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로 경쟁력 높이는 제일모직ㆍLG패션

다양한 브랜드가 필요한 패션기업의 고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양한 브랜드다. 브랜드가 겹치면서 실적이 악화돼서다. 많은 패션기업이 브랜드를 구조조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타깃층과 장단점을 일일이 분석해 정리 브랜드를 결정하는 일은 난제 중 난제다. 패션기업이 IT를 입고 있는 까닭이다.

▲ 제일모직과 LG패션은 패션산업에 IT를 도입, 경영혁신을 이루고 있다.
#2002년 패션업체 A기업은 여성 브랜드 B를 론칭했다. 캐주얼과 영캐주얼의 틈새를 공략한 브랜드였다. A기업의 전략은 통했다. 캐주얼과 영캐주얼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단숨에 유명 브랜드로 떠올랐다.

A기업은 여세를 몰아 남성복과 이너웨어도 내놨다. 2007년에는 베이직 캐주얼을 선보이며 토털 패밀리 브랜드를 구축했다. 브랜드 확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9년 청바지 브랜드에 이어 액세서리를 론칭하더니 2011년에는 키즈와 신발 브랜드를 출시했다. 지난해엔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글로벌 브랜드를 출시했다. B브랜드를 론칭한 후 11년 동안 선보인 하위 브랜드는 10개. 1년에 1개꼴로 새 브랜드를 선보인 셈이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브랜드가 다양해졌지만 영역이 확실하지 않은 단점이 노출됐다. 요컨대 C브랜드와 B브랜드는 캐주얼 부문에서 겹치는 게 많았다. 브랜드를 무리하게 늘린 후유증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방대해진 브랜드를 정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브랜드 정리 기준도 마땅치 않다”고 털어놨다.하루가 다르게 유행이 돌고 도는 패션계. 매일 옷을 갈아입는 패션계에도 깨지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패션기업은 패션으로 승부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패션기업은 패션으로 시장을 공략한다. 마케팅과 이미지보다 패션 콘셉트가 더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패션기업은 다양한 브랜드를 전개한다. 다채로운 패션을 보여줄 수 있어서다. 브랜드 확장은 남성ㆍ여성ㆍ캐주얼ㆍ키즈ㆍ스포츠ㆍ골프ㆍ액세서리ㆍ신발 등을 가리지 않는다. 그 결과 패션기업은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리게 됐다. 사업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패션기업이 브랜드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또 있다. 브랜드가 많을수록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다. 사세社勢를 확장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패션기업의 이런 움직임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했다. 브랜드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수익성도 떨어졌다. 브랜드 정리가 필요하다는 시그널이 울린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뾰족한 브랜드 정리방안이 없다는 거였다. 정리기준도 마땅치 않았다. 골머리를 앓던 패션기업은 흥미로운 수단을 꺼내들었다. IT였다.

국내 패션계 양대산맥인 제일모직과 LG패션은 패션사업에 IT를 도입하고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IT 전문가를 영입하고, 각 그룹의 관계사를 시스템 구축 과정에 투입하고 있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브랜드 겹쳐

제일모직은 올 4월 패션사업의 쇄신작업에 들어갔다. 윤주화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윤주화 사장은 지난해 12월 제일모직 패션부문 대표로 선임됐다. 1978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는 경영관리ㆍ재무통으로 통한다. 2009년 최고재무책임자(CFP)인 경영지원실장을 지냈다. 눈에 띄는 점은 그가 삼성전자의 글로벌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구축을 주도한 것이다. ERP는 재무ㆍ회계ㆍ생산ㆍ판매ㆍ재고ㆍ인사 등 전사적인 데이터를 일원화해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업계에선 그의 이런 이력이 제일모직 패션사업 부문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고 내다본다. 삼성전자에서 쌓은 IT경영 노하우를 패션사업에 접목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윤 사장 부임 후 제일모직은 프로세스 혁신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시스템 자동화로 사업 효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의류 사업을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게 골자다. 제일모직은 30여명을 자체적으로 선발해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시스템 구축은 삼성 SDS의 솔루션을 받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1사업부(맨즈ㆍ레이디스ㆍ골프ㆍ키즈)와 2사업부(아웃도어ㆍ바이크리페어숍ㆍ액세서리)로 나뉘었던 조직을 통합했다. 브랜드 정리작업도 한창이다. 론칭한 지 14년째인 캐주얼 브랜드 ‘후부’를 정리한데 이어 여성복 ‘데레쿠니’ 사업의 철수를 결정했다. 대신 성장성이 높은 아웃도어와 SPA 브랜드에 집중하기로 했다.

LG패션도 IT를 통해 경영혁신을 꾀하고 있다. LG패션은 2009년 관계사인 LG CNS를 통해 ERP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어 2010년 핵심인력을 선발해 프로세스 혁신을 위한 PI(Process Innovation)팀을 신설했다. PI팀은 IT를 활용해 시장전략을 다시 세웠다. ‘명품을 명품답게’ 전략이었다. PI팀은 먼저 신사복을 입는 소비자의 욕구를 분석했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소비자 대부분이 자신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신사복을 입는 순간에는 진짜 ‘신사’가 되고 싶어한다는 거였다. LG패션은 그 점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이탈리아 디자인 업체와의 협력 체결이다.

LG패션은 브랜드 마에스트로와 헤지스의 고급화를 위해 이탈리아에서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을 했다. 고급 소재와 새로운 패턴을 사용해 기존과 제품과 차별화를 꾀했다. 그 결과 마에스트로ㆍ닥스ㆍ헤지스는 LG패션의 주력 브랜드로 거듭났다. LG패션 관계자는 “PI팀의 IT를 활용한 분석이 신사복 명가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LG패션의 전략은 실적향상을 이끌었다. 2010년 하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한 529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30% 늘어난 588억원, 당기순이익은 23% 증가한 437억원을 달성했다. 부채비율 역시 29%로 재무구조가 탄탄해졌다.

▲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사진 왼쪽)과 김신홍 LG패션 본부장은 IT를 패션 사업에 도입하는 경영혁신으로 브랜드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패션과 IT 만남으로 사업 효율성 높여

효과를 톡톡히 본 LG패션은 PI팀을 경영혁신본부로 확대개편했다. 국내 최초다. 경영혁신본부장도 지난해 4월 새로 발탁했다. 삼성전자 출신으로 IT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신홍 대상그룹 전 전무를 본부장에 앉힌 것이다. 김신홍 본부장은 인적관리와 경영효율 개선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신홍 본부장을 필두로 구성된 경영혁신본부는 최근 사업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재검토하기 위해서다. 올해 적자에 시달리는 중국 상하이上海법인과 베이징北京법인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중국에서 신사복 TNGT와 아웃도어 라푸마의 매장수는 대폭 늘었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패션업계 양대산맥인 제일모직과 LG패션의 IT 도입은 패션업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이 작업이 성공한다면 패션업계의 경영 트렌드가 바뀔 것이다. IT를 통해 소비자의 성향을 즉각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입증되기 때문이다. 패션, IT를 입었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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