서니 운수회사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과 가스 충전소가 눈에 들어왔다. 차고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광경이었지만 생소한 것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차고지 입구와 건물에 걸려 있는 ‘강일차고지 지하화 반대’ 현수막이었다. 

사실 새삼스럽진 않았다. 2021년 11월 강일차고지에 있는 운수업체들은 서울시에 ‘차고지 지하화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서울시는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일차고지 건물 2층에서 만난 운수업체 관계자는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차고지의 일부는 지상에 남고 나머지는 지하로 들어가는데, 그러면 버스 운행이 힘들어진다”며 “현재 운행 중인 버스 가운덴 전기차ㆍ수소차ㆍ압축천연가스차(CNGㆍCompressed Natural Gas)도 있는데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대응이 어렵다”고 말했다.

설득력이 없지 않은 주장이었다. 지상 차고지엔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이를 지하로 옮기면 아무래도 ‘기둥’ 때문에 운행에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 전기버스와 CNG 버스 등을 감안하면 ‘화재’에 따른 사고도 배제하긴 힘들었다. 

반대 목소리를 낸 건 운수회사뿐만이 아니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강일차고지와 이웃하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도 사업 과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서울시가 밑그림을 그릴 때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데다 600여호의 주택이 생기면 교통난이 가중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컴팩트시티 앞 난관들

이런 의견들은 일부 받아들여진 상태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4월 ‘주민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시 역시 운수회사의 우려를 수용했다.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화재 대응이 가능하도록 밑그림을 바꾸고 있다. 운수업체 관계자는 “11월이 되면 시뮬레이션 용역 연구가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컴팩트시티’가 실현된 곳은 아직 없다. 사업을 추진하는 쪽에선 하루라도 빨리 성공한 결과물을 내놓고 싶겠지만, 세상에 없던 밑그림을 현실화하는 작업은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강일차고지를 나섰다. 아파트 공사현장을 드나드는 트럭과 버스가 한 도로에 얽혀 지나가고 있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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