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이 주목하는 박병엽 DNA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AT&T가 주목하고, IT전문지 시넷이 인정한다. 글로벌 반도체 칩 제조사 퀄컴은 두번이나 투자를 단행했다. 국내보다는 글로벌 시장에서 더 인정받는 기업,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 이야기다.

▲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퀄컴으로부터 두번의 투자를 받았다. 박 부회장의 배짱경영이 만들어낸 결과다.
2006년, 승승장구하던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이 고개를 숙였다. 미국 모토로라의 야심작 ‘레이저폰’이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던 팬택은 직격탄을 맞았다. 덤핑으로 물건을 내놔도 팔리지 않았다. 재고가 쌓였고,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해 팬택은 3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설상가상으로 시중은행들이 자금줄을 조였다. 대출금 2000억원을 회수한데 이어 2000억원에 달하는 신용거래를 중단했다. 말 그대로 위기였다. 연 매출 2조원에 이르던 팬택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재무개선이 시급했다. 빚을 갚는 게 급선무였다. 2009년 팬택은 퀄컴에 빚을 진 상태였다. 퀄컴의 칩 로열티를 지불하지 못해서다. 미지급액은 7626만 달러(약 824억원). 워크아웃 기업 팬택에겐 부담스런 금액이었다. 팬택 실무진은 고작 로열티를 깎거나 지급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방법을 구상했다.

그때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나섰다. 배짱 좋게 퀄컴에 제안했다. “우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바람에 퀄컴에 줄 돈이 없으니 그 돈을 우리한테 재투자해라.” 퀄컴으로선 황당한 제안이었을 게다. 팬택 직원조차 “박병엽 부회장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라며 혀를 내둘렀으니 말이다.

퀄컴은 글로벌 반도체 칩 제조업체다. 애플ㆍ삼성ㆍ노키아ㆍLGㆍ모토로라ㆍHTC 등 세계적인 휴대전화 제조업체와 거래한다. 이들은 연간 1억만대 넘게 휴대전화를 생산한다. 연간 생산규모가 2000만대 불과한 팬택과는 비교가 안 된다. 퀄컴이 굳이 박병엽 부회장의 제안을 들어줄 필요가 없었다. ‘박병엽도 끝이구나’라는 말이 시장에 나돌았다.

 

박병엽의 배짱경영 통하다

예상은 빗나갔다. 퀄컴은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팬택의 제안을 수용한 것이었다. 그 결과 퀄컴은 팬택의 지분 11.46%를 챙겼다. 2대주주로 뛰어올랐다. 퀄컴의 출자전환은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글로벌 기업이 팬택의 기술력과 성장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두 회사는 지금까지도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2013년 1월 팬택은 퀄컴으로부터 두번째 투자 2300만 달러(약 260억원)를 받았다.

팬택은 독특한 회사다. 국내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인정받는다. 팬택의 휴대전화 품질경영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팬택은 미국 이동통신사업자 AT&T가 실시하는 거래업체 종합평가(SPR)에서 5회 연속, 20개월 동안 1위에 올랐다.

SPR은 모바일 제조사의 제품품질과 사후 서비스 등을 평가하는 제도다. 지난해 미국시장에 진출한 팬택은 삼성과 애플을 제외한 휴대전화 제조사 중 유일하게 미국 2대 이동통신사(버라이즌•AT&T)를 통해 제품을 공급한다.

해외 언론도 팬택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올 1월 미국 IT전문매체 시넷(CNET)은 지난해 미국시장에 진출한 팬택의 휴대전화 성공을 다뤘다. 시넷은 팬택의 성공 비결을 경쟁사 제품 대비 뒤지지 않는 사양을 갖췄으면서도 100달러(약 10만원) 안팎의 가격이라고 꼽았다. AT&T가 주목하고 시넷이 인정한 팬택의 비결은 뭘까.

원래 팬택은 피처폰의 강자였다. 2007년 출시한 ‘네온사인폰’은 휴대전화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폴더 전면에 탑재된 49개의 발광다이오드(LED)가 빛을 낸 디자인이 여심을 흔들었다. 네온사인폰은 KTF 단독모델로 공급되자마자 40만대가 팔려나갔다. 출시 6개월 만이었다.

팬택은 상승곡선을 탔다. 그해 10월 출시된 ‘돌핀폰’과 ‘레인폰’이 각각 60만대, 75만대 팔렸다.

 

피처폰 시장에서 팬택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브랜드 스카이(SKY) 역할이 컸다. 팬택은 2005년에 스카이를 인수했고, 내놓는 제품마다 대박을 쳤다. 고급화 전략에 심플하면서도 멋스런 디자인이 인기몰이 요인이었다. 독특한 콘셉트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 소비자를 사로잡은 비결이었다. 한손에 쏙 들어오는 그립감도 일품이었다. 이를 위해 팬택은 휴대전화 가장자리 부분을 둥글게 하는 ‘라운드 처리’를 적용했는데, 이것이 단말기 전체의 곡선미를 살려줬다. 팬택이 피처폰 시장에서 20%대의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14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한 것도 ‘스카이’의 매력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이 많다.

팬택은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비해 작은 기업이다. 작은 만큼 의사결정이 빠르다. 이는 위기를 신속하게 돌파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삼성전자ㆍLG전자와 마찬가지로 ‘아이폰 쇼크’를 겪은 팬택이 어떤 업체보다도 빨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0년 팬택이 피처폰 시장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스마트폰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작지만 빠른’ 기업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실제로 팬택은 사안의 경중이나 긴급여부 따라 문자 혹은 유선으로 보고할 수 있다. 대면보고가 원칙이 아니라는 얘기다. 사원이 경영진에 보고할 때도 있다. 박병엽 부회장이 실무진을 만나는 일도 많다. 형식보단 업무 효율을 먼저 따진다는 이야기다. 사내메신저를 통한 전체답장도 마찬가지다. 사안에 대한 답장이 특정인에게만 가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발송된다. 언제든 새로운 의견이 개진될 수 있도록 만든 조치다.

실무진 직접 만나는 그룹 부회장

▲ 팬택은 어려울 때 빛난다.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14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빠른 의사결정은 알찬 열매를 맺었다. 팬택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 지 1년 만인 2011년 국내시장 점유율 15%를 달성했다. 빠른 ‘캐치업(catch-up•추격전략)’이 통했다. 그해 최고의 히트작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베가 레이서’는 130만대 이상 팔렸다.

팬택은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서 2위 자리를 지키던 LG전자를 빠르게 따라잡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부문에서 팬택과 LG전자의 2위 싸움이 치열해졌다. 글로벌 기업 LG전자에겐 상처였을지 몰라도 팬택으로선 의미 있는 성과다.

개발자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팬택의 강점이다. 올 2월 출시된 베가 넘버식스는 풀HD 6인치급을 탑재했다. 동시에 한손에 들 수 있도록 스마트폰 후면에 터치기능을 넣었다. 셀프카메라를 즐겨 찍는 젊은 여성 소비자를 위한 기능이다.

리스크를 무릅쓰고 도전하는 정신은 팬택의 내성耐性을 키웠다. 이런 내성은 팬택의 DNA에 ‘성공’이란 콘셉트를 넣었고,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2010년 박병엽 부회장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를 향해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휴대전화는 내가 더 잘 안다. 난 수십년을 이것만 만들어왔다. 잡스와 한판 승부 벌이겠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허황된 큰소리가 아니었다. 팬택과 박 부회장의 DNA가 원래 그렇다. 그들의 쉼 없는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스마트 전장戰場 복판에서…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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