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운명 결정할 3월 주총
당초 무난한 연임 전망됐지만
국민연금 반대란 변수 부딪혀
디지코 전환 성과 훌륭했지만
통신 경쟁력에선 아쉬운 모습
‘구현모 2기 KT’에선 어떨까

KT는 구현모 대표를 차기 주주총회에 추천할 최종 대표 후보로 결정했다.[사진=연합뉴스]
KT는 구현모 대표를 차기 주주총회에 추천할 최종 대표 후보로 결정했다.[사진=연합뉴스]

# KT의 탈통신 전략은 성공했다. 통신사에서 플랫폼 기업으로 팔색조처럼 변신한 모습에 시장은 호평을 쏟아냈다. 그 중심엔 ‘디지털 플랫폼 기업(DIGICOㆍ디지코)’ KT를 선언한 구현모 대표가 있었다. 임기 종료를 앞둔 구 대표의 연임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다. 

# 그런데 변수가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후보 선임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서 구 대표의 발목을 잡아챘다. 여권에서도 ‘부적절한 CEO’라면서 힘을 보탰다. 당장 ‘관치론’과 역풍이 함께 불어닥쳤다. 좋은 성과를 거둔 CEO에게 다시 기회를 주겠다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는 거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가 하강했던 ‘과거 KT CEO 흑역사’도 다시 조명됐다. 이들과 견줘보면 구 대표는 흠잡을 데 없는 경영자라는 얘기다.

# 하지만 구 대표가 모든 걸 잘한 건 아니다. ‘탈통신’엔 성공했지만 정작 본업인 통신에선 민망한 성적표를 기록했다. 그가 임기를 수행할 때 KT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감소했고, 번호이동 실적도 저조했다. 관리 소홀로 네트워크 장애 사고가 터졌을 뿐만 아니라 망 투자가 미흡하단 이유로 주파수도 반납해야 했다. 

# 구 대표의 연임은 올 3월 열리는 KT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KT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더스쿠프가 구현모 대표의 빛과 그림자를 냉정하게 짚어봤다. 


연임에 도전하는 구현모 KT 대표가 험로를 걷고 있다. 올 3월 연임이 유력하단 평가를 받으면서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확정됐지만, 크고 작은 구설에 휘말렸다. 무엇보다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발목을 잡았다.

구 대표가 차기 KT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선임된 지난해 12월 28일, 국민연금이 기금운용본부장 명의로 낸 메시지를 보자. “대표이사 최종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했다. 앞으로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활동 이행 과정에서 이런 사항을 충분히 고려하겠다.” 

구 대표의 연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고, 국민연금은 이런 이유로 3월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어떤 절차가 미흡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업계가 추론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 대표는 대표이사 후보로 오르기 전부터 ‘연임 적격’ 평가를 받았지만, ‘복수 후보 재심사’를 요구했다. 단독 후보 대신 경선을 통해 추가 심사를 받겠다는 거였는데, 이는 국민연금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KT 같은 총수 일가가 없는 기업에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됐다. 

구현모 대표가 취임한 이후 KT의 고객용 휴대전화 회선 수가 감소했다.[사진=뉴시스]
구현모 대표가 취임한 이후 KT의 고객용 휴대전화 회선 수가 감소했다.[사진=뉴시스]

구 대표의 요청대로 KT는 재심사 절차를 밟았다. KT 지배구조위원회는 14명의 사외이사와 13명의 사내후보자를 검토해 심사 대상자를 선정했다. 이어 KT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일곱 차례의 심사 과정을 거친 끝에 구 대표를 최종 낙점했다. 

다만 KT 측은 어느 후보를 어떤 기준으로 심사했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작용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가 아니었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구 대표의 연임을 마뜩잖게 보는 건 국민연금뿐만이 아니다. 여권에선 구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 1월 30일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현황 및 개선방향 세미나’를 주최한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구 대표의 정치자금 쪼개기 후원 논란을 거론하며 “부적절한 CEO가 연임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 대표는 현재 회삿돈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했을 때, 구 대표의 연임을 결정하는 3월 주총에선 팽팽한 ‘표 대결’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그런데도 구 대표의 승리를 예상하는 전망이 많다. 구 대표가 연임하기 위해선 의결권 기준 출석 주주 과반의 찬성이 필요한데, 국민연금이 보유한 KT 지분은 9.95%에 불과하다. 관건은 지분 과반을 점한 소액주주(57.36%)인데, 이들은 구 대표의 연임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 빛-디지코의 성과 = 그만큼 구 대표의 공적을 무시하긴 힘들다. 구 대표가 공식적으로 연임 의사를 밝힌 2022년 11월 9일 KT 주가가 전일 대비 1.36% 상승한 건 그의 존재감을 잘 설명해 준다. 

