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잃은 제주맥주 현주소
주세법 개정, 호재와 악재
PB 수제맥주만 수백가지
자사 브랜드 집중했다면…

제주도를 연상케 하는 하늘색 패키지에 한 모금만 마셔도 제주 감귤향이 느껴지는 맥주…. ‘제주맥주’는 이렇게 제주도라는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내세운 수제맥주로 성장을 거듭했다. 2017년 첫 제품 론칭 이후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고, 여세를 몰아 코스닥 시장에도 상장했다. 하지만 제주맥주의 주가는 공모가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제주맥주의 거품이 빠진 걸까.

국내 수제맥주 업계 1위 제주맥주는 2021년 5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사진=뉴시스]
국내 수제맥주 업계 1위 제주맥주는 2021년 5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사진=뉴시스]

‘제주맥주’는 수제맥주업계의 상징과 같다. 사명에서 보듯 ‘제주’를 앞세워 창업한 지 5년 만인 2020년 5대 편의점(GS25· CU·세븐일레븐(미니스톱)·이마트24)에 모두 입점했다. 이듬해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면서 ‘수제맥주 상장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무형의 성과도 적지 않다. 제주 청년 정규직 채용,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하는 ‘지역가치창업가’로 선정(2020년)되기도 했다. 실제로 제주맥주 양조장은 제주시 한림읍에 있고, 이곳에서 생산하는 대표 제품인 ‘제주위트에일’엔 제주 감귤 껍질을 첨가했다. 제주 바다와 하늘을 연상케 하는 하늘색 패키지와 상큼한 감귤향이 나는 게 특징이다. 

그런 제주맥주가 최근 ‘거품의 늪’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 주가가 긍정적이지 않다. 제주맥주는 2021년 5월 공모가 3200원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는데, 현재 주가는 공모가의 절반 수준인 1505원(2월 1일 기준)에 머물러 있다. 이 회사의 주가가 하락한 이유는 악화한 실적이다. 

제주맥주는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액 192억원을 올리는 데 그쳤다. 전년 동기(210억원) 대비 8.5% 감소한 금액이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전체 매출액이 역성장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만큼 적자는 더 쌓였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적자는 70억원에 이른다. 전년 동기(71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제주맥주 관계자는 “대기업 제조업체 수준의 생산이 가능하도록 사업 초기부터 300억원대 설비 투자를 했다”면서 “미래를 내다보고 단행한 설비 투자에 따른 적자”라고 설명했다.

‘계획된 적자’는 차치하더라도 매출액이 감소세로 전환했다는 건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 주목할 점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실적만이 문제는 아니란 점이다. 

■ 요인➊ 법 개정과 경쟁 과열 = 무엇보다 수제맥주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2013년 61개에 불과하던 맥주 제조면허 수는 2017년 109개, 2021년 189개로 늘어났다.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라거맥주’를 선호하던 한국 소비자가 수제맥주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20년 1월 주세법 개정으로 수제맥주가 가격 경쟁력을 갖추자 시장에 진입하는 경쟁자가 더 늘어났다. 기획재정부는 2020년 1월 주세법을 개정해 맥주에 부과하는 세금의 기준을 가격(종가세)에서 출고량(종량세)으로 바꿨다. 기존엔 수입맥주만 종량세를 적용받아 수제맥주나 국내맥주가 가격 경쟁력을 갖기 어려웠다.

이런 주세법 개정은 제주맥주에도 호재였지만 우후죽순 생겨난 수제맥주 업체들이 유통·제조업체와 콜라보한 PB(Private Brand) 제품을 쏟아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곰표밀맥주(세븐브로이+대한제분+CU)’ ‘진라거(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오뚜기)’ ‘불닭맥주(더쎄를라잇브루잉+삼양식품)’ 등 수제맥주 종류만 수백가지에 달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유통채널의 매대는 한정적인 상황에서 트렌드에 편승한 PB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면서 “제주맥주의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인➋ 편의점 PB의 덫 = 물론 제주맥주도 각종 콜라보를 진행했다. 편의점 GS25부터 치킨 프랜차이즈 BBQ, 금융회사 현대카드 등과 손을 잡았다. 특히 제주맥주가 만든 GS25의 PB 제품 ‘제주백록담에일’ ‘성산일출봉에일’ ‘금성맥주’는 큰 인기를 끌었다. 금성맥주는 2021년 GS25의 수제맥주 판매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렌드에 편승한 PB 제품이 되레 제주맥주의 희소성을 퇴색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제주백록담에일, 성산일출봉에일은 제주를 상징한 지명을 채택했을 뿐만 아니라 제주 특산품인 한라봉(제주백록담에일)을 재료로 넣었다. 금성맥주에도 제주 황금향을 더했다. 이는 제주맥주의 자사 제품인 ‘제주위트에일’ ‘제주펠롱에일’ ‘제주누보’ 등과 이미지가 겹치는 한계를 노출했다.

[사진 | 뉴시스, 자료 | 국세청] 
[사진 | 뉴시스, 자료 | 국세청]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제주맥주는 ‘제주도’라는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선점했지만, 브랜드가 확고히 시장에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조사로선 대규모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PB가 유혹적이겠지만, 자사 브랜드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제주맥주는 물량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롯데칠성음료와 맥주 OEM 생산계약을 체결(2020년 12월)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3분기 자체 공장 가동률은 48.2%에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 43.7%포인트나 하락한 수치다. 제주맥주는 론칭 초기 수제맥주 시장에 불러일으켰던 바람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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