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사업 진출한 패션그룹형지

패션그룹형지가 유통시장에 뛰어들었다. 쇼핑몰 ‘바우하우스’로 저성장에 돌입한 여성복 사업에 성장동력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중년층 여성복 패션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종합패션유통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란 전망이 있는 반면 가두점 경험만으로 승부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 패션그룹형지는 2008년 부산의 복합쇼핑몰을 매입하면서 유통사업을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패션그룹형지의 최근 행보가 공격적이다. 신규 브랜드를 연달아 론칭한 데 이어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선 것이다. 2010년 3월 첫 여성 전용 아웃도어 ‘와일드로즈’를 선보였고, 2011년 여성 중장년 SPA 브랜드 ‘CMT’를 내놨다. 지난해 8월엔 두 번째 아웃도어 브랜드인 ‘노스케이프’를 론칭했다.

인수합병(M&A)도 적극적이다. 형지는 지난해 4월 코스닥 상장기업인 우성I&C를 인수했고, 올 9월엔 학생복으로 유명한 에리트베이직을 사들였다. 우성I&C는 브랜드 ‘본’ ‘예작’ 등을 거느린 남성복전문기업이고, 에리트베이직은 학생복 ‘엘리트’ 이외에 캐주얼 ‘비토이’ 스포츠웨어 ‘엘케이스포츠’ 유니폼 ‘월비’를 보유한 종합패션업체다.

2008년부터 유통사업 준비

흥미로운 것은 여성복 중장년 브랜드를 전개하는 형지가 복종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사들였거나 론칭한 신규브랜드는 대부분 아웃도어와 남성복이다. 현재 형지가 보유한 브랜드는 13개다.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형지는 올 4월 박상돈 코데즈컴바인 회장의 개인 소유 건물이었던 쇼핑몰 ‘바우하우스’를 인수했다. 장안동 바우하우스는 올 8월 15일 오픈했다. 쇼핑과 문화생활이 가능한 패션몰로 지하 1층에서 지상 15층으로 구성됐다. ‘크로커다일레이디’ ‘샤트렌’ ‘올리비아하슬러’ 등 자사브랜드뿐 아니라 영캐주얼ㆍ아웃도어ㆍ뷰티숍 등이 입점했다.

형지 관계자는 “동대문구ㆍ중랑구ㆍ광진구 일대 110만명의 거주자를 소비자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 업계에서는 형지가 오래전부터 유통사업을 준비해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근거는 2008년 형지가 매입한 부산의 건물과 부지다. 형지는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지하철 하단역 근처에 2805㎡(약 848평) 부지를 확보한 뒤 유통업 진출을 검토해왔다. 부산 사하구는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고향이다.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건물은 지상 15~29층 규모로 총 면적만 4만2900㎡(약 1만2977평)에 달한다. 멀티영화관ㆍ뷔페ㆍ병원ㆍ패밀리레스토랑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준공 예정일은 2015년 10월이다. 이 복합쇼핑몰의 장점은 지하철 사단역과 바로 연결된 것이다. 이런 차에 형지가 올 4월 장안동 바우하우스를 본래보다 저렴한 777억원에 인수하게 됐고, 유통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업계에서는 형지의 적극적인 행보를 외형 확장을 위한 전략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형지의 매출액은 연간 4000억원(계열사 제외)이다. 문제는 영업이익인데 2009년 320억원이었던 실적이 지난해 127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무려 51%가량 감소했다. 실적이 하락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경쟁사의 여성복 브랜드 등장으로 시장이 저성장에 돌입한 것이란 분석이 강하다.