무엇보다 실적에서 괄목한 성장을 이뤘다. 2020년 구 대표가 조종간을 잡은 KT의 매출은 2019년 24조3420억원에서 2021년 24조8980억원으로 늘어났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44.1%(1조1595억원→1조6718억원) 증가했다. 

2022년에도 KT는 성장에 성공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은 19조670억원, 영업이익은 1조5386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3%, 18.1% 증가한 수치다. KT는 2022년 연간 기준으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공산이 크다. 

만족할 만한 실적 성적표의 근간엔 ‘디지털 플랫폼 기업(DIGICOㆍ디지코) 전환’이 있다. 구 대표는 취임 첫해인 2020년 디지코 전환을 선언하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기술을 활용해 기업간 거래(B2B) 사업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게 될까’란 시선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전략은 시장에 먹혔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별도 서비스 전체 매출에서 디지코와 B2B 매출 비중은 40.9%에 달했다. 그 결과, 구 대표는 다양한 수익모델을 발굴해 KT를 ‘통신비로 먹고사는 구조’에서 벗어나게 한 일등공신이란 별칭을 얻었다. 

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케이블방송 사업자인 ‘현대HCN’(2020년), 글로벌데이터 전문기업 ‘엡실론’(2021년), 독서 플랫폼 기업 ‘밀리의서재’(2021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여러 기업과 투자 유치, 지분 교환을 통해 적극적인 협업을 꾀했다. 

이런 성과 때문인지 내부 임직원도 구 대표의 연임을 밀고 있다. 구 대표는 30여년간 KT에 몸담아온 정통 KT맨이다. 2002년 민영화 이후 수난으로 얼룩진 KT CEO의 잔혹사를 고려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다. 과거 KT의 CEO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함께 교체됐다. 역대 정부는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를 내리꽂듯 KT의 수장을 갈아치웠다. 이 과정에서 남중수 전 사장, 이석채 전 회장, 황창규 전 회장 등은 검경의 수사를 받았다. 

KT 내부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또 있다. 과거 낙하산으로 불리던 CEO들은 인력 구조조정이나 자산 매각을 통해 KT 임직원의 고용 안정을 위협했지만 구 대표는 ‘인위적 감축’ 없이 체질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T의 제 1노조가 성명을 통해 “지난 3년간의 성과를 종합하고, 앞으로 더욱 큰 도약을 위해 구 대표의 연임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적도 좋고, 내부 평가도 괜찮으니 주식시장도 구 대표에게 우호적이다. 구 대표가 정식 취임한 2020년 3월 30일 1만9950원에 출발한 KT 주가는 올해 1월 마지막 거래일엔 3만5050원으로 마감했다. 75.69%의 상승률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 수익률(41.18 %)을 크게 웃돌았다. 그사이 5조원 안팎이던 KT의 시가총액은 9조원대로 80% 넘게 불어났다. 

경쟁사와 견줘도 두드러진다. 같은 기간 SK텔레콤은 53.02%, LG유플러스는 6.32% 커졌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구 대표의 업적은 차기 CEO 경선 과정에서 ‘어차피 대표는 구현모’란 말이 나오는 이유였다. 국민연금의 연임 반대를 ‘관치’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그런 관점에서 터진 거다. 최고의 성과를 낸 CEO에게 기회를 더 주는 게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하지만 구 대표의 디지코 전략엔 빛만 있는 게 아니다. KT의 본업인 이동통신의 성적표가 너무 나빴다는 건 냉정하게 살펴볼 만한 점이다. 

■ 그림자-통신사의 굴욕 =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매달 발표하는 이통3사와 알뜰폰의 이동통신 가입회선 수 추이를 살펴보자. 구 대표가 취임한 2020년 3월 KT에 가입한 전체 이동통신 회선 수는 1833만개였는데, 지난해 11월 기준으론 1756만개로 4.1%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SK텔레콤은 6.0% (2893만개→3069만개), LG유플러스는 11.3%(1432만개→1595만개), 알뜰폰은 67.1%(756만개→1263만개) 늘어났다. 

