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결단과 복합위기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논란 이후 기업들의 자금경색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논란 이후 기업들의 자금경색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내 자금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의 콜옵션 논란이 시장의 불안 심리에 불을 지폈다. 그 결과, 채권금리가 치솟기 시작했고, 기업들의 자금난 우려는 커졌다. 문제는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리더들의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자금경색의 공포가 국내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시작은 채권금리 상승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계속된 기준금리 인상에 채권금리가 덩달아 오르고 있다. 회사채 3년물 금리는 올해 초 2.46%에서 지난 15일 5.34%로 치솟았다. 1년도 안 돼 채권금리가 2배 이상 상승한 셈이다. 최고 금리는 지난 10월 21일 기록한 5.73%였다. 이는 2009년 10월 26일(5.74%)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다. 채권금리의 인상 속도가 그만큼 가파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채권시장을 뒤흔든 원인은 금리상승만이 아니었다. 그 중심엔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돌발변수가 있었는데, 그건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논란이다. 리더의 섣부른 선택도 사태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사태가 시장에 미친 영향을 쉽게 풀어봤다. 

■선택과 가정➊ 레고랜드와 도지사 = 2012년 강원도는 영국의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과 함께 강원중도개발공사(GJC)를 설립하고 레고랜드 개발에 나섰다. 지분율은 강원도 44.02%,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 22.54%였다. 레고랜드 개발 비용 중 2050억원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을 통해 마련했다.

ABCP는 GJC가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했고, 국내 증권사 10곳과 자산운용사 1곳이 매입했다. 리스크가 컸지만 자금을 조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이다. GJC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강원도가 대신 변제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하지만 부진한 수익률에 GJC는 돈줄이 말라갔고, 지난 9월 29일 만기가 다가왔다. 그런데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만기를 하루 앞둔 지난 9월 28일 GJC의 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2050억원에 이르는 GJC의 빚을 대신 갚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라는 발언이 사태를 키웠다. 시장 관계자들이 김 지사의 발언을 ‘지급보증을 선 강원도가 돈을 갚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CP금리가 치솟기 시작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 28일 3.25%였던 CP(91일물) 금리는 지난 15일 5.22%로 상승했다. 김 지사의 발언 이후 한달 사이 1.2 %포인트 이상 올랐다. 김 지사의 섣부른 발언이 채권시장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지사가 회생신청 발언 한달 만인 지난 10월 28일 “본의가 아닌데도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오니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보증채무를 이행하겠다고 밝히고,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설득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사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김 지사가 다른 표현을 썼다면 어땠을까. 김 지사의 말처럼 보증채무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면 시장이 지금처럼 출렁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며 “잘못된 발언에 시장이 충격에 빠졌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의 의견도 비슷하다. “강원도가 GJC 보증채무를 없애는 방법은 없다. 김 지사의 발언은 회생절차를 신청하고, 그에 따른 보증채무를 강원도가 이행하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김 지사의 발언이 시장의 오해를 샀고, 이 때문에 시장이 출렁였다.”

■선택과 가정➋ 흥국생명과 금융당국 = 레고랜드 사태와 함께 시장에 충격을 가한 또다른 요인은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중도상환(콜옵션) 미행사 논란이다.[※참고: 신종자본증권은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매우 길고, 일정한 이자를 주는 채권으로 영구채로도 불린다. 신종자본증권은 콜옵션 행사일이 도래하는 5년을 만기로 여긴다. 빌린 돈을 콜옵션 행사로 미리 갚는 게 일반적이란 얘기다.] 

2017년 11월 흥국생명은 5억 달러 규모의 달러화 신종자본증권(30년 만기)을 발행했다. 발행 5년째인 올해 11월 콜옵션 행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흥국생명은 지난 1일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콜옵션 행사 관행이 깨지자 시장에선 흥국생명의 자본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졌고, 이는 시장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실 나쁜 전례도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2월 우리은행은 달러 후순위채(4억 달러 규모 10년 만기) 콜옵션을 미행사했다. 국내시장엔 폭풍이 몰아쳤다. 

이런 경험이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와 오버랩되면서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럼 금융당국 책임자가 이를 제어했다면 어땠을까. 금융당국은 흥국생명의 콜옵션 행사 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다. 보험사가 신종자본증권을 조기 상환하기 위해선 금감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흥국생명에 “괜찮다”는 메시지만 보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채권시장에 자금이 마르고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섣부른 조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전문가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은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며 “우리은행 사태를 겪은 전례까지 있었지만 (금융당국이) 안일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필요할 땐 금융회사의 팔을 잘만 비틀더니 시장 안정을 위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은 셈”이라며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꼬집었다.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논란 모두 리더의 섣부른 판단이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뉴시스]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논란 모두 리더의 섣부른 판단이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어쨌거나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논란 이후 0.50%대에서 맴돌던 우리나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0.75%(11월 3일)까지 치솟았다. 그러자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물론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CDS 프리미엄은 지난 16일 0.52%로 떨어지며 안정을 되찾았다. 전문가들도 이번 사태가 외환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논란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 건 사실”이라면서도 “채권시장의 불안이 금융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도 “최근 나타난 자금경색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채권금리의 상승에 있다”며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의 콜옵션 논란이 금융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돌발변수가 터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선 작은 불씨가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김동원 전 고려대(경제학) 초빙교수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금융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며 “이런 시기엔 작은 이슈에도 시장이 크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든 지자체의 장이든 기업의 수장이든, 결정권을 가진 리더들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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