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선 샘표 사장의 몰입경영학

그는 오너 CEO지만 돈 많은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주주자본주의는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샘표는 67년 된 식품기업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발효식품인 장류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샘표는 국내 최장수 식품 브랜드이기도 하다. 샘표는 창립 이래 감원을 위한 구조조정도, 노사분규도 겪지 않았다. 창업주인 고 박규회 회장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을 떠나기 전 갖고 있던 현금에, 은행 예금까지 찾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우리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한 그의 말대로 샘표 직원들은 서울 수복 후 돌아와 회사를 재건했다. 이 회사 CEO는 3세 오너 경영인인 박진선(63) 사장. 박 사장은 공학도 출신의 유학파 철학박사이다. 이 시대 철인哲人 CEO는 어떤 고민을 할까?

✚ 기업을 하는 목적이 뭔가요?
“돈을 벌려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을 써 가면서 기업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우리가 속한,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겁니다. 그게 꼭 한국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 회사의 목적을 그렇게 설정한 탓에 성장이 더뎠을 수도 있나요?
“그랬을 수도 있죠. 우리나라는 기업도 규모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기업인들이 심지어 돈을 못 벌더라도 규모를 키우려고 합니다. 반면 서양에서는 이익, 돈 많이 버는 걸 더 중시하죠. 그런데 기업을 하다 보니 규모도 돈도 그렇게 중요한 거 같지 않습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벌면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넓어지기는 합니다. 하고 싶어도 일정한 규모가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죠. 그러나 돈이든 회사의 규모든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대기업 총수가 여럿 구속됐는데 일부는 규모에 대한 망상에 젖어 자초한 일이라고 봐요. 사실 저도 처음 경영을 맡았을 땐 돈 버는 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영 재미가 없더라고요. 내가 간장 장사 하겠다고 이 회사 경영을 맡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저부터 회사 일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구성원들도 행복해지려면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느낄 때 행복합니다. 지역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것도 그래야 구성원들이 행복하기 때문이죠.”

 
✚ 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의 기여와 돈벌이를 양립시킬 수는 없나요?
“지역사회에 꾸준히 많은 기여를 하다 보면 그게 이익으로 돌아올 거로 저는 봅니다.”

샘표는 지난해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알리시아요리과학연구소와 손잡고 한국의 전통 장을 유럽 음식에 활용하기 위한 ‘샘표 스페인 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스인 장과 잘 어울리는 유럽 요리 레시피를 개발하는 게 목적이다. 한국 장으로는 샘표가 자체 개발한 액상 조미료 연두를 사용했다. 콩을 천연 발효시켜 만드는 연두는 화학조미료인 MSG(글루탐산나트륨)를 첨가하지 않은 자연 조미료다.

규모에 대한 총수의 망상 구속 자초

✚ 스페인 장 프로젝트의 의의는 뭔가요? 성과는 어떤가요?
“세계적으로 요리과학연구소는 스페인의 알리시아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요리하는 과정에 과학자를 참여시켜 요리 기술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합니다. 맛에 대한 평가는 셰프가 하고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음식을 대상으로 이렇게 협업을 해 150개의 레시피를 만들었습니다. 연두를 사용해 원래 음식보다 더 맛있어진 것들만 고른 겁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정리가 됐고, 이것저것 배우는 게 많았죠. 밖에 나가서 보니 한국의 장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더라고요. 이제 한식을 대상으로 같은 작업을 하고 있고 내년엔 중국 음식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할 겁니다.”