물론 이 통계엔 기준 변경에 따른 ‘착시’가 존재한다. 2020년 10월 과기부가 차량ㆍ원격 관제용 회선을 각 통신사 회선이 아닌 알뜰폰 회선으로 변경했는데, 이 과정에서 KT의 관제용 회선 147만여개가 통째로 알뜰폰 회선으로 빠져버렸다. KT 관계자는 “당시 통계 기준이 바뀌면서 관제용 시장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KT의 회선이 줄었다”면서 “이를 감안해서 보면 KT의 전체 회선 수 역시 오히려 증가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KT의 이런 입장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KT의 이동통신 실적이 우수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매달 수만원의 통신비를 내는 ‘고객용 휴대전화 회선 수’도 구 대표의 재임 기간에 감소했다. 2020년 3월 1422만개였던 KT의 고객용 휴대전화 회선 수(알뜰폰 제외)는 지난해 11월 1381만개로 2.9% 줄었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같은 기간 3.2%의 가입자가 감소한 SK텔레콤보단 선방했지만, 0.4% 늘어난 LG유플러스엔 못 미쳤다. 구 대표가 CEO에 오른 후 KT를 이탈한 이동통신 고객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번호이동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전체 인구보다 가입자가 많다. 그래서 이 시장에선 신규 유치보다 가입자를 뺏는 경쟁이 치열한데, 여기서도 KT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20년 전체 번호이동 실적에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각각 167만명, 131만명의 번호이동 고객을 모집했는데, KT는 117만명에 그쳤다. 알뜰폰이 모은 번호이동 실적(119만명)에도 밑도는 수치다. 

이듬해인 2021년에도 KT의 번호이동 실적은 가장 저조했고, 지난해 11월 누적 기준으론 차이가 더 벌어졌다. 알뜰폰이 179만명의 번호이동 실적을 기록하는 사이 SK텔레콤(96만명)과 LG유플러스(74만명)는 선방했는데, KT는 66만명을 모으는 데 머물렀다. 

KT는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주력 서비스로 떠오른 5G 가입자 모객에서도 압도적인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2020년 3월부터 2022년 1월까지 5G 가입 회선 수 증가율은 SK텔레콤이 396.2%로 가장 가팔랐고, KT(367.4%)는 그다음이었다. 

정부가 진행한 ‘2022년 통신서비스 커버리지 점검 및 품질평가’에서도 5G 평균 다운로드 속도와 커버리지 항목에서 SK텔레콤이 KT보다 우위를 나타냈다. 

KT는 지난해 11월 LG유플러스와 함께 28㎓ 대역의 5G 주파수를 회수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망 구축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통3사의 5G 망 투자 실적에 점수(100점 만점)를 매겨 공개했는데, KT는 SK텔레콤(30.5점), LG유플러스(28.9점)보다 낮은 27.3점을 받아 꼴찌를 기록했다. 세 회사 모두 기준점인 70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민망한 성적이었지만, 이중에서도 KT의 투자 실적이 가장 미흡했다는 얘기다. 

지난 2021년 10월 25일 KT 통신망이 전국적으로 마비됐다.[사진=뉴시스]
지난 2021년 10월 25일 KT 통신망이 전국적으로 마비됐다.[사진=뉴시스]

2021년 10월 25일엔 대형 사고를 쳤다. 전국적으로 40분~1시간 20분 KT 유ㆍ무선 인터넷이 마비됐다. 모바일 인터넷은 물론 통신망을 이용한 재택근무, 카드결제 서비스와 각종 앱ㆍ온라인 플랫폼 등이 사실상 ‘먹통’이 돼 사회적 파장이 심각했다.

나중에 드러난 사고 원인은 ‘관리 부실’이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부품 교체 작업을 진행하던 KT 협력사 직원의 사소한 실수였지만, 점검을 맡은 KT 본사 직원의 태만이 일을 키웠다. 야간에 해야 할 작업을 낮에 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다. 

당초 KT 측이 승인한 작업 시간은 26일 새벽 1~6시였는데, 협력업체가 이보다 앞선 25일 점심시간에 무분별하게 작업을 진행하면서 피해가 확산했다. 관리자 없이 협력업체 직원이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도 문제였다. KT의 네트워크 사고는 올해 초에도 발생했다. 네트워크 장비 오류로 부산ㆍ울산ㆍ경남 일부 지역에서 KT 인터넷 접속 이상이 30분간 이어졌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가 디지코 전환을 선언한 뒤 KT가 탈통신 기류에서 가장 두드러진 실적을 거뒀고, 이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요소”라면서도 “다만 통신기업으로서의 KT를 봤을 땐 구 대표가 어떤 경쟁력을 보여줬는지는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통신 경쟁력 회복은 시장의 예상대로 구 대표가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구현모 2기 KT’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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