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글로벌 물류업체 없는 이유

한국에는 왜 DHL•페덱스 같은 글로벌 물류기업이 없는가. 답은 간단하다. 앉아서도 운송물량을 주는 본사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 운송시스템이 없으면 물류 전문사에 하청을 주면 그만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통행세’만으로도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의 진수는 물류업종에서 엿볼 수 있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공정위원회가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방안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둘 다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은 같다. 하지만 인수위는 일감 몰아주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를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대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맞대응하고 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만큼 심각한 문제다. 일감 몰아주기란 대기업 계열사들이 특정 자회사에 물량을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것을 말한다. 특히 물량을 받는 계열사 대부분은 그룹 회장 일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부의 대물림’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내부거래용’ 태생적 한계 존재

▲ 대기업 물류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것은 회사 설립 목적이 ‘그룹 핵심 계열사 물량 운송’이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업종은 물류다. 이재균 새누리당(국토해양위원회)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물류기업의 내부거래비중은 85~90%에 달한다. 내부거래 비중(2011년 매출 기준)을 보면, 삼성전자로지텍(삼성그룹)은 92.9%, 현대글로비스(현대차그룹)는 86.8%, 하이비지니스로지스틱스(LG그룹)는 91.3%, 롯데로지스틱스(롯데그룹)는 97.1%, 효성트랜스월드(효성그룹)는 95%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90%는 그룹 물류 계열사에게 먼저 넘기고, 나머지 10%는 경쟁 입찰을 통해 경쟁력 있는 전문 물류기업(비계열 독립기업)에 맡긴다. 전체 물량의 90%는 앉아 있어도 그냥 들어오는 수입이다.”

사실 전체 물량의 100%를 그룹 물류 계열사에게 넘겨도 된다. 하지만 기업이 눈치를 보면서 내부거래를 90%대를 맞추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정부규제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고 있지만 ‘부당한’이라는 기준이 모호하고, 규제 범위 역시 좁다는 한계가 있다.

 
공정위는 현재 일감 몰아주기의 범위를 확대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당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내부거래 비중이 30%가 넘는 기업을 수혜법인으로 보고,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지배주주 중 친족을 대상으로 증여세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물류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문제를 규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물류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것은 회사 설립 목적이 ‘그룹 핵심 계열사 물량 운송’이기 때문이다. 내부거래용 물류 계열사를 목적으로 내세운 셈이다. 이는 화물운송이 목적인 전문물류업체 DHL•페덱스 등 글로벌 물류기업과 대조적이다.

물류업은 화주(貨主•운송되는 제품의 주인)만 확보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다. 대형 물류기업은 운송에 대한 총괄•기획 등 컨트롤 타워 역할만 하면 그만이다. 운송수단인 트럭•선박•항공기는 하청업체(전문 물류기업•비계열 독립기업)에 넘기면 된다. 대기업 물류 계열사는 물량을 받아 하청업체에 넘겨주는 대가로 이른바 ‘통행세’만 받으면 그만이다. 한 물류 전문가는 “현재까지도 통행세를 통해 돈을 버는 대기업 물류회사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A사는 계열사 B사와 33억원 규모의 ‘부품운송’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A사는 이 사업을 30억원에 중소기업 C사로 넘겼다. A사는 앉은 자리에서 3억원을 챙겼다. 이런 통행세는 물량이 많을수록 이익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대기업이 물류 계열사를 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기업 물류 계열사의 사업구조를 두고 ‘누워서 돈 먹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국내 대기업 물류 계열사는 DHL•페덱스를 비롯한 글로벌 물류업체와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다. DHL이 물류 시스템과 해외 네트워크망을 구축하고, 적극적으로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국내업체는 물류시스템만 갖추면 그만이다. 그것도 싫으면 능력 있는 전문 물류업체를 협력업체로 두면 된다. 양적으로 성장하는 국내 물류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조업 보조 아닌 진정한 물류업체 꿈꿔야

대기업 물류회사가 성장하려면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물류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을 70%, 50% 등으로 순차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태현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국내 대기업 물류 계열사의 사업은 자체 물량 초점에 맞춰져 있다”며 “모회사인 제조업을 서브하는 역할이 강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물류 계열사에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제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시기”라며 “국내 내부거래의 비중을 줄이는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영업능력을 키워 해외로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Issue in Issue 글로벌 물류기업 살펴보니…
세계 톱 10 안에 국내기업 1개 뿐

DHL은 글로벌 1위 전문물류기업으로 꼽힌다. 미국 물류 리서치 회사인 암스트롱 앤 어소시에이츠가 2012년 발표한 ‘글로벌 물류기업 Top 50’(2011년도 매출기준)에 따르면, DHL은 2011년 매출 321억 달러를 기록하며 글로벌 1위 물류기업에 올랐다. DHL은 2010년에도 매출 304억 달러를 달성하며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다른 업체에 비해 압도적인 매출을 보이고 있다.

 
DHL의 최고 강점은 글로벌 네트워크다. DHL은 전 세계적으로 220개국 이상의 국가와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또 국제 우편 서비스뿐만 아니라 특송, 항공 및 해상 화물 운송, 육상 운송 등 다양한 운송수단과 최첨단 물류 시스템 등을 갖춘 종합 물류기업으로 불린다.

2위와 3위는 각각 퀘네앤나겔과 DB쉥커다. 유럽 전통 물류기업인 두 회사는 도로•철도 운송을 중심으로 유럽 내륙 운송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퀘네앤나겔은 2011년 매출 221억 달러, DB쉥커는 207억 달러를 기록했다.

일본의 닛폰 익스프레스는 2011년 매출 203억 달러를 기록, 세계 4위에 올랐다. 닛폰 익스프레스는 일본 내 철도 운송 독점권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현재 37개국 380여개 물류거점을 보유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특히 닛폰 익스프레스의 글로벌 비즈니스는 국내 물류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좋은 모델이 된다. 서상범 한국교통연구원 종합물류기업센터장은 “과거 일본 종합상사가 해외에 진출할 때 자국의 물류기업인 닛폰 익스프레스를 끌고 나갔다”며 “이런 과정에서 닛폰 익스프레스가 해외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물류기업도 모기업의 해외 진출에 적극 가담해 글로벌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CH로빈슨(103억 달러)이 5위, 세바로지스틱스(96억 달러) 6위, UPS(89억 달러)가 7위에 올랐다. 국내 물류회사인 현대글로비스(85억 달러)는 2010년 10위에서 2011년 8위로 두 단계 상승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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