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6개 사업지에서 추진 중인 컴팩트시티
연구 용역 중지되거나 철거도 미뤄진 곳 있어
계획보다 연기될 가능성 높아

국가 소유의 땅은 돈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필요할 때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서다. 가령, 철도나 빗물펌프장 위에 주택을 올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허황된 가설이 아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공급정책 중 하나로, 이른바 ‘컴팩트시티’ 프로젝트다. 더스쿠프가 현재 진행 중인 ‘컴팩트시티’ 6개 프로젝트의 현황을 점검해봤다. 

정부는 버스 차고지, 철도 차량기지 등 국공유지 위에 '컴팩트 시티'를 만들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정부는 버스 차고지, 철도 차량기지 등 국공유지 위에 '컴팩트 시티'를 만들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있는 땅을 찾아내느라 바빴다. 문재인 정부는 수도권 인근에 있는 3기 신도시 후보 부지를 발굴하고 동시에 도심 용적률을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뒤이어 집권한 윤석열 정부도 문재인 정부가 계획했던 공공 공급 정책은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국공유지를 활용해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건데  전국으로 따지면 18만호, 수도권에 한정하면 14만호다.

문제는 계획대로라면 공공주택이 들어서야 할 ‘국공유지’에 이미 다른 시설물이 들어서 있는 경우다. 가령, 그 국공유지를 빗물펌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어떨까. 기후 위기로 이상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빗물펌프장을 없애고 주택을 만들 수 있을까. 

몇몇 전문가는 이렇게 제언한다. “지면에 있어야 하는 인프라는 그대로 유지하고, 주택을 그 위에 쌓아올리면 된다. 그러면 인프라와 주택뿐만 아니라 공원 같은 녹지구역까지 만들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사업은 ‘입체화’ 또는 ‘컴팩트시티(Compactcity)’라고 불린다.[※참고: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입체화 사업’이라고 명명된 이 프로젝트에 ‘컴팩트시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같은 컴팩트시티 전략은 주택 공급 해소라는 목적 외에 다른 장점도 갖고 있다. 예컨대, 차고지나 철도 등은 그 기능 때문에 일반 시민의 통행이 어렵다. 이 경우 ‘컴팩트시티’를 꾀하면 인프라 시설 위에 주택이나 공원을 만들 수 있어 통행이 자유로워진다.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컴팩트시티’는 땅이 부족한 서울에서 먼저 지어지고 있다. SH는 현재 ‘도로’ ‘빗물펌프장’ ‘차고지’ 위에 주택을 만드는 6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신내4 북부간선도로 ▲연희 빗물펌프장 ▲증산 빗물펌프장 ▲강일차고지 ▲장지차고지 ▲방화차고지다. 대부분 2022년 착공하는 6개 프로젝트는 2024~2026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6개 프로젝트를 모두 마무리하더라도 공급할 수 있는 주택은 2617호로,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운 14만호(수도권 기준)의 2%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컴팩트시티’의 풍향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렇다면 컴팩트시티를 향한 6개 프로젝트는 순항하고 있을까. 하나씩 살펴보자. 

SH는 2019년 연희동과 증산동 빗물펌프장을 입체화하겠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SH는 2019년 연희동과 증산동 빗물펌프장을 입체화하겠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도로 = 신내4 북부간선도로에서 진행 중인 ‘컴팩트시티’는 행복주택 1000호를 만드는 사업이다.[※참고: 애초 계획은 1000호 건설이었지만 최종 주택건설계획에서 990호로 확정됐다.] SH가 추진하는 6개 프로젝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신내4 공공주택지구 주택건설계획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주택은 990호다. 그중 72.2%인 715호는 전용면적 20㎡ 규모의 1인 가구 특화형이다. 

물량은 많지만 문제가 없지 않다. 전용면적 20㎡(약 6평)는 1인 가구도 좁게 느끼는 면적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소가 2021년 발간한 ‘LH형 적정 주거공간 설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적정 면적은 32.64㎡(약 9.9평)였다. 이 때문에 신내4 북부간선도로에 만들어지는 컴팩트시티가 시민들이 원하는 주택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빗물펌프장 = 연희 빗물펌프장과 증산 빗물펌프장은 청년주택으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빗물펌프장은 지면에 고이는 물을 빨아들여야 하는 시설의 특성상 지면에서 없앨 수 없다.

이에 따라 연희 빗물펌프장은 펌프장 역할을 유지하는 동시에 전시시설로 활용하고 2022년 상반기 펌프장 위에 건물을 쌓아 올려 청년주택을 착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주택을 짓는 과정엔 아직 돌입하지 못했다. 빗물 처리 능력을 높일 유입관 신설  등 추가 공사가 남아 있어서다. 

증산 빗물펌프장 역시 공사 진척률이 더디다. 2022년 4월부터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현장을 찾아가보니 기존 빗물펌프장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빗물펌프장 부지 위에 새로운 건물을 쌓아 올려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기초 작업도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예정대로라면 2024년 166호가 준공돼야 하지만, 연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차고지 = 총 1307호를 공급하는 3곳의 차고지 사업 중 공급 물량의 94.3%를 공급하는 강일ㆍ장지차고지 입체화 사업은 2019년에 사업 추진이 논의됐다. 개념은 간단하다. 강동구 강일동, 송파구 장지동에 있는 버스 차고지 위에 ‘인공 대지’를 만들어 주택과 공원을 조성하는 거다. 계획대로라면 버스 차고지에서 발생하는 소음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차고지였던 구역이 주택과 공원으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두 차고지는 2020년 나란히 설계공모 당선작을 선정했고 같은해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이 ‘공공 공급’으로 선회하자 도심 내 주택 공급 방식의 하나로 주목받았다. ‘컴팩트시티’라는 개념을 시민들에게 각인시킨 셈이다. 

하지만 두 사업은 잠정 중단 상태다. 공교롭게도 인근 주민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두 사업지 모두 100% 서울시 소유이지만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완공 후 교통 등이 불편해질 수 있고,  사업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 전면 철회를 청원했다.

지난 4월 서울시의회는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6월 두 사업지의 교통영향평가 연구용역이 지연되면서 사업이 멈춰섰다. 

교통영향평가 용역을 담당한 삼안 관계자는 “주민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용역 사업을 중지하는 건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며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마무리했지만 공공과 주민간 협의는 우리가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용역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SH 관계자는 “주민들 민원이 있었고 교통영향평가를 담당한 회사가 ‘용역 중지’를 요청해서 (사업이) 멈춘 것”이라며 “주민 협의 등이 잘 마무리된다면 일정대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용역 재개 시점도 불분명하다. 업계 관계자는 “주민 항의로 인해 멈춘 사업을 재개하는 데 1년 이상 걸린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컴팩트시티 사업은 지난 정부가 시작했지만 국공유지를 활용해 만든다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주택 공급 계획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수도권광역철도(GTX-A,B,C) 역사 위, 차량기지 등을 활용해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공유지이기에 토지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풀어야 할 과제는 숱하다. 

강일ㆍ장지차고지 컴팩트시티 사업처럼 주민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연희빗물펌프장 사업의 경우에서 보듯, 상황에 따라 유입관을 넣어야 하는 등 추가 공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추가 공사를 진행한다면 도심 내 주택 공급은 그만큼 미뤄진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컴팩트시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마음먹은 정부뿐이다. 새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 정책은 ‘컴팩트시티’ 사업을 통해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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