형지가 이를 만회하고자 ‘유통사업 진출’이라는 카드를 꺼냈다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부산 복합쇼핑몰 착공에 들어간 것도 성격이 유사한 브랜드를 중복 투자하기보다는 유통사업을 강화해 브랜드와 유통 간의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올 8월 바우하우스 개점행사에 참석한 최병오 회장은 “유통사업은 형지의 또 다른 도전”이라며 “2014년 부산 하단 쇼핑몰과 괴정 신사옥 신축을 계획하고 있는데 좋은 매물(바우하우스)이 나와 예정보다 일찍 진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번 바우하우스 오픈으로 그룹 매출 1조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너인 최병오 회장의 의지가 강하다 보니 회사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유통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인력을 보강한 것이 대표적이다. 형지는 롯데쇼핑 이사 출신인 권경렬 부사장을 올해 영입했다. 권 부사장은 유통업에서만 20년 넘게 일한 베테랑으로 상권분석ㆍ상품기획ㆍ마케팅 분야에서 정평이 나있다. 롯데백화점 광복점 개장을 주도한 전력이 있다. 또 이랜드 출신 MD 김성길 부장을 바우하우스 실무진으로 배치했다.

오래전부터 준비를 했지만 업계 반응은 부정적이다. 여성복 패션기업인 형지가 유통사업을 하기엔 한계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바우하우스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눈에 띄는 쇼핑몰이다. 쇼핑몰 치고 규모가 작고, 접근성이 떨어진다. 바우하우스는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에서 약 1.3㎞ 떨어졌다. 바우하우스 3㎞ 근방에는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이 있다.

형지도 바우하우스가 쇼핑몰로써 접근성과 집객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내세운 전략이 ‘지역밀착형 쇼핑몰’이다. 형지는 최근 장안동 행사인 ‘세계거리춤축제’를 협찬했다. 지역주민의 발걸음을 유도하고자 10월 12일부터 31일까지 초특가 행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앞으로 바우하우스의 열세를 극복할 대안이 현재로서는 묘연하다는 것이다. 바우하우스 입점 브랜드 관계자는 “지역상권이기 때문에 주로 지역주민에 의해 매출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런 유형의 매출 구조로는 쇼핑몰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바우하우스를 운영하는 형지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가두점에서 중장년 여성복 브랜드를 전개해온 경험과 노하우다. 1996년 론칭한 여성복 브랜드 ‘크로커다일레이디’는 여성 브랜드 최초로 매출 3000억원대를 돌파했다.

그런데 이런 장점이 유통시장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가두점에서 주로 여성복을 전개한 경험밖에 없는 형지로써는 남성복ㆍ캐주얼ㆍ아웃도어ㆍ키즈ㆍ생활가전ㆍ외식업 등 전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MD를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형지의 과거 유통전략은 아파트 밀집지역이나 재래시장과 같은 B급상권을 공략해 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파는 것이었고, 다행히 시장에서 통했다”며 “이런 전력이 결과적으로 접근성과 집객력이 떨어지는 바우하우스를 선택하게 한 요인이 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패션그룹형지 관계자는 “유통사업에 유능한 전문인력이 모였고, SPA 브랜드와 로드숍 코스메틱 브랜드, 아웃도어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양한 연령층의 지역주민이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고향 부산에서 복합쇼핑몰 도전

업계의 평가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형지의 저력을 간과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바우하우스의 약점을 잘 극복하면 당장은 손해를 볼지라도 부산 복합쇼핑몰에서는 활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진짜 승부처는 ‘바우하우스 인 부산’이라 불리는 복합쇼핑몰이라는 것이다.

▲ 형지의 경쟁력은 가두점에서 쌓은 중년층 여성복 브랜드 전개 노하우다. 그런데 이것이 유통사업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월 15일 바우하우스 오픈식에 참석한 전성철 IGM 세계경영연구원 회장은 “오랜 기간 패션사업을 해오면서 경쟁사의 동향을 꿰고 있고 이를 역으로 유통업에 활용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며 “이를 테면 경쟁사의 모피코트 재고가 많이 남았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면 형지의 유통채널을 통해 싼값에 재고를 소진하는 식이다”고 말했다.

“평생 남보다 반의반 발자국만 먼저 가겠다.” 최병오 회장이 평소 자주하는 말이다. 그의 명함에 이 말이 좌우명으로 새겨져 있을 정도다. 열 발자국도, 한 발자국도 아닌 반의반 발자국. 최병오 회장이 선택한 바우하우스의 지역밀착형 전략이 통하면 반의 반을 앞서갈 수 있다. 목적지는 그의 고향 ‘부산’이 될 것이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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