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ㆍ열정ㆍ소통의 리더 이순신⓫
서로 공격하기 바쁜 여야
검찰 두고 서로 다른 주장
진영논리에 민생은 관심 밖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자 왜국의 공격에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서인’ 세력이 극렬하게 반대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류성룡 일파의 세력이 커질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를 한다는 높으신 양반들의 사고방식이 왜 그 모양인지 알 수가 없다. 

여당은 야당 대표를, 야당은 권력자의 부인을 공격하고 있다. 사진은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뉴시스]
여당은 야당 대표를, 야당은 권력자의 부인을 공격하고 있다. 사진은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뉴시스]

거북선이 좌수영 앞바다를 몇바퀴 돌자 모여든 구경꾼들이 기뻐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함성 소리를 유추해 보자면 “거북선 만세! 순신 만세!”일 것이다. 녹도만호 정운과 송희립은 “사또, 이런 배가 20척만 있으면 왜구는커녕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겠소!”라며 취한 듯 기뻐했다. 순신의 거북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북선의 철갑 중 중요한 곳에는 철괴鐵塊가 장착돼 있다. 어떤 적선과 부닥쳐도 끄떡없도록 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시없는 군함이었다.

거북선의 자세한 제원을 살펴보자. 길이 113척(1척=23㎝), 어깨 너비 12척, 허리 너비가 25척, 꼬리 너비 11척, 높이 8척, 두께 4촌, 고물은 높이가 10척이다. 또 좌우 어깨에 천자 포혈 하나씩을 뚫었고, 4척 높이의 이물에는 용두龍頭(거북의 머리)를 달았는데 길이 13척에 넓이 3척이다. 그 속에 유황과 염초를 피워 벌어진 입으로 연기를 토해낼 수 있도록 했다. 요즘으로 따지만 연막탄인 셈이다.

배 위 철갑판에는 10자(척) 정도 폭의 통행로를 만들었다. 그 밖으로는 예리한 송곳과 칼날을 세워놔 적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했다. 여기에 짚자리를 덮어 왜군이 송곳과 칼날을 꽂은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꼬리에는 키를 꽂아 배의 방향을 돌리고, 전후좌우에는 구멍 72개를 뚫어 대포와 화전, 그리고 활을 쏠 수 있게 설계됐다.

특히 선체 등짝에는 청색으로 거북무늬를 그려 바다 물결과 흡사하게 보이도록 했다. 일종의 보호색이다. 대포는 2종으로 대완구大碗口와 불랑기佛朗機(유럽식 청동제 화포)다. 대완구의 파괴력은 불랑기의 10배 이상이다. 불랑기의 위력은 왜군이 사용하는 조총보다 10배 강하다.

순신은 왜군이 조총을 사용하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해상전투에서 ‘적들이 조총을 사용하면 아군은 대포로 응전한다’는 전술도 세워놨다. 조선의 무관 장수로 대포의 화력과 제조방식을 아는 이는 전라좌수사 순신, 진주목사 김시민, 울산병사 이각 등 몇몇 사람뿐이었다. 순신은 대포를 비롯한 각종 개량 무기의 생산도 독려해 판옥선에도 배치했다. 

거북선은 여러 번의 화포 성능 실험 과정을 거쳤다. 이를 지켜본 낙안(전남 순천시 낙안면) 군수 심극성沈極星은 이렇게 말했다. “왜군이 침범할 것 같지는 않소. 통신부사 김성일金誠一의 말에 따르면, 풍신수길은 대사를 벌일 인물은 아니라 하오.” 그러자 순신은 “왜군은 반드시 침범할 것이오. 하지만 거북선 20척만 건조해 놓으면 걱정할 일이 없소”라며 자신했다. 

심극성은 거북선의 제원과 순신의 20척 건조 계획을 상세히 기록해 당시 금위대장이자 한성판윤인 신립에게 보고했다. 신립은 북쪽 변방에 있을 때부터 순신이 지혜와 용력을 함께 갖춘 뛰어난 인물이란 점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부랴부랴 서인 쪽 사람들을 찾아갔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자료|더스쿠프]
[사진|더스쿠프 포토, 자료|더스쿠프]

그 자리에 모인 서인들은 “만약 순신의 거북선이 성공하면 류성룡 일파의 세력이 커질 것이오”라며 경계했다. ‘왜국의 공격에 준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서인들이 ‘거북선 건조 반대’를 외친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게 조선 정치인들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동인을 이끌고 있던 류성룡의 추천으로 순신이 고속승진을 할 때 제대로 딴지를 걸지 못했다고 여겼던 터라 서인들은 무작정 순신의 계획에 반대를 앞세웠다. 

결국 신립은 선조에게 “청컨대 수군을 파하고 육군에만 전력하게 하소서”라는 계본(왕에게 보고하는 문서 가운데 가장 위상이 높은 문서)을 올렸다. 수군을 없애야 하는 첫번째 이유로 ‘풍신수길이 침략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공연히 수군을 확장하면 명나라의 의심을 살 수 있다’는 점을 들이댔다.

둘째로 섬나라 왜국의 군사들은 물에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수군은 불리하다는 주장이었다. 차라리 적들을 ‘육지로 유인해 철갑기병으로 쳐부수는 게 상책’이라는 거였다. 따라서 아예 수군을 없애고, 오직 육전陸戰에만 전력하자고 입을 모았다. 그럴듯한 주장이었지만, 속내는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

서인 측 주장은 조정에서 큰 분규를 일으켰다. 그 실체는 당파싸움일 뿐 ‘백성의 안위’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삼면이 바다인 조선에 수군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어불성설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조선에 ‘바다를 마주한 지역’이 얼마나 많은지 전혀 고려치 않은 탁상공론일 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류성룡은 조정에 일어난 풍파를 자세히 적어 순신에게 보냈다. 서간 끝에는 당부의 말도 남겼다. “조정의 인심이 국가보다는 당파 또는 자신을 위함이 많소.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보다 남의 성적을 시기함이 많으니 너무 수군을 확장해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하시오.”

편지를 읽은 순신은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왜구는 60여주州로 나뉘어 상호 정벌의 전쟁을 치렀다. 제후들의 영토가 서로 인접한 관계로 육상전에만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해전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순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 정치권의 다툼을 보는 우리 국민의 생각과 똑같지 않았을까. 지난해 5월 정권이 바뀌었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여는 여대로, 야는 야대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검찰이 야당의 대표를 주야장천 소환하자, 야당은 권력자의 부인을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라면서 특검론을 띄운다. 공교롭게도 여야가 바뀌기 전에도 이들은 ‘검찰’을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쳐놨었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 조선의 조정이 그랬듯, 지금의 여야 정치권도 ‘민생’ 따위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순신 같았으면 지금 어떤 선택을 했을까. 참고로 순신은 조정에서 권력싸움이 벌어지든 말든, 제2호 거북선 건조를 밀어붙였다. 한편으론 그동안 수집했던 전쟁의 여러 전조현상을 정리했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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