✚ 연두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나요?
“좀 창피한 이야기인데 우리가 사 먹는 간장이 대부분 일본식 양조 간장입니다. 일본식 간장은 콩과 밀을 50대50으로 넣어 만드는데 맛과 향, 그리고 색이 너무 강합니다. 일본식 간장의 한계죠. 이 한계를 뛰어넘는 게 바로 한식 간장 즉 조선 간장입니다. 강하지 않고 은은한 맛이라 식재료의 본래 맛을 살려주죠. 그래서 우리끼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하는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음식의 맛을 더 좋게 만들기 때문이죠. 우리 입맛이 양조간장에 길들여져 그렇지 한국 음식엔 한식 간장이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진짜 맛있는 식당은 대부분 한식 간장을 씁니다. 서양에서도 수준 높은 요리사들은 써 보고 나서 일본식 간장보다 낫다고 평하고, 한식 간장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두는 엷은 색의 한식 간장인데 나트륨의 함량을 30% 이상 줄인 소금의 대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양념을 안 넣어도 되기 때문에 원가도 절감되죠. 무엇보다 음식에 MSG와 설탕을 막 넣으면서 망가진 우리 입맛을 회복해 줄 겁니다. 스페인 셰프들과 작업할 때도 반응이 좋았어요. 굉장히 중요한 제품을 개발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여태 없던 제품인 연두에 대해 어떤 사람은 매직 소스라고 하던데, 저는 세계적인 소스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두는 한식 간장의 흐름에서 나온 거라 외국 기업이 따라 할 엄두를 내기가 어려워요. 아무튼 세계의 거의 모든 음식에 사용할 수 있어 타바스코 소스나 기꼬망보다 더 많이 팔 수 있을 거로 저는 봅니다. 물론 마케팅을 잘해야죠.”

우리가 일본식 양조 간장을 먹게 된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콩을 발효시키려면 미생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콩만 넣으면 미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이때 밀을 같이 집어넣으면 미생물이 탄수화물인 밀을 먹고 자라 콩의 단백질을 속성으로 분해한다. 일본은 문제를 이렇게 풀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 밀이 있었기에 나온 해결책이기도 하다. 간장을 대량생산하면서 우리가 이 기술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콩만 대량으로 발효시키는 미생물을 찾아내면서 이 문제는 기술적으로 해결이 됐다. 박 사장은 간장 고유의 색깔조차 색을 없애는 구실을 하는 미생물을 찾아내면 맛과 향을 유지한 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엔 한식 간장 잘 어울려

✚ 우리 입맛이 망가졌다고 했는데 맛은 개인적인 취향 아닌가요? 맛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게 가능합니까?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입맛이 너무 달고 짠 음식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제품을 개발할 때도 애로가 있습니다. 그 입맛에 맞추지 않으면 물건이 안 팔리니 좋은 맛을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는 거죠. 절충하는 거예요. 이 문제로 우리 회사 연구소 사람들과 많이 싸우는데 제가 맛있다고 하는 건 만들어 봤자 잘 안 팔리니 사장이 질 수밖에 없어요. 연구원들 자신의 입맛이 보통 사람과 비슷해진 탓도 있어요. 자기 입맛에 맞는 걸 만들게 돼 있거든요.”

샘표는 공장의 내부를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샘표 아트 프로젝트 덕에 무채색의 공장이 갤러리로 바뀌었다. 2012년 충북 오송에 새로 지은 연구소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설계할 땐 아예 갤러리 프로젝트를 병행했다. 갤러리 같은 연구소를 만들면 뭐가 좋을까?

 
✚ 이런 프로젝트가 나름대로 투자수익률(?)이 높다고 할 수 있나요?
“모르죠. 생산성을 높이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구성원들이 감성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면 더 행복해할 것 같았죠. 보통 사무실은 인테리어를 해도 공장은 잘 안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접하는 환경의 폭이 좁은 생산직에 대한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들로 하여금 공장 벽에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연구소는 새로 지으면서 연두처럼 세상에 없던 제품을 상상력을 발휘해 개발해 보라고 인테리어를 콘셉트부터 업자가 아니라 화가들에게 맡겼고요. 작업이 다 끝난 다음에 가 보고 저도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처음엔 불편했지만 몇 번 가보니까 좋더라고요. 여기도 사람들이 몰리는 방을 보면 마음이 편하고 억누르는 게 없어요.”

겸손하지 않으면 성장 어려워

✚ 이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 내려면 어떤 자극이 필요한가요?
“상상력은 몰입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마음을 억누르지 않는 근무 환경도 도움이 되겠죠. 제품을 만들어 내는 건 과학적 프로세스지만 무엇을 만들거냐는 예술의 영역이죠.”

✚ 없던 제품의 효용이 뭔가요?
“일본 사람들도 한식을 많이 먹어요. 그래서 일본 회사들이 한식 양념을 만들어 팝니다. 일본인 입맛에 맞게 만들어 파는데 그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그래서 우리 입맛에 맞는 제품을 들고 일본에 들어가 봤자 못 팝니다. 기본적으로 이미 있는 제품을 후발로 만들었을 때 싸울 수 있는 무기란 가격 경쟁력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후발주자로서 매출은 늘릴 수 있어도 적자가 불가피하죠.”

✚ 창립 이래 구조조정도, 감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노사분규도 없었고요. 이런 경영철학이랄까 정책도 비용이 따르지 않나요? 그래서 성장성에 한계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어 내느냐, 어떤 비전을 설정하고 그 비전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품을 만드는 직원들이 행복해하면 좋은 제품이 나오고 소비자들도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 검증된 경영의 원리인가요?
“검증할 시스템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어떻든 직원이 즐겁고 행복하면 일하는 수준이 더 올라갑니다.”

그는 샘표 디자인팀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회사 디자인팀은 연두의 해외 진출을 앞두고 병과 레이블 디자인을 바꿨다. 이 디자인이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받았다. 그는 수상 후 등재에 드는 비용을 지급하게 해 달라고 결재를 올리는 바람에 상 탄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런 일은 대개 디자인 회사에 외주를 줘 상을 받아도 그 회사가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직원들만의 힘으로 수상했어요. 그동안 이 상에 욕심은 있었지만 우리 디자인팀이 더 발전해야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이런 게 일하는 수준이 높아진 결과라고 봅니다.”

▲ 샘표 이천공장 직원들이 공장 내 샘표스페이스에서 열린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 샘표 구성원의 DNA가 뭔가요? 샘표의 인재상이 뭡니까?
“겸손한 사람, 사심 없는 사람, 열정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겸손이란 내가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도 성심성의껏 설명을 하게 되죠. 결국 회사 안팎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집니다. 또 겸손하지 않으면 성장의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어요. 겸손해야 남에게 배우고 그래야 실력이 늘죠. 그러니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바보예요. 좋은 아이디어가 꼭 내 머리에서 나와야 하는 건 아니죠. 사심을 버리라는 건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잘 되게 하기 위한 방법만 생각하고 나와 남에 대한 유불리 여부를 따지지 말라는 겁니다. 공사를 구분하라는 거죠. 열정이란 실은 일에 몰입하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일의 성과는 몰입의 정도에 달렸습니다. 이런 인재상을 추구하는 건 이런 동료들과 일할 때 행복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설사 일을 좀 못하더라도 이 세가지를 갖춘 사람과 일하면 행복합니다. 물론 이와 더불어 회사가 적재적소에 배치를 해야겠죠. 사람은 일을 잘해야 행복합니다.”

경영권과 돈 문제 분리해야

✚ 대기업 총수들이 돈의 유혹에 빠지는 데는 경영권을 지키겠다는 선의도 있지 않습니까?

“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경영권 방어 문제는 황금주(단 한주만 가지고 있어도 그 기업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식) 같은 시스템으로 풀어야죠. 황금주를 도입하면 굳이 주식을 자식에게 물려줄 필요도 없어요. 단 경영은 비전을 갖고 회사를 이끌 사람에게 맡겨야 합니다. 이 점에서 돈 많은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주주자본주의는 문제가 많은 체제라고 저는 봅니다. 경영권과 돈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거죠. 상속세야 당연히 내야 하는 거지만 경영권 승계 문제는 별개라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일부 관료들은 고개를 끄덕이는데 기업인들은 대부분 동의하지 않습니다.”

✚ 분식회계 문제는 어떻게 보나요?
“돈을 빼돌리려 했다면 횡령이니 일단 이건 논외고요. 단기간에 돈을 벌어들이려는 금융사들의 압박 때문에 하는 분식은, 그것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해는 할 수 있어요. 당면한 위기만 넘기면 잘 할 수 있는데 사실대로 밝히면 대출금을 회수당해 망하게 생겼으니 감추는 거죠. 금융은 생산적인 활동에 자금을 지원하는 윤활유 역할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는 관심도 없이 장부만 들여다보고 자기들 잣대로 계산해 돈 갚으라고 하는 건 본령에서 벗어난 겁니다. 심각한 경제 문제죠.”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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